警戒 박노해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말 것
현실이 미래를 잡아먹지 말 것
미래를 말하며 과거를 묻어 버리거나
미래를 내세워 오늘 할 일을 흐리지 말 것
박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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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57년 11월 20일 |
학력 | 선린상업고등학교 |
직업 | 육체노동자, 시인 |
배우자 | 김진주(약사, 작가) |
친척 | 김해수(장인) |
박노해(朴勞解, 본명: 박기평(朴基平), 1957년 11월 20일 ~ )는 대한민국의 시인, 사진가, 노동·생태·평화운동가이다.
목차
약력
작가 약력은 다음과 같다.[1]
1957년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태어나 고흥군·벌교읍에서 자랐다. 16세에 상경하여 선린상업고등학교(야간부)를 졸업한 후 섬유·화학·금속·정비·운수 노동자로 일했다. 그러다 1984년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펴내 ‘얼굴 없는 시인’으로 알려졌다.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된 《노동의 새벽》은 당시 ‘잊혀진 계급’이던 천만 노동자의 목소리가 되었고, 젊은 대학생들을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게 하면서 한국사회와 문단을 충격으로 뒤흔들었다. 1985년 결성된 서울노동운동연합(약칭 "서노련") 중앙위원으로 활동하고, 1989년 한국에서 사회주의를 처음 공개적으로 천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약칭 "사노맹") 결성을 주도했다. 1991년 3월 구속 후 24일간 잔혹한 고문을 당한 끝에 국가보안법상 소위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1993년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 1997년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펴냈다.
1998년 8월 15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특별 사면으로 복역 8년만에 교도소에서 출소했다. 2000년부터,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스스로 사회적 발언을 금한 채, 세계의 빈곤 지역과 분쟁 현장을 돌며 평화운동을 전개해 왔다. 2003년에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선언 직후 전쟁터로 날아가 반전 평화운동을 전개했고, 아체, 쿠르디스탄 및 발칸 반도와 아시아 여러 나라, 그리고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 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2010년, 그동안 해외 분쟁 지역에서 평화운동을 하며 촬영한 사진을 모아 첫 사진전 <라 광야>展과 <나 거기에 그들처럼>展(세종문화회관)을 열었다. 낡은 흑백 필름 카메라로 기록해온 사진은 사회의 이목과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인사말에서, 중동-아랍지역은 사회주의 공백을 미국 패권주의가 뒤덮을 때 이를 견제하고 인류 약자의 정의를 지켜온 중요한 축이자 희생자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변함없는 진보적 가치에 대한 신뢰와 열정을 드러냈다. 국내외 현장에서 쓴 304편의 시를 엮어 12년 만의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
현재 ‘생명·평화·나눔’을 기치로 내건 사회단체 ‘나눔문화’를 중심으로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아가는 대안적 삶의 비전 제시와 ‘평화나눔’ 활동과 사회 진보운동에 진력하고 있다. 박노해라는 이름의 뜻은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을 위하여'를 줄여쓴 것이다.
생애 및 주요 활동
생애 및 주요 활동은 다음과 같다.[2]
유년시절
박노해는 1957년 분단된 한국의 남쪽인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나 산과 들과 갯벌 바다로 둘러싸인 고흥군 동강면 농촌 마을에서 자라났다. 판소리꾼이자 민족독립운동과 진보운동에 참여한 아버지와 가톨릭 수녀를 꿈꾸었던 어머니가 자아내는 집안 분위기는 그의 유년시절에 큰 영향을 미쳤다. 훗날 그의 형은 가톨릭 사제가 되어 한국 사회 민주화에 앞장선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를 맡았고, 그의 여동생은 수녀가 되었다. 7세 때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의 운명은 격랑을 타게 된다. 가난해진 집안은 이산 가족이 되었고, 일찍이 찾아온 불운과 고독은 그를 독서와 글쓰기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그는 16세 때 농촌 고향을 떠나 수도 서울로 이주해 낮에는 노동자로 학비를 벌고, 밤에는 선린상고(야간부)를 다녔다.
