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

'육체적 쾌락'으로 위선에 저항…마광수 문학관

含閒 2017. 9. 7. 01:08

'육체적 쾌락'으로 위선에 저항…마광수 문학관

입력시간 | 2017.09.06 18:50 | 채상우 기자 허례허식·도덕주의·위선사회 경멸

"성 고프지 않을 때가 건강한 정신"

`육체적 쾌락`으로 위선에 저항…마광수 문학관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의 빈소. 5일 세상을 떠난 마 전 교수의 빈소가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채상우 기자] “야한 소설을 쓰고 싶어 미치겠어요.” 

‘마광수의 뇌구조’(오늘의 책·2011)에 나온 이 문장은 아마도 마광수(1951~2017)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의 문학관을 가장 잘 드러낸 말일 것이다. 

마 전 교수의 문학관은 ‘마광수의 뇌구조’를 통해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책에서 마 전 교수는 “섹스 없이는 먹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모두 동식물이 번식을 위해 섹스를 하여 생산해놓은 씨앗, 열매, 고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식욕 이전에 성욕이고 성에 고프지 않을 때 건강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 전 교수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썼던 ‘추억마저 지우랴’에서도 성에 대한 개방성을 털어놓을 정도였다. 마 전 교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즐거운 사라’(서울문학사·1991)도 마찬가지다. 프리섹스를 추구하는 여대생 사라의 이야기를 담은 ‘즐거운 사라’로 인해 마 전 교수는 강의 중 경찰에 연행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후 문학계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교직에서도 해직과 복직, 휴직과 복직을 반복했다.
‘육체적 쾌락’에 바탕을 둔 문학관을 좀 더 깊숙이 들여다보면 심연에는 위선에 빠진 사회를 경멸한 저항심이 있다. 마 전 교수는 인간의 행동과 생각을 옥죄는 허례허식과 도덕주의, 위선을 경멸했다. 성 문제를 음지에서 공론장으로 끌어내야 위선적인 성문화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겉으로는 위선을 떨면서 속으로 온갖 성적 환상에 사로잡히는 것이야말로 변태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회의 질타 속에서도 그는 자신의 철학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라를 위한 변명’(열음사·2005), ‘모든 사랑에 불륜은 없다’ ‘돌아온 사라’(아트블루·2011) 등을 통해 세상의 억압에 저항했다.  

마 전 교수는 문학계에 대한 질타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한국은 문화적으로 촌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는 ‘마광수의 뇌구조’에서 “문학은 카타르시스다. 교훈은 없다. 문학은 오락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소설이고 뭐고 사랑을 빼면 시체고 사랑은 따지고 보면 성욕”이라고 썼다.  

마지막으로 한 언론인터뷰에서 “겉으로는 근엄한 척하면서 뒤로는 호박씨 까는 우리 사회의 행태에 시비를 걸어보고 싶었다”고 털어놓은 말이 66년 그의 인생을 정리한 한 줄의 문장으로 남았다. 

故마광수교수 빈소..문단 동료·제자들 발길 이어져

배성민 기자 입력 2017.09.06. 20:11홍익대 제자 가수 고상록씨 '외롭고 아프다 자주 호소'..사라재판은 '문학에 대한 사법살인'탄식도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순천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광수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빈소가 마련돼 있다. 2017.9.5/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소설 ‘즐거운 사라’로 알려졌던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과 교수의 빈소는 차분했다. 문우나 동료들보다는 그의 제자들과 죽음을 안타까와하는 이들의 발길이 발인을 하루 앞둔 6일에도 꾸준히 이어졌다.

가족들과 친지들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마 전 교수의 빈소에서는 이날 누나와 조카 등 친지들과 제자들이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이 엿보였다.

대학 때 그에게 배웠다고 밝힌 한 추모객은 “사실상 사회와 경직된 법이 마 교수님을 죽음으로 몰고간 만큼 사법 살인이라고 생각한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그는 “교수님이 기억해주시지 않겠지만 이렇게 가시는 길에라도 꼭 찾아뵈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누군가 함께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못 했다고도 말했다.

그가 몸담았던 연세대 국문과 졸업생들의 학번이 기재된 화환이 빈소 앞을 둘러쌌고 출판계 대표들의 추모화환도 빼곡했다.

마 전 교수가 연세대로 옮기기전 재직했던 홍익대 시절 제자라는 그룹사운드 블랙테트라 고상록씨도 빈소를 찾았다. 고씨는 기자와의 통화를 통해 “평소 연락을 드리면 외롭고 아프다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며 “책도 잘 팔리지 않더라라는 푸념도 하셨는데 그게 교수님의 넉살이 아닌 이렇게 큰 고통이 묻어나는 말이었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다”고 했다.

고씨는 “교수님이 강의실에서 공부도 중요하지만 진취적으로 음악을 열심히 하면 더 큰 성취를 이룰 것이라고 격려해주셨다”며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씀하셨던 교수님이 정작 자신의 뜻을 못 펼치신 것 같다”고 애통해했다.

교수님의 팬이라고 소개한 김상일 변호사는 “예술과 외설의 구분, 창작과 표현의 장에 대한 논쟁으로까지 이어졌던 ‘즐거운 사라’ 재판은 문학에 대한 사법살인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며 “하늘나라에서 교수님이 편히 쉬시길 바란다”고 했다.

한편 마 교수가 세상을 등지기 직전까지 10여쪽 내외의 단편소설 21편으로 이뤄진 새 소설집 출간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기도 했다. 마 전 교수의 죽음으로 유고 소설집이 되고만 새 소설집 ‘추억마저 지우려’(어문학사)는 이르면 이달 중 출간된다.

마 전 교수는 5일 오후 1시 51분쯤 서울 용산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집 안에서는 자신의 시신을 발견한 가족에게 유산을 넘긴다는 내용 등이 담긴 유언장이 발견됐다. 유족은 7일 오전 영결식을 치르고 시신을 화장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