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은희 전 관악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 (자료사진)
국정원의 대선 개입 댓글 사건을 폭로한 권은희 전 관악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이 당초 밝혀온 불출마 입장을 바꿔 출마하기로 결심했다.그의 전략공천을 두고 새 인물의 수혈론과 국정원 선거 폭로 정당성의 훼손이라는 등의 논란이 심하다.
권 전 과장은 지난달 30일 사직하면서 언론사에 "7·30 재보선 출마에 관한 고려는 전혀 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열흘만에 입장을 바꿨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주변의 권유를 뿌리치지 못한 것이다.
그는 불출마 입장을 번복한 데 대해 "주변에서 이번 결정으로 국정원 사건 외압 의혹의 진실을 밝히려고 한 그동안의 노력과 나의 진정성이 훼손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 역시 고민을 많이 했지만 이런 염려만 하는 게 진실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출마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해야 할 일이 남았다는 것, 그리고 해야 한다는 것 이것이 출마를 결심한 결정적 이유"라고 강조했다.
권 전 과장은 "지금껏 걸어온 길로 쭉 걸어가서 진실을 밝히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며 "그 과정에서 나오는 우려나 비판을 피하진 않겠다"고 말했다.
나름의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음을 내비쳤다.
새정치연합의 한 고위 관계자도 "권 전 과장은 수차례의 출마 요청에도 거절할 만큼 정치에 거리를 두려고 했다"며 "권 전 과장을 설득하는데 아주 힘들었다"고 말했다.
권은희 전 과장은 2013년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수사 외압을 폭로해 화제가 된 인물이다.
2012년 대선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었던 그는 국정원의 대선개입 수사에 대해 외압이 있었다며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이 수사 축소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 전 청장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으나 1심에 이어 지난 5일 항소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고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권 전 과장은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이 2심에서까지 무죄 선고를 받자 심한 갈등을 했고 국정원 댓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자료사진)
◈ 김용판 무죄가 권은희를 정치판으로 몰아간 것결국 이것이 경찰직을 던지고 정치권으로 그를 이끈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그의 출사표처럼 "해야 할 일, (댓글 사건과 김 전 청장의 수사 방해) 진실을 밝히는 일"을 하는 데 국회의원만큼 적격인 직업은 없을 것이다.
그를 지지하는 '권은희와 함께 하는 시민행동' 등 권은희 지지모임은 성명을 내고 7.30 재보궐 선거 출마를 요구했다.
시민행동 측은 "권은희 수사과장은 용기 있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수사에 축소, 은폐 압력이 있었다고 양심선언을 한 뒤 무소불위의 국가기관에 맞서 싸웠다" 며 "우리 모두는 권 과장의 정의감에 환호만 했을 뿐 어느 누구도 지켜주려 하지 않았다"며 그녀에 대한 지지를 강조했다.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은 "누가 의인인지, 시민의 직접 심판을 받게 해야 한다"며 권 전 과장의 출마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소설가인 공지영과 표창원 교수도 "아름다운 사람 권은희, 영원한 수사과장"이라고 하는 등 여론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유명인들도 권 전 과장의 경찰 사퇴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부 누리꾼들은 "권 전 과장을 7.30 후보로 모셔야 한다. 국회에서 일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타내기도 했다.
새정치민주연합으로서도 권은희 전 과장만큼 지명도가 있고 새 인물이 없기에 권 전 과장의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권은희 카드는 무소속 출마라는 배수진을 치고 있는 천정배 전 의원을 주저앉히는데 최상의 대안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
김한길 대표도 "천정배 전 의원의 무소속 출마가 상당한 부담이었다"고 말했다.
천정배 전 의원 (자료사진)
◈ 천정배가 권은희 공천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실제로 천 전 의원은 권 전 과장을 전략공천하자, "잘 한 결정으로 축하한다"며 광주 출마를 접었다.
지난 9일 광주일보 여론조사에서도 권 전 과장에 대한 선호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나왔다.
