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畵兒)

정혜신 그림에세이 / 걱정 인형

含閒 2008. 12. 24. 10:53

걱정 인형




소년급^^ 청년으로부터 마야 인디언의 후예들이 만들었다는 인형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자기 몸보다 서너 배는 더 큰 주머니를 달고 있는
앙증맞은 크기의 이 인형은 마야 인디언들이 걱정거리가 있을 때
그 고민을 털어놓곤 한다는 '걱정 인형' 입니다.

걱정 인형에게 걱정거리를 말한 다음 베개 밑에 넣어두고 자면 밤사이
걱정 인형이 그 걱정거리를 모두 가지고 간다는군요.
제게 걱정인형을 선물한 청년을 떠올리며 이제부턴 나도 걱정이 생기면
저 걱정 인형에게 털어놓아야지...하며 잠시 유쾌하고 낭만적인 기분이
되었답니다.

그러다가 문득,
한 작가가 어린 손녀와 나누었다는 걱정 인형 얘기가 떠올랐습니다.
꼬물꼬물한 걱정을 유난히 많이 하는 손녀에게 걱정 인형의 존재를 알려주며
앞으로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었답니다.
그랬더니 손녀는 '그럼 걱정 인형의 걱정은 어떻게 하느냐...' 고 물었다지요.

자기 걱정에만 매몰되어 세상을 '내 걱정 중심'으로 해석한
개인적 경험들 서너 가지가 단박에 떠오르며 가슴까지 붉어졌지만
내 걱정거리를 마음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가 주는 짜릿한 유혹까지
털쳐버리기는 어려웠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의 부모가 아이에게 그런 것처럼,
상대편에 대한 일말의 걱정없이 내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는
걱정 인형같은 존재가 주위에 있다면, 그건 삶의 축복입니다.

그런 사람을 찾는 게 쉽지 않다면,
본인이 직접 누군가의 '걱정 인형' 이 되어보는 경험은 어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