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매창의 춘사(삼도헌의 한시산책 210)

含閒 2012. 3. 29. 17:20

매창의 춘사(삼도헌의 한시산책 210)

 

 

삼도헌의 한시산책 210

 

 

 

 

 

 

 

 

 

 

 

 

 

 

 

 

 

 

 

봄날의 그리움(春思)

 

 

 

 

 

이매창(李梅窓)

 

 

 

 

 

            東風三月時(동풍삼월시) 삼월이라 동녘바람이 불어올 때

            處處落花飛(처처낙화비) 곳곳마다 꽃이 져 흩날리네.

            綠綺相思曲(녹기상사곡) 거문고 뜯으며 임 그리워 노래해도

            江南人未歸(강남인미귀) 강남으로 가신님은 돌아오지 않네.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오늘은 조선의 여류시인이자 기생이었던 매창이 한 무제(漢武帝)때 풍류재사였던 사마상여(司馬相如)와 그의 아내 탁문군(卓文君)의 러브스토리의 도구가 된 거문고에 얽힌 고사를 빌어와 자신의 심정을 드러낸 시를 소개한다. 매창은 봄꽃이 피고지는 계절에 동풍이 불어오자 그리운 님을 기다린다. 자신을 남겨두고 떠난 님은 오리무중. 봄날이 다가도록 소식조차 전해주지 않는다. 봄이 되어 꽃이 활짝 피자 해후의 기대감에 부풀었는데 야속하게도 동풍이 심술을 부려 소망을 담은 꽃이 낙화되어 사방에 흩날릴 때 까지 그리운 님은 나타나지 않는다. 시적화자는 떨어지는 꽃잎을 보면서 거문고를 뜯으며 그리움을 노래로 달래지만 눈앞에 보고픈 님은 나타나지 않으니 가슴 가득한 정한을 옥구로 읊는다. 이 시에서 매창은 村隱(촌은) 劉希慶(유희경)과 정이 깊었으나 그가 귀경하자 소식이 끊겨 오매불망 그리움을 드러낸 것이다. 특히 시구에 나오는 녹기(綠綺)는 중국에서 유명한 거문고로 알려진 녹기금(綠綺琴)을 줄인말이다.

 

 

예로부터 군자가 지녀야 할 고상한 취미는 금기서화(琴棋書畵)라고 했다. 즉 거문고, 바둑, 서예, 그림을 말한다. 그 중에서 거문고는 군자가 배워야할 품위있는 취미 가운데 우선적으로 꼽혀왔다. 중국에서는 명금(名琴)으로 소문난 사대명금(四大名琴)’이 있었으니, 제환공(齊桓公)호종(號鐘)’, 초장왕(楚莊王)요량(繞梁)’, 사마상여(司馬相如)녹기(綠綺)’, 채옹(蔡邕)초미(焦尾)’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은 녹기를 비롯한 사대명금을 간략하게 함께 소개한다.

 

 

첫째, 호종은 주나라 때 유명한 거문고로 알려져 있다. 제환공이 거문고에 능통해 많은 거문고를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아낀 명금이었다고 한다. 환공이 거문고를 연주할 때 마치 종을 치듯이 큰 소리가 났기 때문에 호종(號鐘)이라고 일컬어진다. 환공이 이 호종을 연주하면 주위에서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둘째, <<열자(列子)>>에 전하길 요량의 남은 음()이 삼일동안 끊어지지 않는다[餘音繞梁, 三日不絶]”는 글이 있다. 곧 거문고를 연주한 뒤 그 소리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아있다는 의미이다. 이 이야기는 화원(華元)이라는 사람이 요량이란 거문고를 초()의 장왕(莊王, BC 614~BC 591)에게 바쳤는데, 장왕은 요량을 종일 연주하기도 하는 등 이 명기에 취해 일주일 간 국사를 팽개치고 음악에 도취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왕비였던 번희가 나라를 잃지 않으려면 국사를 돌보라고 간청하게 되었고, 마침내 장왕이 각성한 뒤 사람을 시켜 철여의로 거문고를 부숴버렸기 때문에 왕의 마음까지 뺏어갈 정도의 명기는 영원히 사라졌다고 전한다.

