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모두가 잊었지만… 김태윤, 소치의 약속 지켰다

含閒 2018. 2. 24. 09:08

모두가 잊었지만… 김태윤, 소치의 약속 지켰다

 

입력 : 2018.02.24 03:02

[2018 평창]

스피드스케이팅 1000m 동메달
첫 올림픽 출전한 소치서 30위 "4년 뒤 반드시 메달" 각오 밝혀
무른 빙질에 추진력 떨어질까 몸무게 4㎏ 줄여가며 대회 준비

김태윤(24)이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또 다른 기대주로 떠올랐다. 김민석(1500m 동메달), 차민규(500m 은메달)에 이어 1000m에서 값진 동메달을 따냈다.

김태윤은 23일 전체 18조 가운데 15조 아웃코스에서 출발했다. 초반 200m를 16초39로 빠르게 끊었고 속도를 계속 유지하며 매끄럽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1분08초22. 개인 최고 기록인 1초08초08에 근접한 기록이다. 1위인 네덜란드의 키얼트 나위스(1분07초95)에는 0.27초가 모자랐다. 2위는 노르웨이의 호바르 로렌첸(1분07초99)였다.

김태윤이 23일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결승선을 통과한 뒤 주먹을 불끈 쥐고 기뻐하고 있다.  

 

김태윤이 23일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결승선을 통과한 뒤 주먹을 불끈 쥐고 기뻐하고 있다. /송정헌 기자

 

마지막 조 경기가 끝나고 순위를 확인한 김태윤은 태극기를 들고 천장을 향해 고개를 들어 포효하듯 환호성을 질렀다. 그간의 설움과 고생을 모두 털어놓는 듯한 외침이었다. 아버지의 권유로 의정부 경의초 2학년 때 스케이트를 신은 그는 그해 꿈나무빙상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유망주로 떠올랐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생긴 오스굿씨병(무릎 앞쪽 부위가 붓고 아픈 질환)으로 왼쪽 무릎 통증에 시달렸다.

통증과 여러 부상 속에도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2014년 소치에서 올림픽 무대에 데뷔했다. 1000m에 나서 40명 중 30위(1분10초81)를 했다. 당시 김태윤은 "4년 뒤 평창에선 반드시 메달권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2016년 세계스프린트대회에서 종합 5위로 선전했으나 그해 12월 2017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김태윤은 "힘들지는 않았다. 넘어지는 순간 아시안게임은 포기하고 올림픽만 생각했다"고 했다.

김태윤은 소치에서 했던 약속을 지키려고 모든 걸 바꿨다. 체중을 줄이고, 스케이트 날과 주법도 바꿨다. 평창올림픽이 열리는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의 무른 빙질에 적응하기 위해 80㎏인 몸무게를 3~4㎏ 줄였다. 무른 얼음에선 체중이 많이 나가면 스케이팅을 할 때 추진력에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태윤은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살을 빼는 게 정말 힘들었다. 저녁을 최대한 자제하고 먹고 싶은 음식은 점심때 다 먹었다"고 했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만난 그는 '깜짝 메달'이라는 평가에 "나 역시 정말 생각 못했던 메달"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를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의 말은 달랐다. 동료 차민규는 "김태윤은 소치 이후에 누구보다 묵묵히 많은 훈련을 했다. 나는 그의 메달을 예상했다"고 말했다. '준비된 메달'이었다는 얘기다.

2014 소치올 림픽에서 노메달에 그쳤던 한국 남자 단거리는 이번 대회에서 차민규와 김태윤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이 올림픽 남자 1000m에서 메달을 딴 것은 김윤만(1992 알베르빌 은), 모태범(2010 밴쿠버 은) 이후 역대 세 번째다. 허리 부상으로 빠진 모태범을 대신해 출전한 차민규는 12위(1분09초27), 정재웅(19)은 13위(1분09초43)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