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퐁 DNA서 나온 ‘골프 괴물’… 안재형·자오즈민의 아들 안병훈, 유럽골프 메이저대회 우승
ㆍPGA 챔피언십 첫 아시아인 우승 “이렇게 빨리 올지 생각도 못했다”
ㆍ‘골프 대디’ 그늘 벗고 홀로서기… 안재형 “심한 기복 안 보여 놀라”
ㆍ상금 10억에 랭킹 54위로 점프… US오픈·디오픈 출전권도 확보
“저러다가 또 금방 어떨지 몰라요. 끝까지 봐야 합니다.”
24일 밤, 안병훈(24)이 유럽프로골프투어 메이저대회인 BMW PGA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4홀 만에 버디 2개를 잡고 단독선두로 앞서갈 때도 탁구 국가대표팀 안재형 코치(50)는 마음을 놓지 못했다. 태릉선수촌에서 밤늦게 TV로 아들을 응원하면서 급격히 분위기를 타는, 기복 심한 아들의 단점을 걱정했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 한·중 탁구 올림픽 메달리스트 커플 안재형-자오즈민의 외아들 안병훈은 이날 잉글랜드 서리주 버지니아 워터의 웬트워스클럽 웨스트코스(파72·7302야드)에서 열린 BMW PGA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이글 1개와 버디 5개를 쓸어담아 7타를 줄이며 최종 합계 21언더파 267타를 기록, 공동 2위 통차이 자이디(46·태국)와 노장 미겔 앙헬 히메네스(51·스페인)를 6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프란체스코 몰리나리(이탈리아)와 공동선두로 같은 조에서 출발한 안병훈은 전반에 2타를 줄인 뒤 11번홀(파4)에서 버디 1개를 더했고, 12번홀(파5)에서는 300야드를 훌쩍 넘기는 티샷과 정교한 아이언샷으로 앨버트로스에 가까운 칩인 이글을 잡아 경쟁자와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버디 2개는 안병훈이 61년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이 대회 사상 첫 아시아인 우승자가 되는 것을 기념하는 장식이었다. 우승 확정 후 안 코치는 “믿기지 않는다. 이전의 병훈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승상금 94만달러(약 10억2000만원)가 걸린 큰 대회, 챔피언조에서 플레이하며 보기 1개 없이 7타를 줄이는 완벽한 플레이를 펼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의 승부사 기질을 물려받아 다혈질인 안병훈은 과거 잘 나가다가도 쉽게 무너지곤 했다.
그러나 안병훈(1m87, 87㎏)은 이 대회를 통해 롱게임과 쇼트게임 등 업그레이드된 기량과 경기 운영 능력을 입증했다. 과거 닉 팔도(잉글랜드), 콜린 몽고메리(스코틀랜드), 베른하르트 랑거(독일) 등 유럽 골프의 전설들이 우승컵을 들었고, 올해는 디펜딩 챔피언인 세계 1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2라운드 합계 5오버파 149타로 컷탈락해 화제가 된 이 대회에서 신인이 우승하리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었다.
안병훈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큰 우승이다. 모든 것은 갑자기 이뤄졌다. 우승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며 기뻐했다. 이번 우승으로 그는 세계 132위에서 54위로 뛰어오르며 다가오는 메이저대회 US오픈과 디오픈 챔피언십 출전권을 확보했다. 올가을 한국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 골프대회에서 세계연합팀에 자력 출전하는 한국 선수가 될 가능성도 커졌다. AP통신과 골프채널 등 세계 언론도 과거 그의 경력을 조명하며 또 한 명의 ‘영건’ 탄생을 반기고 있다.
하지만 성공은 안병훈의 말처럼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부단한 노력과 함께 아들을 최고 골퍼로 키우기 위한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이 오늘의 기쁨을 가능하게 했다.