〈노동의 새벽〉의 '얼굴 없는 시인' 박노해
1976년 노동자가 된 박노해는 건설, 섬유, 화학, 금속, 운수현장에서 일하며 노조결성과 지역 노동자모임을 조직하는 등 노동운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은 군사독재 정권 아래에서 야간통행금지가 실시되고 표현의 자유와 대통령 선출권, 노동 3권마저 유린되던 암흑의 시대였다. 1984년 박노해는 첫 시집 《노동의 새벽》을 출간했다. 그의 나이 스물 일곱 살, 현장 노동자로 일하던 중에 펴낸 이 시집은 한국 사회와 문단을 충격적 감동으로 뒤흔들게 된다. 군사 정부의 금서 조치에도 100만 부 가까이 발간된 이 한 권의 시집은, 수십 년간 무권리 상태로 침묵을 강요당하며 ‘잊혀진 계급’이던 천만 노동자의 영혼의 목소리가 되었고, 이 시집을 읽은 젊은 대학생들을 노동현장으로 뛰어들게 하는 양심의 북소리로 울려 퍼졌다. 그의 시는 마침내 한국 현대사를 뒤바꾼 87년 '6월 민주항쟁'의 승리를 지펴낸 하나의 불꽃이 되어, '시의 힘'이 무엇인지를 역사 속에 보여준 생생한 사례가 되었다. 이 때부터 그는 군사 정부의 집중적인 표적이 되어 7년여를 수배자로 쫓기며 활발한 비밀활동을 하게 되었고,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리며 한국민주화운동 시대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었다. 1989년에는 남북으로 분단된 한국 사회에서 절대 금기였던 ‘사회주의’를 처음 공개적으로 천명한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 월간 《노동해방문학》을 펴내는 등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했다.
사형선고와 무기징역, 그리고 〈사람만이 희망이다〉
1991년 정보기관에 체포되면서 박노해는 처음으로 ‘얼굴’을 드러내었다. 24일간의 참혹한 불법 고문 끝에 ‘반국가단체 수괴’ 죄목으로 사형이 구형되고, 무기징역형에 처해졌다. 1993년 옥중에서 두 번째 시집 《참된 시작》을 펴냈다. 감옥에서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맞이한 그는 근원적 성찰과 연구를 거듭하며 '정신으로서의 사회주의는 지켜가야 하지만 현실 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잘못됐다. 시대 변화에 맞는 성찰과 쇄신을 통한 새로운 진보이념과 운동을 시작하자'고 발언해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시장만능의 세계화와 낡은 이념이 지배적인 시대 흐름에서 1997년 옥중 에세이집 《사람만이 희망이다》를 출간했다. 이 책은 30만 부 가까이 읽히면서, 그의 몸은 가둘 수 있지만 그의 사상과 시는 가둘 수 없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1998년 8월 15일, 7년 6개월의 감옥생활 끝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사면조치로 석방되었다. 이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었으나 국가 보상금을 거부했다.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글로벌 평화나눔' 전개
박노해는 스스로 사회적 발언을 금한 채 지구 시대의 인간해방을 향한 새로운 사상과 실천에 착수한다. 자본권력의 세계화 시대에 인류가 직면한 네 가지 위기인 전 지구적 '생태 위기'와 '전쟁 위기', 세계화된 '양극화 위기'와 '영혼의 위기' 앞에서, 그는 21세기의 시작인 2000년 '생명 평화 나눔'을 기치로 한 사회운동단체 '나눔문화'(www.nanum.com)[1]를 설립했다. 그는 자급자립하는 삶의 공동체인 '나눔마을'을 준비하는 한편, 세계의 빈곤지역과 분쟁현장을 돌며 글로벌 평화나눔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선언 직후 전쟁터로 날아가 반전평화활동을 전개했다. 한국 평화활동가들과 박노해가 전쟁터에 뛰어들면서 한국인과 사회운동의 시야를 인류 평화 문제 전체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06년에는 전쟁의 레바논에서 평화활동을 펼치고, 난민촌에 학교와 도서관을 세웠다. 귀국 후 한국군 전투병 파병을 반대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지금까지 이라크에서, 레바논에서, 팔레스타인에서, 쿠르디스탄에서, 쓰나미와 정치적 탄압으로 고통 받는 인도네시아 아체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중남미에서 글로벌 평화나눔을 진행하고 있다.
