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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부회장 1심 재판부는 핵심 혐의인 뇌물공여죄와 관련해 묵시적 청탁을 인정했다. <뉴시스> |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삼성 오너일가 최초의 실형이다. 이재용 부회장 측은 즉각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란 입장을 내놨다. 반면, 형량이 지나치게 낮은 ‘봐주기’ 판결이란 목소리도 거세다. 어쨌든 이번 판결은 박근혜, 최순실 등 다른 이들의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전망이며, 사회적으로도 파급이 클 것으로 보인다. 판결문을 통해 이번 판결의 쟁점 사안을 되짚어본다.
◇ 명시적 청탁은 없었다… 하지만, 묵시적 청탁은?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죄 혐의에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 중 하나는 바로 대통령과의 독대였다. 두 사람만의 시간이었던 만큼, 실체적 진실을 확인할 수 없었고 그만큼 여러 추측과 주장이 난무했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의 ‘청탁’이 있었는지 여부도 쟁점이었다. 청탁이 없었다면 뇌물에 따른 반대급부도 성립될 수 없고, 이재용 부회장은 강요를 당한 피해자가 되는 것이었다. 이에 삼성과 이재용 부회장 측은 줄기차게 청탁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강조했고, 대통령의 불호령에 어쩔 수 없이 최순실 측에 돈을 건네기만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의 판단은 어땠을까. 사안의 특성상 다소 복잡한 판단이 내려졌다. 다음은 판결문 일부다.
우선, 포괄적 현안과 관련해 명시적 청탁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에게 청탁했다 인정할 만한 증거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쉽게 말해 청탁 내용이 적힌 편지가 있다거나, 대화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이 있다거나 하지 않다는 것이다.
핵심은 묵시적 청탁이다. 교묘하게 이뤄지는 묵시적 청탁의 인정하느냐 여부가 이번 판결의 최대 갈림길이었다.
우선 재판부는 이번 사건에서 묵시적 청탁이 인정되기 위한 요건으로 대통령 직무집행 내용과 제3자 제공 금품이 직무집행 대가라는 점에 대한 공통의 인식이나 양해가 있었는지, 또 대통령 직무대가로 금품 제공한다는 인식이 있었는지를 제시했다.
쉽게 말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무집행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고, 이 도움을 받기 위해 제3자인 최순실에게 뇌물을 건넨다는 점을 모두 인식하고 있었는지 여부가 핵심 기준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재판부는 부정한 내용이 아니라 해도 직무집행 대가와 연결시켜 하는 청탁이라면 부정청탁으로 인정 가능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에 기초해, 먼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뇌물의 반대급부인 삼성 승계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사회적으로 삼성의 승계문제가 공론화된 상태였을 뿐 아니라, 대통령이 각종 보고를 받는 국정 최고책임자라는 점에서 최대 기업집단인 삼성의 승계문제를 인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봤다. 각 정부기관과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작성된 보고서가 이를 입증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뇌물을 받고 특혜를 제공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는지도 묵시적 청탁의 인정 요건이었다. 이는 국가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란 점에서 반론의 여지없이 충분한 권한을 가졌다고 판단했다.
대통령과 기업인의 관계와 대통령 요청의 성격은 묵시적 청탁 여부를 판단할 중요한 요소이자 가장 판단이 어려운 부분이었다. 기본적으로 현안이 없는 기업은 없기에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하기 어렵고, 또 대통령이 공익을 위해 기업에게 어떠한 요청을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준에 따라 재판부는 최순실 딸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의 묵시적 청탁 여부를 판단했다.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측은 금품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아닌 최순실에게 전해졌고, 최순실은 어떠한 권한도 가진 인물이 아니기에 뇌물공여죄가 수립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무원이 공모해서 공동정범인 비신분자 하여금 뇌물 받게 한 경우, 이는 자기 자신이 받은 것과 동일”하다며 죄가 성립된다고 봤다.
이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오래전부터 친분을 가진 관계였고, 대통령 취임 후 국정운영에 최순실이 관여한 점을 들어 두 사람의 공모관계를 인정했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과의 면담에서 승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지원이 미흡하다며 질책까지 한 점, 승마지원 이후에는 감사의 뜻을 전한 점 등을 들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이 승마지원 진행경과를 꾸준히 소통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즉,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을 통해 뇌물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다음 쟁점은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측이 대통령의 승마지원 요구를 최순실 딸 정유라에 대한 지원요구로 인식했는지 여부다. 대통령의 요구를 공익을 위한 것으로만 인지했는지, 사익을 추구한 것으로 인지했는지에 따라 지원의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우선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 측이 언론보도를 통해 최순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란 점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봤다. 따라서 해당 보도가 나온 2014년 12월~2015년 1월 무렵에는 대통령의 승마지원 요구에 정유라가 연관돼있다고 인식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박상진 전 사장이 승마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뒤인 2015년 7월 이후에는 대통령의 승마지원 요구가 사실은 정유라 지원 요구이며, 그 배후에 최순실이 있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아울러 삼성이 최순실 개인회사와 맺은 수상한 계약도 이들이 최순실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는 중요 근거가 됐다.