2007년 초, 대한항공 탁구단을 맡고 있던 안 코치는 돌연 사표를 내고 골프유학 중이던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2년 전인 2005년 미국 플로리다 브래던튼의 데이비드 레드베터 골프 아카데미로 떠난 병훈이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진 데다 체력과 건강이 악화돼 위기를 맞은 게 안 코치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내 자오즈민과 함께 고민한 그는 “병훈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때는 지금이지 나중 어느 때가 아니다”라고 판단,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아빠의 인생은 없는가”라는 주위의 만류를 간신히 뿌리치고 떠난 안 코치는 그때부터 운전기사와 매니저, 캐디 역을 맡으며 본격적인 ‘골프 대디’로 나섰다. 열성을 다해 뒷바라지한 만큼 성공은 쉽게 이뤄지는 듯했다.
아들의 캐디백을 메기 시작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2009년 8월 안병훈은 17세의 어린 나이에 US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십에서 우승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의 18세7개월을 뛰어넘는 역대 최연소 챔피언 신기록을 세웠다. 잭 니클라우스, 우즈, 필 미켈슨 등이 거쳐간 이 대회에 우승하면서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다.
버클리대에 골프 장학생으로 진학했고 2010년 마스터스와 US오픈, 디오픈 챔피언십 등 메이저대회에 나가며 우쭐한 기분을 만끽했다. 2011년엔 예정보다 일찍 프로로 전향해 PGA 투어를 겨냥했다. 그러나 모든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PGA 1·2부 투어는 물론, 유럽투어 시드를 얻는 데도 실패하며 수년간 유럽 2부 투어를 전전해야 했다. 이른 나이에 성공과 영광을 맛본 게 독이 됐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마침내 큰 대회 우승까지 이룬 이상 이젠 그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지난해 유럽 2부 투어에서 처음 우승한 뒤 한 단계 더 발전하도록 캐디백을 내려놓은 안 코치는 올해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기 시작했고, 아들도 새 캐디와 함께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ㆍ‘골프 대디’ 그늘 벗고 홀로서기… 안재형 “심한 기복 안 보여 놀라”
ㆍ상금 10억에 랭킹 54위로 점프… US오픈·디오픈 출전권도 확보
“저러다가 또 금방 어떨지 몰라요. 끝까지 봐야 합니다.”
24일 밤, 안병훈(24)이 유럽프로골프투어 메이저대회인 BMW PGA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4홀 만에 버디 2개를 잡고 단독선두로 앞서갈 때도 탁구 국가대표팀 안재형 코치(50)는 마음을 놓지 못했다. 태릉선수촌에서 밤늦게 TV로 아들을 응원하면서 급격히 분위기를 타는, 기복 심한 아들의 단점을 걱정했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 한·중 탁구 올림픽 메달리스트 커플 안재형-자오즈민의 외아들 안병훈은 이날 잉글랜드 서리주 버지니아 워터의 웬트워스클럽 웨스트코스(파72·7302야드)에서 열린 BMW PGA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이글 1개와 버디 5개를 쓸어담아 7타를 줄이며 최종 합계 21언더파 267타를 기록, 공동 2위 통차이 자이디(46·태국)와 노장 미겔 앙헬 히메네스(51·스페인)를 6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했다.
안재형·자오즈민과 외아들 안병훈(가운데)이 2009년 미국 US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십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한 뒤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프란체스코 몰리나리(이탈리아)와 공동선두로 같은 조에서 출발한 안병훈은 전반에 2타를 줄인 뒤 11번홀(파4)에서 버디 1개를 더했고, 12번홀(파5)에서는 300야드를 훌쩍 넘기는 티샷과 정교한 아이언샷으로 앨버트로스에 가까운 칩인 이글을 잡아 경쟁자와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후 버디 2개는 안병훈이 61년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이 대회 사상 첫 아시아인 우승자가 되는 것을 기념하는 장식이었다. 우승 확정 후 안 코치는 “믿기지 않는다. 이전의 병훈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우승상금 94만달러(약 10억2000만원)가 걸린 큰 대회, 챔피언조에서 플레이하며 보기 1개 없이 7타를 줄이는 완벽한 플레이를 펼치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의 승부사 기질을 물려받아 다혈질인 안병훈은 과거 잘 나가다가도 쉽게 무너지곤 했다.
