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

최진영, 갑작스러운 자살 왜?

含閒 2010. 3. 29. 16:39
좋은 곳에서 편히 쉬소서
 
최진영, 갑작스러운 자살 왜?

  최진실의 동생 최진영이 갑작스럽게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최진영은 29일 서울 논현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목을 메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날 오후 3시께 119 신고를 받은 경찰이 출동했지만 이미 숨진 뒤였다. 서울 영동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안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진영의 갑작스러운 자살을 둘러싸고 원인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최진영의 소속사 엠클라우드엔터테인먼트의 관계자는 "최근 (최진영에게서)전혀 안좋은 기색을 발견하지 못했다. 지난 달 소속사를 정하고 연기 활동을 재개할 의욕을 다지고 있었다"며 "갑작스러운 일에 소속사도 충격을 받았다"고 전했다.

최진영은 2009년 39세 나이에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뒤늦은 학구열을 불태웠다. 최진실의 두 자녀 환희·준희의 양육을 맡아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3월초 기자 간담회에서는 "조카들을 위해 연기 활동을 재개하기로 했다. 떳떳한 삼촌이 되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최진영이 연기 활동과 조카 양육 및 학업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여왔기에 갑작스러운 자살이 더욱 충격적으로 여겨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우울증에 의한 자살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추측에 불과하다. 철저한 현장 검증 및 조사를 통해 밝혀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2008년 10월 최진실이 자택에서 우울증에 의해 자살 이후 1년반만에 최진영마저 세상을 등지게 되자 팬들 및 연예계는 충격에 휩싸여 있다. 최진실의 두 자녀와 어머니에 대한 안타까움도 깊어져 가고 있다.

 

故최진실·최진영 남매, 생전 각별했던 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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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진실(왼쪽)과 고 최진영 ⓒ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29일 스스로 생을 마감한 가수 겸 배우 최진영과 2008년 숨진 누나 최진실의 각별했던 우애가 새삼 대중의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고 최진영은 이날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자택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병원 측은 브리핑을 통해 "이미 병원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사망한 상태였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 같은 비보는 2008년 자택에서 목숨을 끊은 고 최진실과 더욱 닮아 있어 남은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생전 고 최진영과 고 최진실은 남다른 우애를 자랑하는 남매였다. 고 최진영은 한 토크쇼에 출연했을 당시 자신이 프로필 촬영부터 출연 섭외까지 모두 해 최진실을 키웠다고 밝힌 바 있다.

고 최진영은 "처음에야 말렸지만 그 후 사진관에서 카메라를 빌려 들판에서 프로필 사진까지 찍어주었다"며 "누나의 사진을 들고 충무로 에이전시를 돌아다니며 '단역이라도 괜찮으니 꼭 연락달라'고 직접 매니저 역할까지 했다"며 남다른 우애를 공개했다.

이후 함께 인기가도를 달리게 되자 두 사람은 서로 연예계 생활에서 가장 든든한 조력자를 자처하며 의지해왔다.

2007년 KBS 2TV 아침드라마 '사랑해도 괜찮아'로 10년 만에 연기에 복귀하게 됐을 때에도 고 최진영은 "누나가 '넘치는 의욕이나 뭔가 보여주겠다는 의지도 좋지만 오버가 될 수 있다. 장장 150회를 해야 하니 그 안에 보여줄 여유가 많다. 쉬엄쉬엄 가라'고 말했다"며 아낌없는 조언을 받았었다고 털어놨다.

또한 당시 최진영은 결혼에 대한 질문에 대해 "누나는 언제라도 결혼을 하라는 입장이지만, 조카 환희와 수민이에게 부족한 걸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상황에서 나밖에 없다"며 "완벽하게 모든 걸 대신할 순 없겠지만 지금은 조카들에게 애정을 쏟고 싶다"고 말하며 누나와 두 조카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더불어 그는 누나의 사망 이후에도 두 조카와 어머니를 돌보며 최선을 다해왔다. 최근 한 연예기획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복귀를 준비한 배경에도 두 조카에 대한 책임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만큼 생전 돈독했던 우애를 과시했던 남매이기에 같은 길을 떠난 두 사람의 운명에 대중들은 더욱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

 

비극으로 끝난 최진실-최진영 남매 성공신화

연합뉴스 | 입력 2010.03.29 17:43 | 수정 2010.03.29 17:45

가난딛고 '연예계 스타'..약 1년반 사이 잇따라 사망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고(故)최진실에 이어 그의 하나뿐인 동생 최진영이 29일 숨진 채 발견되자 이들 남매의 비극적인 스토리가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최진실-진영 남매는 어린 시절의 가난을 이겨내고 각기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와 인기 스타가 된 성공스토리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해줬다.