재판부를 이 같은 내용들을 모두 종합해 정유라에 대한 지원에 이재용 부회장의 묵시적 청탁 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삼성의 승계문제를 인식하고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유라에 대한 지원을 이재용 부회장에게 요구했고, 이재용 부회장은 승계작업에 대한 대통령의 지원을 기대해 이에 응했다는 것이다. 또한 최순실을 통해 뇌물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재용 부회장의 포괄적 현안인 승계작업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정부부처 및 국회에 간접적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봤다. 뇌물 제공과 이에 따른 대가의 연결고리를 모두 인정한 것이다.
권정두 기자 swgwon14@sisaweek.com
[이재용 판결문 분석③] 한숨 돌린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기업들 |
|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 나란히 출석한 주요 재벌대기업 총수들의 모습. <뉴시스> |
[시사위크=권정두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심에서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삼성 오너일가 최초의 실형이다. 이재용 부회장 측은 즉각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란 입장을 내놨다. 반면, 형량이 지나치게 낮은 ‘봐주기’ 판결이란 목소리도 거세다. 어쨌든 이번 판결은 박근혜, 최순실 등 다른 이들의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전망이며, 사회적으로도 파급이 클 것으로 보인다. 판결문을 통해 이번 판결의 쟁점 사안을 되짚어본다. ◇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돈은 뇌물일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선망 받던 재벌대기업들의 초라한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대통령 한 마디에 일언반구 없이 ‘억 소리’나는 돈을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전경련은 ‘자금 모집책’ 역할을 했고, 재계 순위에 따라 출연 자금 규모를 달리하는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 기업들은 대부분 기소되지 않았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최순실이 개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돈을 내놓은 기업이 거의 없었고, 뇌물에 따른 대가도 규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다만, 다른 루트를 통해서도 최순실을 지원한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리고 미르·K스포츠재단 자금 출연도 뇌물공여 혐의 중 일부로 포함됐다. ‘승계작업 지원’이란 뇌물의 대가가 다른 기업에 비해 뚜렷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이 부분이 인정된다면, 다른 출연 기업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성에 비해선 뚜렷하지 않지만, 어떤 식으로라도 혜택을 본 사례가 드러난다면 뇌물공여죄가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1심 판결은 이들을 한숨 돌리게 만들었다.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의 정유라 지원을 묵시적 청탁으로 보고 뇌물공여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에 대한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우선 미르·K스포츠재단이 최순실의 사적 이익 추구 수단이었던 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순실이 재단을 통해 사적 이익을 취하는데 적극 관여한 점, 미르·K스포츠재단이 비정상적으로 설립되고 운영된 점 등을 모두 인정했다. 하지만 삼성이 두 재단에 출연한 것을 승계작업 지원의 대가로 보긴 어렵다고 봤다. 재판부는 우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문화·스포츠 분야 육성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했고, 삼성은 2014년부터 매년 5,000억원 이상을 공익재단에 출연하는 기업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이재용 부회장이 두 재단에 대한 출연을 공익적 목적의 요구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고, 이를 통해 대통령으로부터 특정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을 것이란 판단이다. 두 재단의 배후에 최순실이 있다는 사실을 이재용 부회장이 알았을 가능성도 낮게 봤다. 아울러 재판부는 삼성이 두 재단에 자금을 출연하는 과정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능동적으로 판단한 적이 없고, 그저 청와대의 요청에 따라 전경련이 배분한 자금을 그대로 출연하는 수동적 태도를 취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독대에서 미르·K스포츠재단가 언급되기도 했지만, 정유라에 대한 승마지원이나 영재센터 지원 등의 사안에 비해 구체성이나 직접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판부는 “대통령의 직무집행에 관한 대가로서의 재단 출연이라기 보단, 대통령 관심사항에 따라 전경련이 측정한 출연금을 어쩔 수 없이 납부했다”고 판결문에 명시했다. 이는 다른 출연 기업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것으로, 이번 판결에 따라 해당 기업들은 한결 마음이 편해지게 됐다. 권정두 기자 swgwon14@sisawee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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