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스크랩] 작은 집

含閒 2007. 4. 23. 15:31
작은 집

조붓한 작은 집이 쓸쓸하고 적막한데
향 사르고 성인의 글 조용히 읽는도다.
인작(人爵)에서 천작(天爵)이 나온다고 하지만
정욕은 가을 숲에 날이 점차 기우는 듯.

矮屋蕭條十肘餘 焚香靜讀聖人書
왜옥소조십주여 분향정독성인서
自從人爵生天爵 情欲秋林日漸疎
자종인작생천작 정욕추림일점소
-백이정(白頤正, 고려 충숙왕 때), 〈작은 집(燕居)〉

왜옥(矮屋): 조그만 집. / 소조(蕭條): 쓸쓸한 모양. / 십주(十肘): 주(肘)는 팔꿈치. 팔꿈치 열 번을 포갠 길이. 아주 좁은 방의 형용. / 인작(人爵): 벼슬이나 지위. / 천작(天爵): 세상 사람들이 절로 존경을 하게 되는 날 때부터 지니고 나온 덕성. 고상한 도덕 수양을 가리킨다.


사람 하나 누우면 발끝이 벽에 닿는 작은 방에서 혼자 쓸쓸히 지낸다. 종일 하는 일이라곤 성인의 생각이 담긴 경서를 펼쳐놓고 고요히 읽는 것뿐이다. 책상 위에는 향이 저 혼자 오리오리 피어오른다. 고상하게 앉아 도덕을 말하고 덕성을 말한다고 해서 밥이 생기는가? 고기가 생기는가? 사람들은 아무리 책도 좋고 옛 성인의 삶을 따르는 것도 좋지만, 목구멍에 풀칠은 해야 하지 않느냐고 내게 안타까운 눈빛을 보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들이 뭐라 하건 말건 세상을 향해 가는 욕심은 이미 가을 숲 넘어가는 짧은 해처럼 스러지고 없는 것을. 하여 오늘도 나는 이 좁은 방안에 홀로 앉아 내 안의 광대무변한 우주를 유영(遊泳)한다. 아마 그들은 잘 모를 것이다.



백이정(白頤正)
호는 이재(頤齋). 남포(藍浦) 사람. 첨의평리상당군(僉議評理上黨君)을 지냈다.
출처 : 풀꽃나라
글쓴이 : 석죽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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