그러나 누나 최진실이 폭력이 점철된 떠들썩한 이혼과 그에 따른 우울증으로 2008년 10월2일 자살한 데 이어, 약 1년 반 만에 동생이 숨진 채 발견되면서 이들 남매의 성공신화는 슬프게 막을 내리고 말았다.

둘은 아버지와 이혼한 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성장했다. 어린 시절 두 사람은 밥을 제대로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

최진영은 지난해 KBS 2TV '박중훈 쇼'에 출연해 "밥을 먹을 돈은 커녕 등하교시 버스를 탈 돈이 없어 먼 거리를 통학해다녔고, 누나가 햄버거 가게에서 온종일 아르바이트하고 난 후 얻어오는 햄버거 한 개를 기다렸다가 먹었다. 누나를 기다렸다기보다 누나가 날 주려고 한 개씩 얻어오는 햄버거를 매일 기다렸다"고 말했다.

최진실이 이 시절 밥 대신 수제비만 먹어 돈을 벌고 난 후에는 한동안 수제비를 거들떠 보기도 싫어했다는 사연은 전국민이 알 정도로 유명하다.

최진실은 그러나 이후 TV에 출연해 "수제비를 너무 많이 먹어 다시는 수제비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했지만 시간이 지나니 수제비가 다시 먹고 싶어졌다. 나만큼 수제비를 잘 끓일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수제비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최진실은 스무살이던 1988년 한 CF에서 유명 여배우 대신 수영장에 뛰어드는 대역 연기를 펼치는 등 단역 모델을 시작으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그러다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라는 카피가 대히트를 친 가전 CF 이후 연예계의 신데렐라로 부상했고, 이후 20년 큰 사랑을 받으며 연예계의 정상에 군림했다.

최진실이 연예계에서 성공하면서 최진영이 누나의 뒤를 따랐다. '최진실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출발하기는 했지만, 최진영도 귀여운 외모로 어필하며 1990년대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서 주조연으로 활약했다.

최진실은 동생의 일이라면 발벗고 나서며 동생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고, 최진영 역시 누나의 일이라면 어떤 일이든 제일 앞에 서서 해결하려 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들 남매는 연예계에서 '용감한 최씨 남매'로 불렸다.

특히 최진영이 배우로서 지지부진하다 1999년 '스카이'라는 예명으로 1집을 내고 가수 데뷔를 했을 때는 최진실이 동생의 재기를 기원하며 종횡무진 홍보활동을 펼친 사실이 유명하다. 그는 톱스타였는데도 동생의 음반 홍보를 위해 각종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열과 성을 다해 연예계 관계자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최진영은 당시 "누나를 위해서라도 꼭 성공하고 싶다"고 누누이 말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들 남매의 성공 신화에는 서서히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최진실이 조성민과 이혼 후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최진영이 연예계에서 이렇다할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된 것.

최진실은 정점에 있던 2000년 프로야구계 톱스타인 조성민과의 결혼으로 동화 같은 러브 스토리를 보여줬다. 당대 최고의 여배우와 일본 명문 구단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투수의 결혼은 국내외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결혼 생활은 원만하지 않았고, 2004년 8월 조성민이 최진실의 집에서 폭력을 휘둘러 긴급체포되는 사건까지 불거진 후 둘은 2004년 9월 이혼했다. 이후 최진실은 모든 연예활동을 접는 등 연기 인생에 큰 타격을 받았고, 한 아파트 건설업체로부터 "분양광고 모델계약을 맺은 뒤 사생활 관리를 잘못해 기업이미지를 훼손시켰다"는 이유로 30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그랬던 최진실은 2005년 KBS 2TV 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재기에 성공하는데, 그 뒤에는 그의 옆을 항상 지켜주던 최진영이 있었다. 둘은 수시로 깊은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줬고, 그 누구보다 단단한 오누이의 정을 나눴다.

