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실명[陋室銘]
산불재고[山不在高], 유선칙명[有仙則名]
수불재심[水不在深], 유룡칙령[有龍則靈]
사시누실[斯是陋室], 유오덕형[惟吾德馨]
태흔상계록[苔痕上堦綠], 초색입렴청[艸色入簾靑]
담소유홍유[談笑有鴻儒], 왕래무백정[往來無白丁]
가이조소금[可以調素琴], 열금경[閱金經]
무사죽지난이[無絲竹之亂耳], 무안독지노형[無案牘之勞形]
남양제갈려[南陽諸葛廬], 서촉자운정[西蜀子雲亭]
공자운[孔子云], 하루지유[何陋之有]
[해의 解義]
산은 그 높이가 아니라, 그 산에 신선이 살면 이름이 나는 것이다. 물도 그 깊이가 아니라 그 물에
용이 살고 있어야 신비하고 훌륭한 곳이 된다.
나의 집이 작고 좁으나 나의 인격만은 품위 있고 훌륭하다 하겠다. 비록 좁은 집이긴 하나 부끄럽지
않다. 계단 이끼의 초록색이 발안으로 비쳐든다. 담소하는 사람들은 대학자이고 오가는 사람 중에는 무위무관의 천민은 없다.
이 집에서는 장식 없는 거문고 줄을 고르면서 탈 수 있고, 금처럼 귀한 경서도 읽을 수 있다. 사죽
악기의 흥겨운 소리가 귀를 어지럽히는 일도 없고, 심신을 피로하게 하는 관청의 공문서나 편지 따위도 없어 조용하고
편안하다.
제갈공명의 초려[草廬]와 양자운[揚子雲]의 정자 등 고래[古來]의 명사들의 운치 있는 암자에 비교할
만한 집이다. 그러므로 작고 좁으나 거기 사는 사람이 군자의 덕을 갖추었으면, 공자의 말씀처럼 무슨 누[陋]가 거기 있으랴. 이런 의미에서 나의
누실은 조금도 더럽지 않다.
이 글은 유우석이 자기 집에 대하여 작고 좁기는 해도 결코 누실이 아니라고 주장한
글이다. 그는 자기의 초라한 방을 겸손하게 [누실]이라고 명명했지만, 한편으론 [덕이 있는 군자가 그 나라에 있으면 오랑캐 나라일지라도
더럽다고는 할 수 없다.]라는 공자의 말씀이나 안연[顔淵]이 누항[陋巷]에 있으면서도 그 뜻 을 버리지 않았음을 서로 비교하여, 비록
누실일지라도 거기 사는 사람이 덕이 있으면 조금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신념을 밝혔다. 이것은 자경[自警]을 위한 명문[銘文]인데, 그가
화주 자사[和州刺史]로 있을 때의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