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나를 보수 소모품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었다"
김지은 입력 2017.02.02 04:42
심리적 마지노선 15% 무너지자
위기감 느끼며 “충격” 속내 털어놔
反文 빅텐트도 난관 부딪혀 실망
동생ㆍ조카ㆍ비리 등 검증 칼날에
방어 조직 없어 버틸 맷집도 안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돌연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결정타는 지지율 추락으로 보인다. 회견 뒤 참모들과 마지막 회의에선, 귀국해서 맞닥뜨린 만만치 않은 정치 현실에 느낀 심각한 회의도 나타냈다. 여기다 자신이 대선 전략으로 밀어붙인 ‘반문(재인) 빅텐트’ 구축이 난관에 부닥친 데다 검증 공세를 버텨낼 ‘맷집’도 없었다.
반 전 총장이 이날 국회에서 전격 불출마 선언을 한 뒤 만난 이들은 예비캠프인 마포팀 참모진이다. 반 전 총장은 이 자리에서 “나는 보수다, 진보다 이런 걸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나를 보수 대통합의 수단, 보수의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것 같다”고 21일 간 여야의 정치인들을 직접 만나며 느낀 염증을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 전 총장은 앞서 이날 오전 회동 때 인명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자신에게 “보수인지, 진보인지 명확하게 하라”고 요구했다는 얘기도 언급했다. 핵심 참모는 “국정농단 사태로 반성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충격을 받았다고 하시더라”며 “이런 게 정치인가 싶은 생각을 하신 것 같다”고 전했다. 반 전 총장은 이날 밤 사당동 자택 앞에서 기자와 만나 “(현실정치의)벽이 너무 높았다”며 “다른 분(대선주자)의 정파나 정당에 힘을 실어줄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자신이 구상한 제3지대 빅텐트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야권의 중도지대 인사들을 잇따라 만났지만 누구도 속 시원한 대답을 주지 않았다. 합류를 기대했던 새누리당 충청권 의원들도 결단을 미뤘다. 이들은 지난 달 31일 오후 회동해 거취를 논의했지만 즉시 탈당을 결단하지는 않았다. 같은 날 반 전 총장은 김무성 바른정당 의원과 오찬을 나누면서 김 의원이 “마냥 기다릴 수 없으니 어서 입당하시라”고 하자 “8일까지 기다려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8일은 반 전 총장의 대선 지원조직인 대한민국 국민포럼 전진대회가 예정된 날이다. 김 의원 측은 “국민포럼에다 새누리당 충청권 탈당파 등을 규합해 어느 정도 세를 만든 뒤 입당하려는 뜻으로 해석됐다”고 전했다.
잇단 비관적인 여론조사 결과에도 충격을 받은 듯 하다. 그간 반 전 총장 측은 “다른 건 몰라도 드롭(포기)은 없다”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바른정당을 찾았을 때 “지지율이 자꾸만 떨어지네요”라며 쓰라린 속내를 털어놨다고 한다. 정병국 대표와 주호영 원내대표 등 지도부를 따로 만나는 자리에서 정 대표가 “왜 본인의 상품가치를 잘 살리지 못하시느냐”며 이런저런 조언을 하자 반 전 총장이 솔직한 심경을 드러낸 것이다.
여기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온 지지율 15%선이 무너진 게 결정적 타격이었다. 지난달 31일 공개된 리서치앤리서치와 세계일보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은 13.1%까지 떨어졌다.
앞서 반 전 총장의 지지율이 최고조에 달하리라 예상했던 귀국 직후에도 ‘예상 밖 미풍’에 그쳤다. 본보와 한국리서치가 귀국 사흘 째인 15일과 16일 실시한 조사에서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1.4%로 1위를, 반 전 총장은 20.0%로 2위를 기록했다. 귀국 직전과 별다른 차이가 없어 충격을 안긴 결과였다.
본선이 시작되면 더 날카로워질 검증의 칼날도 영향을 미친 요인일 수 있다. 이미 자신의 동생과 조카가 비리 혐의로 검증대에 올랐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검증 공세는 예상보다 거세고 이를 막아주거나 역공을 해줄 조직조차 없으니 끝까지 버틸 수 없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게다가 앞으로 뭐가 더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 아니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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