지구 마을 사진작가 박노해의 '빛으로 쓴 시'
긴장된 평화활동 중에도 그의 한 손에는 시를 쓰는 오래된 만년필이, 또 한 손에는 흑백 필름이 담긴 낡은 카메라가 들려져 있다. 평화활동의 도구로서 들기 시작한 카메라는 그에게 인류 보편의 언어인 ‘빛으로 쓴 시’가 되고 있다. 2010년 1월 첫 사진전 <라 광야>展을 열었다. 한 장 한 장 심장의 떨림으로 촬영한 박노해의 중동현장 10년의 기록은 중동 이슬람에 대한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면서 깊은 성찰과 울림을 남겼다. 10월 <나 거기에 그들처럼>展을 열었다. 지난 12년 동안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세계의 현장에서 기록한 13만여 장의 사진 중 전시된 120점의 사진들은 고통 받는 지구마을 민초의 강인한 삶에 바치는 ‘빛으로 쓴 경애의 시’이다.
2010년 10월에는 10년 간의 지구마을 곳곳을 누비며 길 잃은 시대 목숨 건 희망찾기의 시, 지구시대 유랑의 시를 모아 12년만의 신작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출간했다. 2011년 6월에는 <사람만이 희망이다>가 절판된지 10년 만에 개정복간 되었다. 2012년 나눔문화가 운영하는 대안 삶의 문화 공간 ‘라 카페 갤러리’에서 박노해의 글로벌 평화나눔 사진전을 상설 개최하고 있다. 파키스탄 사진전 <구름이 머무는 마을>展(2012.4.16-7.31)과 버마 사진전 <노래하는 호수>展(2012.8.3-10.31), 티베트 사진전 <남김없이 피고 지고>展(2012.11.2-2013.2.27), 안데스 사진전 <께로티카>展(2013.3.01-7.10), 수단 사진전 <나일 강가에>展(2013.7.12-11.13), 에티오피아 사진전 <꽃피는 걸음>展(2014.3.07-7.23), 볼리비아 사진전 <티티카카>展(2014.7.25-11.19), 페루 사진전 <그라시아스 알 라 비다>展(2014.11.21-2015.3.18), 알자지라 사진전 <태양 아래 그들처럼>展(2015.3.20-7.15), 인디아 사진전 <디레 디레>展(2015.7.17-2016.1.13)을 개최했으며, 현재는 카슈미르 사진전 <카슈미르의 봄>展(2016.1.15-6.29)이 열리고 있다.
그는 오늘도 국경을 넘어 인류의 고통과 슬픔을 끌어안고 사람들의 가슴 속에 잠든 선함과 용기를 일깨우면서 21세기 인류의 대안 삶과 근원적 혁명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주요저서
시집
•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2010)
• 《겨울이 꽃핀다》 (1999)
• 《참된 시작》 (1993)
• 《노동의 새벽》 (초판 1984 / 30주년 개정판 2014)
에세이
• 《다른 길 - 박노해 사진에세이》 (2014)
•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 고뇌의 레바논과 희망의 헤즈볼라》 (2007)
•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 쓰나미에 할퀸 '자유아체'의 절망과 희망》 (2005)
• 《오늘은 다르게》 (1999)
• 《사람만이 희망이다 - 박노해 옥중사색》 (초판 1997 / 개정판 2015)
•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1989)
사진집
• 《다른 길 - 티베트에서 인디아까지》 (2014)
• 《나 거기에 그들처럼 - 아프리카,중동,아시아,중남미》 (2010)
• 《라 광야 - 중동 현장 10년의 기록》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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