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왕유의 과향적사

含閒 2010. 11. 23. 15:06

삼도헌의 한시산책 126 왕유의 과향적사

 






                          향적사를 찾아서(過香積寺)

 

 

                                           왕유王維 (669?-759)

 

    不知香積寺 부지향적사 / 향적사가 어딘지도 모른 채
    數里入雲峯 수리입운봉 / 구름 걸린 봉우리로 몇 리를 들어갔네.
    古木無人 고목무인경 / 고목뿐 오솔길도 없는데
    深山何處鐘 심산하처종 / 깊은 산 어디선가 종소리 들려오네.
    泉聲咽危石 천성열위석 / 샘물은 가파른 바위틈으로 목메듯 흐르고
    日色冷靑松 일색랭청송 / 햇살은 푸른 솔숲을 차갑게 비추네.
    薄暮空潭曲 박모공담곡 / 저물녘 텅 빈 못 굽이에서
    安禪制毒龍 안선제독룡 /  편히 禪定에 들어 번뇌를 잠재우리라.

       

      * 香積寺(향적사) : 섬서성(陝西省) 서안시(西安市) 남쪽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사찰.
      * 過(과) : 들르다.
      * 人徑(인경) : 오솔길.
      * 何處(하처) : 어느 곳.
      * 鐘(종) : 종이 울리다.
      * 咽(열) : 주로 인후(咽喉)의 목구멍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나

                 여기서는 울다가 목이 메는 것으로 험준한 바위 사이를 뚫고 흐르는

                 샘물 소리를 비유하였다.
      * 薄暮(박모) : 해질 무렵.
      * 潭曲(담곡) : 못의 굽이진 곳.
      * 安禪(안선) : 편안히 앉아 선정(禪定)을 닦는 것이다.
      * 制(제) : 누르다. 제압하다.
      * 毒龍(독룡) : 독을 품은 용. ≪열반경(涅槃經)≫의 불교 고사에 등장하는

                  탐욕스런 용을 말한다.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오늘은 서예인들이 즐겨 휘호하는 중국 당대(唐代) 왕유의 선시를 소개한다.

      왕유는 말년에 불교에 귀의하였다. 그의 이름 ‘유(維)’와 자(字) 마힐(摩詰)은

      모두 불교의 ≪유마경(維摩經)≫에 나오는 ‘유마힐(維摩詰)’이란

      거사(居士)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심(佛心)이 깊었던 왕유는 불교적 색채가 짙은 서정시를 많이 남겼다.

      따라서 후대에서는 그는‘시불(詩佛)’이라고도 불렀다.

      그는 이러한 문학적 성취와 함께 그림에도 빼어난 재주를 발휘하였다.

      명말청초의 동기창은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의 시조로 올려놓을 정도로

      왕유의 그림을 높히 평가하였다. 

       이와같이 시(詩)·화(畵)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왕유의 예술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숭모하였다. 일찍이 송(宋) 소식(蘇軾)은 왕유의 시와 그림에 대해

      “시 속에 그림이 있는 듯하고, 그림 속에 시가 있는 듯하다(詩中有畵 畵中有詩)”

      라고 말한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왕유는 위의 시에서 향적사의 위치는 몰랐지만 결국 찾아가게 된 전후 상황을

      그림 그리듯 묘사해내고 있다.

      향적사의 위치도 모르면서 구름 덮인 봉우리를 넘어서면, 

      속세와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 같아 산속의 사찰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고목이 우거진 인적드문 숲속길을 걷노라니 

      영혼을 깨우는 산사의 종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6. 7구에서 왕유의 솜씨는 돋보인다.

      가파른 바위틈에서 흘러내리는 샘물 소리를 청각적으로 그리고 있고,

      파란 소나무 위에 떨어지는 햇살을 시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해질녘 호젓한 호수가에서 좌선(坐禪)을 통해

      일체의 번뇌와 탐욕을 누르고 속세와 완전히 분리되는

      득도(得道)의 경지를 찾는 불심으로 시를 마무리 한다.

      이 시를 통해 그는 속세의 진애를 떨쳐내고

      향적사라는 사찰을 찾음으로 인해 도를 구하는 구도자(求道者)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담백한 한폭의 수묵화처럼......

       

       

      향적사 (香積寺)
      당나라 때인 706년에 창건된 중국 정토종의 본산인 사찰로,
      시인인 왕유(王維:701∼761년)의 오언율시 과향적사(過香積寺)로 유명한 곳.
      높이 33m인 벽돌탑인 선도고탑(善導古塔) 등이 있고,
      선도대사(善導大師)의 상이 있는 대웅보전이 건축되어 있다.
      서안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17㎞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왕유王維

       

       

       

      왕유王維 (669?-759)

       

       왕유는 당대(唐代) 중국 문화사의 황금기에 활동한 유명한 예술가이다.

      21세 때 진사(進士)시험에 급제했고, 말년에 속세에 환멸을 느끼게 되어

      장안 종남산[終南山]의 망천(輞川) 옆에 있는 시골에 틀어박혀 불교 연구에 몰두했다.

      왕유가 지은 시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꼽히는 것들은

      대부분 시골 풍경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다.

       왕유는 남종화의 시조로서 산수화를 발달시킨 최초의 사람 중의 하나로 특히 유명하다.

      그는 생존시에 설경산수화로 유명했으며,

      가장 유명한 작품은 〈망천도 輞川圖〉라는 화권(畵卷)이다.

      기록상 그의 작품에서 발묵(潑墨) 기법이 최초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후세에 성인에 버금가는 지위까지 올라간 것은

      그가 화가인 동시에 위대한 시인이었기 때문이다.

      중국 명시 선집에 그의 작품은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는 이백(李白 : 701~762)·두보(杜甫 : 712~770) 등의 유명한 당대 시인들과 함께

      서정시 형식을 완성한 시인으로 손꼽힌다.


    '한시 산책(漢詩散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익조연리지(比翼鳥 連理枝)  (0) 2010.12.01
    유종원의 강설  (0) 2010.11.29
    가을바람(秋風引) 유우석(劉禹錫772-842)   (0) 2010.11.16
    秋夜雨中/崔致遠  (0) 2010.10.19
    최치원 시 몇 수  (0) 2010.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