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공산춘우도(空山春雨圖) / 대희(戴熙) / 삼도헌의 한시 산책

含閒 2013. 5. 3. 11:11

공산춘우도(空山春雨圖) / 대희(戴熙)

空山足春雨(공산족춘우)하고 빈산에 봄비 흠뻑 내리고

緋桃間丹杏(비도간단행)이라 복사꽃 살구꽃 울긋불긋 피었네

花發不逢人(화발불봉인)하니 꽃은 피었으나 찾는 사람 만나지 못해

自照溪中影(자조계중영)하네 스스로 시냇물에 그림자 비추고 있네

 

글자 풀이

足(만족할 족) 緋(붉은빛 비) 桃(복숭아 도) 丹(붉을 단) 杏(살구 행)

逢(만날 봉) 照(비출조) 溪(시내 계) 影(그림자 영)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파릇파릇 새싹이 돋는 봄입니다. 새싹은 봄비에 의해 하루가 다르게 자랍니다. 오늘은 중국 청나라 대희(戴熙)가 봄 산에 비가 내리는 광경을 그림으로 그리고 그 여백에 그림의 제목을 적어 넣은 이른바 제화시(題畵詩)인 공산춘우도(空山春雨圖)를 소개합니다.

대희가 그린 이 그림을 미술사가들은 <공산춘우도>라 이름하였고, 이 그림에 붙인 이 시도 따로 시만 엮은 선집(選集)에서는 그냥 “공산춘우도(空山春雨圖)”라는 제목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봄날 꽃구경을 하러 시내 한 가운데 공원에서 즐기는 꽃놀이보다 산중에 홀로 피어있는 봄꽃을 그리고 그 그림에 운치를 돋구어주는 화제를 휘호하면 오래도록 여운이 남습니다. 이 시에서도 그림을 그린 뒤 화제를 쓴 작가가 바라본 봄산의 정감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한시는 통상적으로 앞에서 경치를 말하고 뒤에서 작가의 정감을 말합니다. 이 시에서도 찾는 사람이 적은 산에 봄비가 흠뻑 내리자 울긋불긋 복숭아꽃, 살구꽃이 피어오른 광경을 1구와 2구에서 먼저 제시합니다. 그리고 3구와 4구에서 꽃은 피었으나 찾는 사람이 없어 스스로 개울가에 고운 자태를 비춰보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른바 선경후정(先景後情; 먼저 경치를 말하고 뒤에 정감을 말함)의 수법을 그대로 보이고 있는 시입니다.

대희 [戴熙, 1801~1860]

자 순사(醇士). 호 유암(楡庵), 송병(松屛), 정동거사(井東居士), 녹상거사(鹿牀居士). 저장성[浙江省] 젠탕[錢塘] 출생. 1832년 과거에 급제하고 1848년에 병부시랑이 되었다. 1860년 이수성(李秀成)의 군대가 저장성을 점령하고 항저우성[杭州城]을 포위하자 연못에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그림에 능하여 황학산초(黃鶴山樵) 오중규(吳仲圭)의 가르침을 받고, 왕석곡(王石谷)과 오진(吳鎭)의 특징을 겸비하였다. 전통적 남종화(南宗晝)의 특색을 지녔으나, 형식적 독창력이 부족하고 고유의 개성을 발휘하지 못하였다는 평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