그것이 어떤 때는 너무 과하게 표출돼 문제가 되기도 했다. 2007년 최진영이 출연한 KBS 2TV 아침드라마 '사랑해도 괜찮아'의 쫑파티에 동생을 응원하기 위해 참석한 최진실이 제작진 중 한명과 시비가 붙자 최진영이 "왜 우리 누나에게 뭐라고 하느냐"며 폭행을 휘둘러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이 사건을 두고 둘의 지인은 너나할 것 없이 "역시 남매는 용감했다"고 입을 모았다.

2008년 MBC TV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아줌마의 판타지를 자극하며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킨 최진실은 당시 인터뷰에서 "진영이가 아빠처럼 조카들을 너무 잘 봐줘 고맙고, 그런 진영이가 집안을 지키고 있어 너무 든든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진실은 끝내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두 자녀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최진영은 자택에서 목 맨 채 숨진 누나를 제일 먼저 발견하고 누나의 목에 감긴 줄을 풀어줬다.

최진영은 이후 한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는 말을 많이 했고, "밤에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어 밤을 꼬박 새운 뒤 아침에야 잠을 잔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줬다.

최진영은 그러나 한동안의 방황 뒤 "누나가 생전에 그렇게 소원하던 대학에 진학하겠다"며 2009년 한양대 예술학부에 진학했고, 어머니와 함께 두 조카를 키우며 새로운 출발을 하는 듯 보였다.

그는 지난달 새로운 소속사와 계약을 맺었고, 지난 2일에는 연예계 복귀 계획을 밝히는 기자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7일 뒤 그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며 누나의 뒤를 따랐다.
한편 법원은 최진실이 죽은 지 1년여 뒤인 지난 2월 최진실의 이혼 당시 한 건설업체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그의 소송을 이어받은 두 자녀가 옛 소속사와 연대해 이 건설업체에 총 2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최진실-최진영 남매의 삶과 이별, 그리고 죽음

조이뉴스24 | 입력 2010.03.30 06:46

 

< 조이뉴스24 >
연예사에 이처럼 불행한 사건이 또 있을까. 지난 29일 오후 최진영이 사망했다는 비보는 가히 충격적이다.

누나 故 최진실이 세상을 등진 뒤 1년 6개월만에 동생이 뒤를 쫓았다는 믿기 어려운 이 사실은 한국 연예사의 전대미문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고인이 된 최진영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방송을 통해 두 조카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또한 최근엔 새 소속사에 둥지를 틀고 연예계 복귀를 준비 중이었던 터라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연예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상의 여배우와 그의 동생의 슬픈 죽음. 비극적인 남매의 삶과 죽음이 던져준 후유증이 한동안 대중들의 뇌리에서 쉽게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만남

최진영과 대중과의 첫 만남은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2-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기억된다. 이후 정지영 감독의 영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 등에 출연하며 하이틴 스타배우로 이름을 높였다.

1996년 한재석-김남주-박소현 등과 함께한 드라마 '도시남녀' 출연할 당시만 해도 그는 반항적이고 거친 카리스마로 뭇 여성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진실의 동생이 아닌 청춘 스타로 그는 앞날은 밝게만 보였다.

그러나 그는 1999년 '스카이'라는 이름으로 가수로 데뷔했고 2000년 골든디스크상 신인가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스카이' 시절 그는 노래 '영원'을 통해 감성적이면서도 허스키한 목소리로 팬들에게 어필했다. 곡에 맞는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피를 토하는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는 당시 그의 고백은 아직도 그의 가수로서의 열의와 성의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한다.

하지만 가수로서의 그의 길은 평탄치 않았다. 이후 가요음반 시장의 붕괴로 그는 3집 음반을 끝으로 공식 활동을 마감한다. 이후 1998년 드라마 '방울이'에 출연한 최진영은 2007년 KBS 2TV 아침드라마 '사랑해서 괜찮아'를 통해 오랜만에 브라운관에 복귀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별

2008년 10월 그는 세상에서 가장 큰 산을 잃고 만다. 어릴 적부터 우애가 남달랐던 그의 누이 최진실이 이혼과 싱글맘으로서의 아픔, 우울증, 갖가지 악성루머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끝내 그의 곁을 떠나고 만다. 그는 오열했고 남은 두 조카의 친권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게 된다.

실의에 빠졌던 최진영은 상실의 고통을 잊으려는 듯 다음해 3월 한양대 연극학과에 입학, 뒤늦은 학구열을 불태운다. 몇몇 동료 배우들과 사랑의 연탄배달 봉사 활동에도 나서는 등 그는 점차 밝은 모습을 찾아갔다.

