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에 깃든 석당(石堂) 최남주의 향기따라 <34>
경주천군리사지 발굴조사
서라벌신문 기자 / 2024년 0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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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 최 정 간 매월다암원장 차문화연구가 |
1938년 5월 11일 경주 천군사지 쌍탑 복원 기념사진.rn①스에마츠 야스카즈 ②요네다 미요지 ③우메하라 스에지 ④석당 최남주 |
1938년 ‘고적조사보고’에 유일한 조선인으로 참여한 최남주(崔南柱)가 맨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다. |
경주천군리사지 발굴경위는 석당의 회고에 의하면 1936년경 경주동쪽 명활산성 아래 위치한 천군리들판에 무너져 있던 신라 통일기의 쌍탑 주변을 조사하던 중에 통일신라시대 화려한 연화문이 조각된 와당들을 수습하였다. 수습된 와당들을 경주박물관으로 가져가 당시 발물관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사이토 다다시에게 보여주었다. 사이토는 고고학이 전공이었지만 신라 미술사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천군리 폐사지에서 수습된 와당들을 보자 매우 감탄하였다. 이어서 즉시 현장답사를 하였다. 그후 사이토는 천군리 폐사지의 무너진 쌍탑 상황등을 보고서 형태로 당시 조선고적연구회 책임자인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 1893~1983)박사에게 제출하였다. 1938년 경주박물관장 사이토 다다시 주관으로 천군리 폐사지를 약식으로 발굴하였고 석당 최남주도 참여하게 된다. 이어 경주고적보존회 주관으로 무너진 천군리 폐사지 신라쌍탑도 복원을 하게 되었다. 이때 석탑복원 책임자는 조선총독부박물관 촉탁 건축기사로 재직하던 요네다 미요지(米田美代治 ?~1942)였다. 석탑복원 당시 석당과 요네다는 2개월을 함께 생활하였다. 요네다는 일본대학 전문부 건축과를 졸업하고 조선의 고건축 연구차 1933년 총독부박물관 촉탁 건축기사로 재직하면서 우리나라 석조탑과 목조 건축물들을 많이 실측하였다. 특히 그의 업적 중에 가장 잊을수 없는 것이 천군사지쌍탑복원과 석굴암을 정밀실측하여 석굴암이 당측(唐測, 당나라 길이수치)에 의해 축조되었다는 탁월한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석당은 요네다를 신라 석조 건축물에 매료되었고 경배심을 표한 국경을 초월한 매우 양심적인 건축학도였다고 회상하였다. 1942년 10월 요네다는 장티푸스로 갑자기 사망하고 말았다. 석당 최남주에 의해 1936년경 천군사지 폐탑 주변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와당이 계기가 되어 1938년 5월 11일 천군사지 신라쌍탑이 복원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석당은 항상 경주를 방문하는 국내외 학자와 외교사절들에게 천군리 쌍탑 복원 내력을 자랑스럽게 설명하였다.
대구불로동 고분발굴
불로동 고분군은 대구광역시 동구 불로동에 위치하고 있는 신라시대 6세기경 고분군들이다. 지금은 사적 262호로 지정되어 있다. 불로동 고분군 중에 제일 규모가 큰 고분 2기가 1938년 일본인 고고학자 사이토 다다시와 석당 최남주에 의해 처음 발굴조사되었다. 당시에는 달성군 해안면 고분군으로 불리어졌다. 1호분은 불로동 고분 중에 가장 큰 규모로 밑변은 남북 28m, 동서 62m, 높이는 7m로 무덤 주인은 당시 이 지역을 지배하던 최고 권력자로 추정되었다. 사이토는 보고서를 집필하면서 발굴조사에 최남주의 도움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1938년 ‘조선고적연구회’의 책임자인 우메하라 스에지는 ‘소화 13년도 고적조사보고’ 개요에서 조사 사무는 후지다 료사쿠 연구원이 총괄하였다고 명기하였다. 그리고 실제 발굴조사작업에 참여한 연구자의 명단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평양박물관장 고이즈미 아키오(1926년 석당 최남주와 함께 서봉총 발굴), 노모리 겐, 가야모토 가메지로, 사와 준이치, 요네다 미요지, 아리미츠 교이치, 사이토 다다시 등 일본인 고고학자 9명이다. 우메하라 스에지는 맨마지막에 조선인으로 유일하게 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원 최남주(崔南柱)라고 기록하였다. 석당의 회고에는 실제 1937년 경주 남산 불적조사에도 참여하였다고 하였으나 일본 식민지 고고학자들에 의해 ‘1937년도 고적조사보고’에는 석당 최남주 이름을 고의적으로 누락시켰다고 하였다.
서라벌신문 기자 / 2024년 0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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