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畵兒)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 미쳐 몰랐을 뿐

含閒 2009. 6. 3. 15:16

  미처 몰랐을 뿐




생전에 수많은 소설가들의 스승으로 불릴 만큼 존경받던 한 작가는
‘이름 없는 들꽃이 지천에 만발했다’ 따위의 표현을 쓰는 작가들을
엄하게 질타했습니다.
쓰는 이가 무식하거나 게을러서 미처 몰랐을 뿐 세상에 ‘이름 없는
들꽃’이 어디 있느냐는 거지요.

꽃피는 소리를 내가 듣지 못한다고 하루라도 꽃이 피고 지지 않는 날이
있던가요. 우리가 미처 모른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당연히.

꽃을 바라보면서도 꽃피는 소리를 듣지 못하듯,
우리에게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깜빡하고 사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마음보다 상황 논리나 경제 논리를 앞세워 설명하려다 보면 세상의 많은
일들은 이변이나 불가사의, 일시적 쏠림 현상으로밖에 해석될 수 없습니다.
‘내 마음’에 고요히 귀 기울이면 거의 모든 해답은 그 안에 있기 마련입니다.

미처 몰랐을 뿐,
우리 안에 ‘마음’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감지하는 순간,
누군가의 머리를 쓰다듬 듯 세상도 다정하게 쓰다듬어 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