지난 여름에는 연극 '한여름 밤의 꿈'으로 잠시 연예계에 복귀했다. 당시 연극에서 드미트리어스 역을 맡은 최진영은 "연습을 하면서도 많이 배우고 행복했는데 직접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나 공연을 하니 더 새롭고 또 다른 것들을 많이 배우고 있는 것 같다"고 첫 공연 소감을 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해 8월 최진실의 유골함 도난 사건이 발생했고 그는 또 다시 풍진 세상과 기난 긴 싸움을 벌여야만 했다.

다행스럽게 유골함은 사건 발생 22일 만에 유족 품에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는 치유되기엔 너무 골이 깊었다.

◆죽음

최진영은 29일 오후 2시께 논현동 자택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강남경찰서와 세브란스 병원 측에 따르면 최진영은 이날 오후 2시14분경 변사체로 어머니에 의해 발견됐다. 경찰 측은 "사체 검시를 한 결과 외부 타살 혐의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했다.

故 최진영의 소속사인 엠클라우드엔터테인먼트 측은 고인의 사인을 '경부압박질식사'로 최종 입장을 정리했다. 측근들에 따르면 최진영은 최근까지 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심신이 극도로 지쳐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고인의 미니홈피에는 '내가 가장 아끼는 누나와의 마지막 사진'이라는 제목의 빛 바랜 사진 한장이 남겨져 있다. 그리고 사진 아래에는 '난 누나가 앞으로 더 행복해 질거라고 믿는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살면서 서로가 더 행복해 질 거라고 믿었던 최진실-진영 남매의 비극적인 죽음이 남겨진 가족과 팬들에게 다시 한번 큰 슬픔으로 다가오고 있다.


故최진영, 우리들의 천국서 최진실과 영원히 웃다(종합)

스타뉴스 | 양평 | 입력 2010.03.31 15:19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양평(경기)=전형화 문완식 기자]






ⓒ머니투데이 스타뉴스

'국민남매' 최진실과 최진영이 모든 짐을 내려놓은 채 우리들의 천국에서 활짝 웃었다.
31일 고 최진영의 유골함이 장지인 경기도 양수리 갑산공원에 안치됐다. 1년 6개월 전 누나 최진실의 유골함이 놓인 바로 그 자리에 나란히 놓였다. 남매가 함께 한 묘역에는 사진 속 최진실과 최진영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두 사람의 묘역은 이날 새벽부터 내린 비가 안개처럼 차올라 차라리 그들만의 천국 같았다. 최진영은 1993년 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해 청춘스타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진영은 한 때 자신의 이름을 숨기고 스카이란 이름으로 가수활동을 할 정도로 누나의 그늘을 느꼈다. 하지만 만인의 연인이라 불린 누나를 누구보다 사랑했다. 자랑스러워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이겨낸 남매의 모습에 팬들도 사랑을 아끼지 않았다. 최진영은 고 최진실이 조성민과의 결혼과 이혼으로 힘들어 했을 때도 곁을 지켰다. 부재하다시피 한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 노릇을 했다.

너무 큰 사랑은 너무 큰 슬픔으로 이어졌다. 최진영은 누이가 그렇게 삶을 마감하자 "같이 떠나겠다"며 비통해했다. 때로는 술로, 때로는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우울증에 시달리면서도 누이가 남긴 조카들을 위해 생각을 다잡곤 했다.

최진실이 세상을 떠난 다음 해, 최진영이 한양대학교에 늦깎이로 입학한 것은 누이가 바랐기 때문이었다. "늦더라도 꼭 공부를 하라"는 누이의 말에 최진영은 어린 학생들과 부대끼며 연기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태웠다.

그러나 누나의 유골 도난사건, CF 소송 패소 등은 고 최진영을 점점 더 절망의 늪에 빠지게 했다. 소속사와 계약하고 재기를 위해 애썼지만 쉽지 않은 현실에 점점 지쳐갔다. 누나의 그늘이 더욱 더 크게 느껴졌다.

최진영은 29일 목을 매기 직전까지 지인들에게 전화를 해 "작품활동을 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살아보려 애썼다.