광주 광산을에서 예비 후보로 등록하고 표밭을 누볐던 김명진 전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비서실장은 권은희 공천에 대한 입장이라는 글을 통해 "권은희 전 과장은 진실을 밝히는 용기와 정의감을 가진 참신한 인물로 광주시민들이 환영할 만한 좋은 후보"라며 박수를 보냈다.
광주시민들의 새 인물에 대한 선호 성향을 정확하게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그걸로 끝나지 않는다. 이번 재보궐 선거가 광주에서만 있는 게 아니고 서울 동작을과 경기도 수원 등 전국 15군데에서 동시에 치러진다.
야당과 진보적인 성향의 유권자들에게는 권은희 과장의 진실 규명을 위한 용기와 정의감에 박수를 보내겠으나 중도 성향이거나 비호남 유권자들 보기엔 권 전 과장의 광주 출마가 별로 좋아 보이질 않는다는 의견도 상당하다.
한 경찰 간부는 "권 전 과장이 야당의 출마 권유를 뿌리치고 댓글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시민단체와 노력한 뒤 2016년 총선에 출마했으면 모양새가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호남 출신인 50대 직장인은 "권은희를 공천해 광주에 출마시키는 것이 동작을과 경기 수원 선거에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며 "오히려 그가 호남 출신이니까 김용판 전 청장의 수사 방해를 폭로한 것 밖에 더 되느냐는 지적이 나올 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40대 직장인(광주 출신)은 "이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새정치연합의 지도부가 참으로 한심하다"며 "이렇게 좋은 판을 왜 호남의 굴레 속으로 빨려들어가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히려 수도권에 사는 호남 출신들이 권 전 과장의 광주 광산을 전략공천에 대해 비판적이다.
◈ 수도권 호남 출신들, "권은희 공천은 잘못된 것"
한 중견 언론인(54)은 "권은희를 공천함으로써 새정치연합은 그동안 국정원 정치개입을 항의하는 명분을 잃었다"며 "권은희를 공천한 것은 최하책이라"고 깍아내렸다.
새정치연합의 한 보좌관(호남 출신)은 "권은희 공천은 바보짓이자 새정치연합의 한계, 아니 김한길, 안철수 대표의 근시안적인 안목"이라고 혹평했다.
한 언론인(40)은 "박근혜 정부의 무능에 진저리가 나지만 권 전 과장을 광주에 공천하는 짓거리를 보면 야당이 정권 다시 잡는 건 시기상조다"라는 격한 표현까지 쓰며 비판했다.
권은희 전 과장의 출마에 대해 새누리당과 보수층의 부정적인 입장은 차치하고서라도 국회를 출입하는 상당수 정치부 기자들도 별로 좋아보이질 않는다고 말한다.
야당 내에서도 논란이 심하고 우려가 많다.
그동안 국정원 개혁을 위해 싸워온 야당의 순수성과 대의가 훼손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다.
전병헌 의원은 "권은희 증언의 가치를 반감시킨 공천"이라고 지적했고, 조경태 의원은 "반 민주적인 이번 공천은 호남 민심을 짓밟는 행위"라고 지도부를 겨냥했다.
권은희 과정의 국정원 선거개입과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의 수사 방해 폭로의 정당성을 스스로 훼손한 것이다.
◈ 새정치연합 내부서도 "정당성 훼손으로 잘못된 결정"
지난달 30일의 권 전 과장의 사표 제출도 선의라기 보다는 7.30 재보궐 선거의 공천을 겨냥한 사전 포석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순수하지 않다는 것이다. 권 전 과장은 '자두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이하부정관(李下不整冠)과 반대로 행동했다.
권 전 과장을 적극 지지하는 쪽에서는 환호를 받을지 모르나 반대쪽과 중간지대에 있는 시민들로부터, 특히 수도권에 사는 호남출신들로부터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권은희 전 과장의 처신.
광주에 출마하느니만큼 당선의 영광을 누릴지는 모르나 그의 말과 행동이 2012년 대선 당시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만큼의 공신력을 얻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신뢰는 쌓기는 어려워도 무너뜨리기는 아주 쉬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