 

 

셋째, 초미는 동한의 서예가, 문학가, 음악가인 채옹이 직접 만든 거문고로 알려져 있다. 채옹이 오나라로 귀양가서 불속에서도 타지않는 오동나무를 얻게 되어 그것으로 거문고를 만들었는데 소리가 비범하였고, 꼬리부분[]에 불에 탄 자국[]이 있었기 때문에 초미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넷째, 녹기는 오늘 소개하는 시의 셋째 구에 나오는 거문고이다. 이 거문고는 한()나라 때 유명한 문인이었던 사마상여(司馬相如, BC 179~BC 117)가 연주하던 금()이다. 사마상여는 원래 집안이 가난했지만 글재주가 출중했다. 양왕(梁王)이 그의 명성을 흠모해 글을 요청하자, 사마상여는 여옥부(如玉賦)”를 지어주었다. 양왕이 흡족해 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명금인 녹기를 주었는데, 녹기에는 동재합정(桐梓合精)”이라고 씌어져 있었는데, 오동나무[]와 가래나무[]를 합쳐서 만든 명금이란 뜻이다. 이후 사마상여의 뛰어난 연주술과 명금이 상승효과를 내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어느 날 사마상여가 당시 부자로 소문난 탁왕손(卓王孫)의 연회에 참석하자 좌중에서 그의 명성을 듣고 연주를 청했다. 사마상여는 탁왕손의 딸인 탁문군(卓文君)이 미모에 거문고를 잘 다룬다는 소문을 듣고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마침 그 자리에 탁문군이 있었다. 사마상여는 봉구황(鳳求凰, 봉이 황을 구한다는 내용)”곡을 연주하며 공개적으로 탁문군에게 구애를 했다. “봉이란 새가 천하를 돌며 제 짝인 황을 찾다가 고향에 왔는데, 방안에 있는 아름다운 한 여성이 내 속을 상하게 하는구나. 우리 원앙이 되면 어떠리(鳳兮鳳兮歸故鄕 遊邀四海求其凰有一艶女在此堂室邇人遐毒我腸何由交接爲鴛鴦)”. 탁문군 또한 평소 사마상여의 명성을 듣고 있었는데 그의 연주와 노래를 듣고 마음이 통해 함께 야반도주하여 결혼했다. 이렇게 사마상여가 녹기라는 거문고로 짝을 구한 이야기는 전설처럼 전해지고 있다. 중국판 러브스토리로 보면 크게 틀린말은 아닐것 같다.

 

 

 

 

 

李梅窓(이매창, 1513~1550(중종 8 ~ 명종 5)

 

부안(扶安)의 기생이었던 이매창은 개성의 황진이와 더불어 한시에 능한 조선의 대표적인 명기로 손꼽힌다. 38세에 요절한 매창은 계유년(선조 6)에 태어났다고 해서 계생(癸生), 계랑(癸娘)이라 불리기도 했다. 본명은 桂生(계생), 매창은 호, 扶安(부안)의 명기로 한시를 잘 지어 58수가 전해온다. 그녀는 아전 이탕종(李湯從)과 기생 사이에서 태어난 서녀다. 그러나 가무와 시문과 거문고에 뛰어나 당대의 문사인 유희경(劉希慶), 허균(許筠), 이귀(李貴) 등과 깊은 교류를 맺고 지냈다. 그녀가 지은 시들은 여성적 정서가 잘 표현됐다고 평가받고 있다. 시 중에 추사(秋思)’, ‘ 춘원(春怨)’, ‘ 견회(遣懷)’, ‘ 증취객(贈醉客)’, ‘부안회고(扶安懷古)’, ‘자한(自恨)’ 등이 유명하다. 1974년 부안 읍내 북쪽에 우뚝 솟은 상소산 기슭 서림공원에 매창의 시심과 문학정신을 기리는 시비가 세워졌다.

 

 

   2012. 3. 28.

 

   삼도헌 발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