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我是个在江原道服役的军人。 저는 강원도에서 근무하고 있는 군인입니다. 穿绿色的军服已经过了29年! 在这段时间里结了婚, 而且也有了孩子。我是独生子, 所以从1989年开始奉养父母。 푸른 군복을 입은 지도 어언 29년! 그 동안 결혼도 하고 사랑하는 처자식도 두었습니다. 아들이 저 혼자라 1989년부터 부모님을 모시고 있고요. 父母在这段时间里因儿子是军人 所以几乎每年都和我一起搬来搬去。 到前年媳妇儿才给他们做饭, 但两年前媳妇儿和孩子为了学习 搬到京畿道始兴市了。 부모님은 그 동안 군인아들 따라 다니느라 거의 매년 저와 함께 이사도 같이 하셨습니다. 그 동안 계속 며느리가 해주던 밥을 드셨는데 2년 전부터는 아이들 학업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집사람과 아이들은 경기도 시흥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所以 不得不让年过八旬的母亲自己做饭。 그러다 보니 불가피하게 팔순이 넘으신 어머님께서 손수 식사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上高中时母亲给我做的饭菜正适合我的口味, 真的是非常好吃。 不过两年前母亲再给我做饭时 我没想到会因此而掉眼泪。 母亲最近为了调味抱着辣椒酱,盐和酱做饭。 고등학교 다닐 때 어머님이 해주시던 밥은 제 입에 꼭 맞는, 정말 맛있는 밥이었죠. 그러다가 2년 전부터 다시 어머님이 해주시는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눈물의 식사가 될 줄이야... 어머님은 요즘 반찬의 간을 맞추면서 고추장과 소금 그리고 간장을 안고 지낼 정도입니다. 你问为什么?从去年开始母亲失去了味觉, 做饭时不停的加盐和酱。 不过对于那么辣和咸的菜, 父亲倒是一句话都没说。 왜냐고요? 작년부터 어머님은 혀끝의 감각을 잃으셔서 반찬에다 간장과 소금을 끊임없이 타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맵고 짠 음식을 아버님은 아무런 말씀도 없이 묵묵히 드시고 계십니다. 我跟母亲说过一两回, 不过觉得她已经失去了味觉再说也没用, 就没再对她提起。 所以我吃饭时要不停的喝水。 어머님께 한두 번 말씀을 드렸지만 혀끝에서 느끼질 못하니 부질없는 것 같아 더 이상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도 식사 때엔 어쩔 수 없이 물과의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不是因为难吃, 而是父母不能恢复味觉, 于是快到50岁的我掉下了眼泪。 밥을 먹는 것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이젠 돌아올 수 없는 부모님의 음식 감각이 오십이 내일모레인 이 못난 아들을 눈물짓게 합니다. 如果多交些朋友父母不会这么孤独。 因为不争气的儿子的职业而经常搬来搬去, 总是住在很偏僻的的地方, 所以整天过着孤单的生活,很对不起他们。 그나마 친구라도 계시면 덜 외로우실 텐데... 못난 아들의 직업 때문에 잦은 이사와 외진 곳에 위치한 군 숙소 문제로 하루 종일 적적하게 계시니 너무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有时母亲会突然问我, "儿子,我们什么时候又得搬走呢?" 听到这句话我很心疼。 그러다가 불쑥 내뱉으시는 말씀 중 "아범아, 우리 또 언제 이사가노?" 하시는 말씀이 가장 아프게 가슴을 찌릅니다. 对母亲的问题,我只能这么回答; "妈,我过一阵子要退役了。 那会儿我们再也不用搬家了, 跟荷啦和承欢一起住。" 어머님의 질문에 제가 답변할 수 있는 말은 "어머님, 이제 저 군생활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때는 이사 가지 않아도 되고 하라와 승환이도 같이 살 수 있어요..." 希望那一天早点到来。 어서 그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 정 광 식 - ----------------------------------------- 有一天我突然看见父亲弱小的肩膀, 看见母亲找不到在针上的线孔时, 我不知怎么才能表达我心痛和悲伤的感觉? 어느 날 문득, 아버지의 왜소해진 어깨를 바라보았을 때, 바늘귀조차 잘 찾지 못하시는 어머니를 볼 때, 슬프고 조금 막막하기도 한 그 감정을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 现在是把父母给我的爱回报给他们的时候了 - - 이제는 부모님이 주셨던 사랑을 돌려 드려야 할 때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