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수사의 특수성 이해 없는 결정
정보기관의 반국가단체 수사 필요
대북 정보망 새로 구축하는 비효율
이적세력 활개 칠 환경 조성 우려
국정원 대공수사국이 간첩망 하나를 검거하는 데는 최소 3년 이상이 소요된다. 해외 공작망이나 인터넷 사이버 공간을 통해 간첩 용의자로 확인되더라도 검거까지는 많은 확증 자료 수집과 추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용의자 주변 파악을 위해 검찰·법원·경찰·공항·항만 등 협조와 공조를 구해야 할 기관도 많다. 여기에다 인터넷 사이버 활동 추적 등 채증 자료 수집에는 은밀성과 보안성을 유지해야 한다. 작은 실수로 인해 노출될 경우 수사는 순식간에 물거품이 된다. 완벽한 증거가 수집돼도 재판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흠결이 있으면 사건 자체가 기각되기도 한다.
대공수사요원은 개인과 가정생활은 거의 없어 사명감 없이는 근무하기 어렵다. 한마디로 기피부서다. 국정원 내부에서 불평을 듣기도 한다. 간첩 검거에 따른 포상이 대공 수사관들에게 많이 돌아가다 보니 첩보를 제공했던 해외부서나 과학부서 등 다른 부서 직원들은 대공부서가 상을 독식한다고 불평한다. 이처럼 같은 국정원의 한 지붕 밑에서도 협조가 잘 안 되는 경우가 있다.
하물며 대공수사 기능을 경찰 같은 전혀 다른 기관으로 옮기면 협조가 더더욱 원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은 자명하다. 경찰로 이관할 경우 과학시설·통신기지도 장기간에 걸쳐 대공수사 공백이 생길 것은 뻔하다. 대공 수사요원만을 경찰에 데려다 소속을 변경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대북 정보망, 외국 정보·수사기관과 협조 네트워크를 대체할 기관을 새로 만든다는 것은 엄청난 비효율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지금처럼 국정원이 최소한의 대공 분야 인원으로 성과를 내는 것이 효율적이다. 실제로 지난 2000년 1월~ 2012년 4월에 검거한 51명의 간첩 중에서 국정원의 정보·수사 활동으로 적발한 간첩이 46명이다. 같은 기간에 경찰 단독으로 적발한 경우는 5명에 불과했다.
현역 시절 필자는 예멘 통일 이전(1970년대 말~80년대 초)에 북예멘 수도 사나를 여러 번 방문했다. 북예멘 정보보안부와 협력해 남예멘 아덴과 북예멘 사나에서 활동하는 북한 요원들의 활동상을 파악하고 대공 첩보를 수집한 경험이 있다. 당시 북예멘 정보보안부장이 한국·예멘 수교 협조 업무로 방한한 뒤 사나에서 이동 중에 피살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북예멘 정보보안부는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 지시로 북한 측의 관여 여부를 전반적으로 수사하기도 했다.
우리는 전쟁을 치렀고 지금도 남북은 분단 상태다. 분단국가의 정보기관이 생존을 위해 대공수사 기능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과 대치 중인 대한민국이 국정원 개혁을 이유로 정보기관의 대공 기능을 모두 폐지하고 무력화하는 것은 국가안보에 대한 자해행위다.
북한의 침투는 국내외를 넘나들면서 이뤄진다. 국정원의 국내정보 활동 폐지에 이어 대공수사권마저 폐지하는 것은 대공 기능을 와해시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결국 간첩과 이적세력들이 마음 놓고 활개 칠 환경을 조성해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송봉선 전 국정원 북한단장·양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