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畵兒)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 나도 한 때

含閒 2010. 5. 6. 13:51

  나도 한때




특별히,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 내담자에 대한 공감력이
유별난 것으로 알려진 어느 상담전문가의 과거사는 짠합니다.
끔찍한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에
성인이 된 후에도 자기비하, 관계부적응 등의 고통을 겪다가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는데
우연히 자신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가진 정신과 의사를 만났고
‘나도 한때..’라는 그의 진심어린 공감에 삶이 바뀌었답니다.
그런 경우의 ‘나도 한때’라는 말은
내가 상대방을 뿌리 깊이 이해한다는
혹은 그러고 싶다는 간절함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나도 한때’ 화법은 ‘내가 왕년에’ 같은 유치한 부풀림이나
‘내가 해봐서 아는데’ 같은 자만심으로 이어집니다.
내가 연애 좀 해봤다고 지구상 모든 남녀의 연애 감정 중
내가 모르는 건 하나도 없다 큰소리칠 수 없고,
내가 한때 삽질 좀 해봤다고 불도저의 작동 매커니즘까지
훤히 꿰뚫고 있는 것처럼 자신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다 보면 휴가지에서 좀 ‘쎄게’ 일광욕 한 경험을 바탕으로
‘나도 한때 흑인이었다, 이제야 그들의 심정을 이해할 만하다’는
식의 개그를 남발하는 당사자가 되는 일, 순식간입니다.

한 연구 결과에 의하면 동일한 물리적 자극에도 사람마다
통증의 정도를 다르게 느끼는 것은 심리적 요인이 아니라
통증을 감지하는 뇌의 특정 부분이
남들보다 더 활성화되는 사람들이 있어서라지요.
그러니 심리적 문제에서야 더 말할 게 없지요.
동일한 경험을 했다고 해서 그로 인한 고통이나 기쁨 같은
감정이 똑같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에 속합니다.

그런 사실을 망각하고 ‘나도 한때’ 화법을 선호하다가
돌이킬 수 없이 관계가 어긋나는 이들,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제 경험에 의하면 나이가 많아질수록, 자식이 장성할수록,
권력이 많아질수록 ‘나도 한때’의 위험성은 점점 높아지던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