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를 노래하다 / 매화니(梅花尼)
終日尋春不見春(종일심춘불견춘)
芒鞋踏破嶺頭雲(망혜답파영두운)
歸來笑撚梅花嗅(귀래소연매화후)
春在枝頭已十分(춘재지두이십분)
종일토록 봄 찾아도
봄이라곤 보지 못해/
고갯마루 구름 속을
짚신 신고 헤매다가/
돌어와서 웃으면서
매화 향기 따라가니/
가지 끝에 이미
온통 봄이 와 있더이다/
벌써 남녘의 섬진강 가에서는
매화 소식이 전해온다.
매화는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겨울의 끝자락에 피는
한매(寒梅)를 높이 치지만,
한매는 우리나라에서는
분재로나 가꾸었을 뿐이고
자연산으로 대하는 것은 거의가
봄에 피는 춘매(春梅)이다.
이 시의 작자는 원(元)나라 때 사람인데
다른 인적 사항은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니(尼)"자를 쓴 것으로 보아
여승(女僧)으로 추측된다.
봄을 기다리는 여심(女心)은
조급한 마음에
하루종일 봄의 징조를 찾아보았지만
아직은 쌀쌀한 늦추위뿐
그 기미를 찾을 수 없다.
짚신을 신은 채로 구름 낀 높은
산마루까지도 걸어가 본다.
그러나 산골짝에 잔설(殘雪)이나 보일뿐
봄 기운을 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
지친 다리를 끌고
집(혹은 절)에 돌아와 보니
문득 매화 향이 전해온다.
기쁜 마음에 웃으면서
그 향내를 따라가 보니
그토록 찾아헤매던 봄은
바로 뜰 안의 매화 나무 끝에
벌써 와 있지 않은가.
유학적(儒學的) 사고가 몸에 밴
문사(文士)들 같으면 매화를 읊을 때
으레 추위를 이기는 절조(節操)라든지
깨끗하고 고고한 자태를 언급하는 법이다.
이 시에서는 순전히
봄 소식하고만 연관지은 것 같지만,
지은이가 스님이다보니 역시 단순한
봄 노래만은 아니다.
봄은 바로 "도(道)",
또는 "진리(眞理)"의 상징으로도 볼 수 있다.
불교식으로는
"깨달음"이라고 해도 되겠다.
그토록 정진(精進)하면서
추구하는 깨달음이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일상의 가까운 곳에 있다는
"오도(悟道)"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