그러나 안병훈(1m87, 87㎏)은 이 대회를 통해 롱게임과 쇼트게임 등 업그레이드된 기량과 경기 운영 능력을 입증했다. 과거 닉 팔도(잉글랜드), 콜린 몽고메리(스코틀랜드), 베른하르트 랑거(독일) 등 유럽 골프의 전설들이 우승컵을 들었고, 올해는 디펜딩 챔피언인 세계 1위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가 2라운드 합계 5오버파 149타로 컷탈락해 화제가 된 이 대회에서 신인이 우승하리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했었다.
안병훈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큰 우승이다. 모든 것은 갑자기 이뤄졌다. 우승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며 기뻐했다. 이번 우승으로 그는 세계 132위에서 54위로 뛰어오르며 다가오는 메이저대회 US오픈과 디오픈 챔피언십 출전권을 확보했다. 올가을 한국에서 열리는 프레지던츠컵 골프대회에서 세계연합팀에 자력 출전하는 한국 선수가 될 가능성도 커졌다. AP통신과 골프채널 등 세계 언론도 과거 그의 경력을 조명하며 또 한 명의 ‘영건’ 탄생을 반기고 있다.
하지만 성공은 안병훈의 말처럼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의 부단한 노력과 함께 아들을 최고 골퍼로 키우기 위한 부모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이 오늘의 기쁨을 가능하게 했다.
2007년 초, 대한항공 탁구단을 맡고 있던 안 코치는 돌연 사표를 내고 골프유학 중이던 아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2년 전인 2005년 미국 플로리다 브래던튼의 데이비드 레드베터 골프 아카데미로 떠난 병훈이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슬럼프에 빠진 데다 체력과 건강이 악화돼 위기를 맞은 게 안 코치의 마음을 움직였다. 아내 자오즈민과 함께 고민한 그는 “병훈이가 나를 필요로 하는 때는 지금이지 나중 어느 때가 아니다”라고 판단,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아빠의 인생은 없는가”라는 주위의 만류를 간신히 뿌리치고 떠난 안 코치는 그때부터 운전기사와 매니저, 캐디 역을 맡으며 본격적인 ‘골프 대디’로 나섰다. 열성을 다해 뒷바라지한 만큼 성공은 쉽게 이뤄지는 듯했다.
아들의 캐디백을 메기 시작한 지 2년도 채 되지 않은 2009년 8월 안병훈은 17세의 어린 나이에 US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십에서 우승해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의 18세7개월을 뛰어넘는 역대 최연소 챔피언 신기록을 세웠다. 잭 니클라우스, 우즈, 필 미켈슨 등이 거쳐간 이 대회에 우승하면서 탄탄대로를 걷는 듯했다.
버클리대에 골프 장학생으로 진학했고 2010년 마스터스와 US오픈, 디오픈 챔피언십 등 메이저대회에 나가며 우쭐한 기분을 만끽했다. 2011년엔 예정보다 일찍 프로로 전향해 PGA 투어를 겨냥했다. 그러나 모든 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PGA 1·2부 투어는 물론, 유럽투어 시드를 얻는 데도 실패하며 수년간 유럽 2부 투어를 전전해야 했다. 이른 나이에 성공과 영광을 맛본 게 독이 됐지만, 꾸준히 노력하고 마침내 큰 대회 우승까지 이룬 이상 이젠 그 경험이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지난해 유럽 2부 투어에서 처음 우승한 뒤 한 단계 더 발전하도록 캐디백을 내려놓은 안 코치는 올해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국가를 위해 봉사하기 시작했고, 아들도 새 캐디와 함께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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