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畵兒)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 동상이몽

含閒 2009. 7. 15. 11:17

동상이몽




연애의 현장에서 ‘이담에 돈 많이 벌어줄게’라는 오빠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달콤합니다. 하지만 결혼생활의 현장에서
‘오빠가 많이 벌어준다는 게 이거였어?’라고 묻는 여자의
목소리에는 실망과 피로감이 가득합니다.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 는 상투적인 화두를 잠시 미루고
돌이켜보면 그들은 ‘많이’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합의한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내 기준으로는 충분히 많은 상태이지만
상대편 눈높이에서는 택도 없는 수준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서로서로 억울한 기분이 들 수밖에요.

작전을 앞둔 특수부대원들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자기 시계의
현재 시각을 팀원들과 통일시키는 일입니다. 그래야 몇시 몇분
작전 개시라고 말할 때 착오가 없으니까요.

일 시작 전에 매사를 꼼꼼하게 따지고 의심하는 것은 피곤하고
재미없는 동시에 소모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 관계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삑사리는 소통 전에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충분하게 집중하지 않고 그 결과 공유와 공감의 통로가 막혀서
생기는 문제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 통로가 막혀 버릴 경우 상대방이나 나나 각자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데 결과는 모두가 억울합니다.

요즘 ‘그건 니 생각이구’라는 한 개그맨의 리드미컬한 멘트가 은근하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그런 동상이몽 류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하나의 증거일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