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김삿갓의 상경(삼도헌의 한시산책 208)

含閒 2012. 3. 20. 09:39

김삿갓의 상경(삼도헌의 한시산책 208)

 

 

 

 

 

 

 

 

 

 

 

상경(賞景)

 

 

김병연(金炳淵)

 

 

 

 

一步二步三步立  한 걸음 한 걸음 또 한 걸음 걷다 보니

山靑石白間間花  푸른 산 하얀 바위 사이사이 꽃이로다

若使畵工模此景        화가 불러 이 경치 그리게 한다면

其於林下鳥聲何         저 숲 속의 새소리는 어찌 하려나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오늘은 밤과 낮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입니다.

이제 주위의 산하에 본격적으로 봄기운이 돌기 시작합니다.

봄기운을 받고 새록새록 돋아나는 새순은 점점 초록색으로 채색되어 나갑니다.

유난히 추웠던 동장군도 물러나고

햇살 받은 양지쪽 나무에서는 꽃망울이 하나 둘 터져나옵니다.

겨우내 무채색으로 단조로움을 보이던 들판은 온갖 색으로 단장됩니다.

자연그대로 산수화가 완성되어 가려고 합니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가슴에도 봄이 내려앉습니다.

어디선가 이 아름다운 경치에 운치를 더하는 새소리가 들립니다.

이 시는 조선후기 방랑시인 김삿갓(김병연)김립시집(金笠詩集)에 나옵니다.

김삿갓이 어느 봄날 등산하면서 지은 시입니다.

쉬운 글자들로 시를 지었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구에서는 시각에서 청각으로 옮겨 새소리까지 담아내고 있습니다.

주변에 다가온 봄을 만끽하시면서 먹향을 가까이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김병연(金炳淵 1807~1863)

 

 

1807(순조 7) 경기 양주~ 1863(철종 14) 전라 동복(同福). 조선 후기의 방랑시인.

본관은 안동. 자는 성심(性深), 별호는 난고(蘭皐), 호는 김립(金笠) 또는 김삿갓.

그의 일생은 여러 가지 기록과 증언들이 뒤섞여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6세 때에 선천부사(宣川府使)였던

할아버지 익순(益淳)이 평안도농민전쟁 때 홍경래에게 투항한 죄로 처형당하자,

그는 황해도 곡산에 있는 종의 집으로 피했다가 사면되어 부친에게 돌아갔다.

아버지 안근(安根)이 화병으로 죽자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廢族)의 자식으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어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그는

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할아버지 익순을 조롱하는 과시(科詩)로 향시(鄕詩)에서 장원하게 되었다.

그뒤 어머니로부터 집안의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의 자식이라는 세상의 멸시를 참지 못해 처자식을 버려두고 집을 떠났다.

자신은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면서 삿갓을 쓰고 방랑했으며,

그의 아들이 안동·평강·익산에서 3번이나 그를 만나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매번 도망했다고 한다. 57세 때 전라도 동복현의 어느 땅(지금의 전남 화순군 동복면)

쓰러져 있는 것을 어느 선비가 자기 집으로 데려가 거기에서 반년 가까이 살았고,

그뒤 지리산을 두루 살펴본 뒤 3년 만에 쇠약한 몸으로

그 선비 집에 되돌아와 죽었다고 한다.

그의 시는 몰락양반의 정서를 대변한 것으로 당시 무너져가는 신분질서를 반영하고 있다.

풍자와 해학을 담은 한시의 희작(戱作), 한시의 형식에 우리말의 음과 뜻을

교묘히 구사한 언문풍월이 특징이다. 구전되어오던 그의 시를 모은 김립시집이 있다.

1978년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 기슭에 그의 시비(詩碑)를 세웠고,

강원도 영월에도 전국시가비동호회에서 시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