서울 강남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은 지인들은 하나같이 최진영의 죽음을 믿기지 않아했다. 이현승 감독은 "얼마 전에도 작품을 함께 하자고 했는데"라며 슬퍼했다. 고인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지인도, 사망 당일 오후에 약속을 가졌던 PD도 "연기를 하고 싶어 했다"며 슬퍼했다.

31일 오전 영결식은 쓸쓸하고 조용했다. 누나가 세상을 떠났을 때 지상파3사가 현장중계를 했을 때처럼 떠들썩하지 않았다. 이영자 김보성 김승현 유지태 김효진 홍석천 등 몇몇 동료와 가족, 교인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불쌍한 내 새끼"를 외치는 어머니의 오열만이 울렸다.

누나가 다니라던 한양대에서 위령제를 치르고 고인은 승화원에서 한 줌 재가 된 뒤 갑산공원으로 옮겨졌다. 묘역에는 국민배우 최진실을 기린다는 플래카드와 고 최진영의 명복을 빈다는 플래카드가 나란히 나부꼈다.

납골당에 안치된 최진실과 최진영, 두 남매는 세상의 모든 짐을 내려놓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머니와 친구, 친지들은 빗물과 눈물로 얼룩진 얼굴로 먹먹히 남매를 바라봤다.

남은 자들의 슬픔, 두 조카를 남겨 둔 채 남매는 그렇게 웃고 있었다. 사진 위로 눈물처럼 비가 맺혔다.
 

故 최진영, 세상 떠나기 전 어머니와 주고받은 마지막 편지

레이디경향 | 입력 2010.05.11 09:27 | 수정 2010.05.11 13:49

최진영이 사망한 다음날인 3월 30일 낮 12시경, 그의 집을 찾았다. 경찰 관계자들이 조사를 마친 후 현장에서 철수하고, 취재진들과 가족은 모두 장례식장에 있었기에 동네는 인적이 드물고 한적했다.



故 최진영의 편지가 발견된 날, 집 앞은 쓸쓸하고 고요했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혹시나 하고 집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뜻밖에 故 최진영과 그의 어머니가 쓴 자필 편지를 발견했다. 종이들은 버린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구김도 거의 없이 깨끗한 상태였고, 최근의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그가 떠나기 6일 전인 3월 23일의 날짜가 적힌 일기도 있었다.

본지가 입수한 故 최진영과 어머니의 못다 한 이야기, 마지막 편지 전문을 공개한다.
故 최진영 "모든 것 다 두고 떠나리라"

한여름 밤의 꿈. 낯선 세계로의 여행. 우리는 어디로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꿈이야. 모든 인생은 꿈이야. 한여름 밤의 꿈 말이야. 죽으면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영원으로의 세계. 영혼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영혼의 세계는 존재하는 것일까. 영혼, 영원으로의 시간. 세계. 영원히 꿈의 세계로 죽을 수 있는 세계. 살아가는 세계. 육신은 무엇이며 영혼은 머릿속에 있나, 가슴에 있나. 가슴속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라고.



故 최진영이 쓴 일기 형식의 자필 메모와 故 최진영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쓴 편지.

그래 그것이야. 모든 영원 속으로 사라지고, 떠나가고. 육신을 벗어나 영혼은 훨훨 어디로 가는 것일까. 영혼. 혼. 우리 몸속에 영혼. 죽음. 잠이 듦. 떠나감. 저승과 이승. 어머니의 배 속으로 생각. 마음. 그 무엇으로도 표현하기 어려운 육신과 영혼.

괜찮아. 괜찮아. 나는 괜찮아. 언젠가는 다 버리고 떠날 것이며 죽음도 고통도 다 버리고 떠나갈 것이며. 불어라 쌩쌩 바람. 불어라.

공생공존.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누가 나를 바라보는가. 영원한 꿈 속 같은 것. 영원한 꿈 속 같은 것. 내 무덤가에 꽃을 심어라. 바람아 쌩쌩 불어라. 모든 영혼을 날려버리고 모든 것 다 두고 떠나리라. 엄마의 무덤, 아버지의 영혼의 세계. 뇌사. 영원히 정지된….

사우나를 갈까. 아니, 헬스를 가볼까. 그것도 싫다. 왜 모두 부질없을까. 그저 한없이 우울한 것뿐. 환희, 어떻게 하지. 요즘 웃지도 않고 비염이 심하다. 울고만 싶어. 죽는다는 것. 모든 것이 끝날 수 있을까. 영혼은 어디로 가는가. 혹은 어디서 왔는가.

