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바꿀 30년 장기 연구 지원
재단명에 내 이름, 책임지려는 것
어릴 때 아톰만화 보고 자라
망할 뻔한 회사, R&D로 일어서
더 열심히 일 해 1조원 채울 것”
서경배과학재단은 매년 국내외의 신진 한국인 과학자 3~5명을 선발해 최대 25억원(5년 기준)의 연구비를 지원한다. 기초과학, 특히 뇌 과학과 유전체 등 생명과학 분야에서 획기적이고 창의적인 주제로 최소 5년 이상 장기 연구를 지원한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은 학술·교육·문화·복지 분야에서 3개의 공익 재단을 운영하고 있지만 서 회장이 사재를 출연한 것도,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을 만든 것도 처음이다. 출연금은 보유 주식으로 마련할 예정이다. 서 회장은 “시작이 3000억원이고, 더 열심히 일해서 1조원을 채우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 질의 :왜 지금인가.
- 응답 :“언제부터인지 모를 정도로 오랫동안 품었던 꿈이다. 지난해 회사가 70주년을 맞았고, 저도 쉰이 넘었다. 기초과학 분야에서 성과를 보려면 10년, 20년도 모자라니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기 전에 시작하자고 생각했고 아내도 동의했다. 항상 ‘지금이 가장 완벽한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 질의 :왜 과학인가.
- 응답 :“어릴 때 아톰 만화를 보고 자랐다.(웃음) 선친(고 서성환 선대 회장)께서 과학과 기술에서 우위를 확보해야만 세계 선두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고 늘 강조하셨다. 91년 총파업으로 회사가 거의 망할 뻔했을 때도, 이듬해 중앙연구소를 만들었다. 돈 빌리는 것도 너무 힘들고, 물건이 너무 안 팔려서 거래처에서 야단맞는 것도 지겨웠을 때다. 원래 약으로 쓰던 비타민 유도체를 화장품에 적용하기 위해 수백 번 실험했다. 그렇게 해서 97년 내놓은 아이오페 레티놀 제품이 성공했다. 산적했던 문제가 해결됐다. 야, 과학기술의 힘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 질의 :왜 기초과학, 그것도 생명과학인가.
- 응답 :“천외유천(天外有天), 하늘 밖에 또 하늘이 있다는 말처럼 우리가 보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정말 새로운 것을 만들려면, 30년 후의 세상을 바꾸려면 젊은 과학자들이 특이성(Singularity)과 독창성을 갖춘 기초과학 연구를 해야 한다. 학생 때 생물 과목을 좋아했다. 내가 좋아해야 관심을 가지고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생명과학 분야를 택했다.”
- 질의 :새 재단의 연구가 아모레의 화장품 사업과 연관되지 않을까.
- 응답 :“회사의 발전을 위해 이미 연 예산의 약 3%, 수천억원을 연구비로 쓰고 있다. 이 재단은 사회의 발전을 위한 것이다. 아모레는 3년, 5년짜리 연구를 하지만 재단은 30년씩 걸리는 연구를 지원해 세상을 바꿀 무언가를 만들 것이다. 높이 날아서 멀리 보는 새와 빨리 나는 새가 모두 있어야 거대한 기러기 편대가 만들어진다. 혼자 꿈을 꾸면 백일몽이지만, 많은 사람이 꿈꾸면 현실이 된다.”
- 질의 :과학 지원을 통해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나.
- 응답 :“생각 안 해 봤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세계적인 결과물이 나오길 기원한다. 한국에서도 앞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많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자리에 함께 있다면 무한한 영광이겠다.”
- 질의 :본인 이름을 재단명으로 했다.
- 응답 :“아모레의 모든 재단은 선친이 사재를 출연해 만든 것이다. 재단 이름은 100가지도 넘게 생각했지만 책임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려면 내 이름을 거는 것이 제일 좋겠다고 생각했다. 빌 게이츠도 록펠러도 자기 이름을 걸었다.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지 않겠다.”
서 회장은 이날 네 차례나 다른 이들의 동참을 권유했다. “미국에는 이런 재단이 정말 많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더 많이 나와서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합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고 했는데, 어렵고 힘들게 번 만큼 멋있게 써야겠습니다.”
글=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