다들 “너무 늦었다”고 했다. 김보름(25)은 초등학교 5학년에 쇼트트랙을 처음 배웠다. 태권소녀에서 조금 늦게 스케이터로 변신했지만 타고난 운동신경으로 어릴 때는 제법 잘 달렸다. 하지만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고교생이 되면서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대회마다 입상을 하지 못했다. 운동을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하기도 너무 늦은 때였다.
고교 3학년 진학을 앞두고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하기로 결심했을 때 주변에서는 “너무 늦었다”고 말렸다. 여러 선수들이 그랬듯, 쇼트트랙 출신 이승훈이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장거리 선수로 금메달을 따는 모습에 ‘이거다’ 결심이 섰다. 부모님의 반대에도 어떻게든 스케이트로 승부를 보기로 마음먹은 김보름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집을 떠났다. 고향인 대구에는 스피드스케이팅을 탈 수 있는 아이스링크가 없었다. 가장 감수성 예민하고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나이, 고3에 김보름은 서울로 떠나 혼자 노력했다. 김보름은 스피드스케이팅에 인생을 걸었다.
타고난 스포츠소녀가 이를 악 물자 무섭게 성장했다. 바로 국가대표로 선발돼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여자 30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그리고 마치 김보름을 기다린 듯 일생일대의 기회가 왔다. 스피드스케이팅에 쇼트트랙을 접목한 새 종목 매스스타트가 등장했다. 평창 동계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김보름에게 평창올림픽은 인생의 기회가 됐다.
쇼트트랙에서 실패 했지만 쇼트트랙의 특성을 잘 알고 몸에 익힌 김보름은 다른 선수들보다 월등했다. 2016~2017 월드컵 4개 대회에서 금메달 2개와 동메달 2개를 휩쓸어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이번 시즌에는 허리 부상으로 1위를 내놨지만 여전히 평창올림픽의 가장 무서운 우승후보로 꼽혔다.
예상치 못했던 시련도 고3 때부터 인생을 걸고 도전해온 김보름을 막지 못했다. 19일 팀 추월 경기를 마친 뒤 팀워크 논란의 중심에 섰던 김보름은 거의 전국민의 질타를 받았다. 빙상연맹을 비난하고팠던 선배 노선영의 한마디에 대회 전에도 특혜 논란에 놓였던 김보름은 가장 중요한 매스스타트 출전을 앞두고는 진로를 고민해야 했던 고3때보다 더 큰 혼란 속에 놓였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비난 속에서 이틀 동안 선수촌에서 방문을 걸어잠그고 울며 생각했다. 심리 상담까지 받으며 김보름은 고통의 닷새를 이겨냈다. 정신을 집중했고 24일 평창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따내 4년간 쏟았던 자신의 노력을 지켜냈다.
경기 뒤 김보름은 “죄송하다”는 말만 했다. 어떤 질문을 해도 같은 말이 나왔다. 공식 기자회견에서도 반복되는 사과에 한 외신 기자가 손을 들고 “무엇에 대해 그렇게 계속 사과하는 것이냐”고 질문할 정도였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 한국 취재진에게 간략한 사연을 전해들은 외신 기자는 “정신력이 엄청난 선수인 듯하다”고 감탄했다.
이날 경기장의 한국 팬들도 우려와 달리 김보름을 향해 시종일관 뜨거운 응원을 보냈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코칭스태프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린 김보름은 태극기를 들고 트랙을 돈 뒤 자신에게 환호해주는 관중 앞에 엎드려 절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고통스러웠던 노력을 은메달로 보상받은 감격의 눈물이자 비난 속에 한 줄기 햇살처럼 쏟아진 격려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