故 최진영 어머니 "엄마는 한없이 울고 싶다"


마주 앉아 얘기할 엄두도 안 나고. 말문이 막히고. 왜 이렇게 답답하고 우울하고 힘이 드는지. 요즘 너를 보면 내 마음이 불안해서. 네가 좀 강하고 활발해야지.

불안해하는 너와 나 역시 뭔가 모르게 불안하고. 활기 있게 학교도 가고 사람도 좀 만나고. 너만 믿고 살고 있는 나는 가슴이 아프다. 어떻게든 그 아이랑 결혼을 해라.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 맞다. 진영아, 엄마는 한없이 울고 싶다.

진영아,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너와 내가 대화도 없고. 얘기라도 좀 해보자구나. 사는 것이 너무 어리석고 잔인하구나. 네가 강해야 이 엄마도 살 텐데. 너는 자꾸 나날이 움츠러들기만 하고. 세상과 담을 쌓고. 타협하지 않고. 불평, 불만만 한다고 누가 알아주니. 세상은 너무도 냉정하단다. 우리가 일어서지 않으면 아무도 일으켜주지 않아. 쓰러지면 더욱 짓밟고 뭉개버리는 세상이야. 일어서라. 어떻게든 일어서야지. 이 세상에 누가 우리를 위해 아파해주겠느냐. 스스로 망쳐봐야 허망할 뿐이다. 나도 기운이 없고. 어찌해야 하는지 용기도 없고. 재미도 없고. 희망도 없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홀로 방황했을까. 그리고 그런 아들을 붙잡기 위해 그의 어머니는 얼마나 많이 울어야 했을까. 하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고, 남겨진 자 역시 슬픔에 가슴만 칠 뿐이다.
故최진실 3주년 특집 “점점 딸이 잊혀져 가는 것이 슬프다”
27일 화요일 밤 11시, MBCLIFE <히스토리 후>를 통해 방송
2011년 09월 27일 (화) 09:31:42 유용선 기자 news@stardailynews.co.kr

   
 

[스타데일리뉴스=유용선 기자] MBC라이프 대표 프로그램 <히스토리 후>에서 최진실3주기 특집을 준비했다.

오는 27일 화요일 밤 11시에 방영되는 최진실 3주기 특집에는 , 그녀를 사랑하고 아직도 사랑하고 있는 많은 지인들이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2008년 10월 2일.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난 배우 최진실. 그녀의 소식은 대한민국 전체를 안타까움과 충격에 빠뜨렸다.

MBCLIFE<히스토리>에서는, 돌아오는 최진실 3주기를 통해, 작품 속 그녀의 모습과 그녀의 어머니, 동료들과 함께 만인의 연인이었던 배우 최진실이 우리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돌아본다.

   
 

1989년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한 CF에서 스타가 된 최진실. 이후 90년대 '질투', '별은 내 가슴에', ‘고스트 맘마’, ‘편지’,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까지, 그녀는 연기 인생 20년 동안 CF, 드라마, 영화 모든 장르에서 수많은 작품으로 대중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날 방송에서는 그녀는 풋풋했던 데뷔시절부터, 전성기 시절의 모습을 돌아보며, 동료배우 박원숙, 박상원, 변정수와 함께 온 국민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배우 최진실의 모습을 회상해 본다.

   
 
故최진실 어머니 정옥순씨는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한 때는 모든 곳에서 최진실, 최진실 했었는데, 이제 딸(최진실)이 잊혀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까”라며 그녀가 떠난지 3년이 지난 지금, 쓸쓸함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내비쳤다.

또한, 그녀의 어머니는 유난히 남다른 우애를 자랑했던 두 남매를 떠올리며, “진영이가 군대를 가고 진실이가 일주일을 울다가, 진영이를 만나기 위해 한 방법을 썼다”라며 애틋한 관계 때문에 벌어진 에피소드도 털어놓았다. 이 밖에도 어머니는 불우했던 그녀의 어린시절, 이혼 후, 이혼에 대한 상처와 악플로 힘들어 하던 故최진실씨의 모습도 함께 전했다.

항상 밝은 미소로 대중에게 다가왔던 최진실의 감춰진 슬픔은 그녀의 어머니를 통해, 그리고 그녀의 생전에 쓴 일기와 함께 27일(화) 밤 11시, MBCLIFE<히스토리 후>를 통해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