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畵兒)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 중환자실 근육

含閒 2009. 12. 9. 09:42

  중환자실 근육




요즘, 꿀복근으로도 애칭된다는 식스팩(six-pack)은
강한 남자 혹은 섹시한 남자의 결정적 상징입니다.
얼마나 유행인지 식스팩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상반신을 노출한 채 허공을 째려보는 몸좋은 남자의,
어디서 본 듯한 모습이 자동으로 연상될 정도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는 그런 근육질 몸이 별로야..’ 라는 식의 발언은
괜한 질투나 콤플렉스의 표출로 받아 들여지기 십상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근육질 몸매를 사진집으로 만들어 일본에서만
1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렸다는 한류스타 배용준의 경험담은
식스팩에 대한 세간의 인식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보디빌딩 직후의 몸은 절대 일상적으로
유지 못한답니다. 하루에 5시간 운동하고 나머지 시간은
꼼짝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아야 유지되는 몸매라는 거지요.

원조 몸짱의 한 남자 배우는 조각 같은 몸매를 드러내야 하는
영화의 한 장면을 위해 3일 동안 물 한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지요.
수분을 섭취할 경우 미세한 잔근육들이 풀어지기 때문이랍니다.

이쯤 되면 식스팩은 강한 힘이나 섹시함의 상징이 아니라
중환자실 근육에 가깝습니다. 최소한의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각종 첨단 기기가 동원돼야만 하는,
무기력의 극단적 표상인 중환자실 풍경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본인은 마지막 순간의 휘황한 불꽃을 위해 인내하는 것이라
믿는 일이, 실상은 겨우 중환자실 근육에 불과한 무언가를 향해
치열하게^^ 내달리는 경우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주위의 재촉이나 자기 조급함으로 인해 과정에만 몰두하다가
최종 목적지가 어디였는지 깜빡하는 경우, 왜 한 번씩은 있잖아요.

저는 식스팩을 가진 남자들을 볼 때마다 그런 경우들이 먼저
생각나서 무작정 젊은 박수를 치기 어렵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