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에 깃든 석당(石堂) 최남주의 향기따라』
서라벌신문 기자 / 2022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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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발상지 경주 구미산 용담정 성역화 사업
지난 12월2일 동학 유적지를 10대 시정 목표로 정한 주낙영 경주시장은 동학의 발상지인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구미산 아래 용담정 주변에 동학 기념관 및 수련관을 준공하고 개관식을 가졌다. 이날 개관식에는 박상종 천도교교령등 지역유지 300여명이 참석하여 행사를 더욱 뜻깊게 하였다.
현암 최정간 매월다암원장, 차문화 연구가 |
경주시가 133억원을 들여 이사업을 추진하게된 배경에는 근대 세계사적 보편 사상인 민주민권 사상의 한국적 뿌리가 곧 동학사상이기에 그 발상지인 경주 구미산 일원이 성역화되어 한국정신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기 위해서였다.
1860년 수운 최제우선생은 이곳에서 동학의 기본 교리인 시천주(侍天主) 즉 모든 사람이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인간 존엄의 최고 가치를 설파하였다. 동학기념관 및 수련관은 총5개동의 건물로 건립되어 있다.
전시공간엔 수운 최제우 선생의 일대기 및 동학발생과 관련된 설명 자료들을 체계있게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동학후예 석당의 구미산 일대 유적지 답사 논문
1972년 석당 최남주는 동학의 발상지인 구미산 일대를 성역화하기 위한 기초 학술자료로 ‘구미산일대 유적고찰’이란 간략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동학후예 석당의 구미산 일대 유적지 답사 논문
1972년 석당 최남주는 동학의 발상지인 구미산 일대를 성역화하기 위한 기초 학술자료로 ‘구미산일대 유적고찰’이란 간략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구미산일대 선사시대부터 신라, 고려, 조선시대를 망라한 유적지를 답사하고 구미산일대 유적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던 것이다. 구미산이 소재한 현곡면일대는 나원리 신라5층석탑을 비롯하여 오류리 신라 진덕여왕릉, 소현리 신라 효자손순유허지, 남사리 신라3층석탑, 내태리 고려청자도요지, 남사리 조선시대 분청사기도요지등 많은 문화유적지가 분포되어 있다.
이 논문을 통하여 구미산이 국립공원에 편입되었다. 동학의 후예인 석당의 이러한 노력을 바탕으로 당시 최덕신 천도교령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성역화를 건의하였다. 박대통령은 동학사상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터라 5억이란 국가예산을 지원하여 허물어진 용담정을 복원하는 등 1차 복원사업을 완공하게 되었던 것이다.
용담성지를 지킨 해월의 딸 최윤
용담정은 수운의 순도이후 조선 왕조 권력의 불벼락을 맞고 완전 초토화 되어 버렸다. 1909년 천도교에서 분파된 시천교 교주 김연국(해월의 사위)에 의해 동학의 성지인 구미산 일대를 매입하고 불타없어진 용담정도 재건하게 되었다.
2022년 12월 2일 경주동학기념관 개관식에서 왼쪽으로부터 주낙영 경주시장, 박상종 천도교령, 현암 최정간 |
용담성지를 지킨 해월의 딸 최윤
용담정은 수운의 순도이후 조선 왕조 권력의 불벼락을 맞고 완전 초토화 되어 버렸다. 1909년 천도교에서 분파된 시천교 교주 김연국(해월의 사위)에 의해 동학의 성지인 구미산 일대를 매입하고 불타없어진 용담정도 재건하게 되었다.
이때 수운의 묘소도 해월의 종제 최형오와 의논하여 이장하였다. 이어 한국근대 인물조각의 효시가 된 수운선생의 조각상도 서울에서 특별희 제작하여 열차편에 실어 경주 성건동 최형오 집에 보관하다가 수운의 묘소에 세우게 된 것이다. 이 조각상 뒷면엔 서예가 청운 강진희가 쓴 수운 선생 조각상이란 글이 쓰여져 있다.
해월의 딸 최윤(일명 용담할매)은 1931년 경주로 내려와서 집안조카인 석당 집에 머물고 있었다. 이때 석당의 부인 이원임이 지극정성으로 최윤을 모셨다. 성건동 석당 집에 머물던 최윤은 동학의 성지를 지키기 위해 용담정에 들어가 집안 조카며느리 이원임과 수도생활도 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수운과 아버지인 해월의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존중의 신앙을 가르쳤다
최윤의 아들은 방정환과 함께 어린이 운동을 한 정순철이였다. 정순철은 동요작곡가로서 ‘엄마 앞에서 짝짝궁’, ‘졸업식 노래’ ‘갈닢피리’등 불후의 명곡을 남겼다. 용담할매로 불리어진 최윤은 25년동안 용담정에서의 수행은 모든 이웃의 따사로운 용담할매였다. 2019년 10월19일 구미산 수운의 묘소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 최윤의 묘소앞 묘비가 손자 정문화옹에 의해 건립되었다.
비문은 집안 후손 현암 최정간에 의해 짓고썻다. ‘천도교 동학의 딸 최윤의 묘’란 머릿글이 지나가는 길손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다. 현암은 비문에서 최윤은 수운과 해월의 생명존중 사상을 온몸으로 실천한 진정한 동학의 딸이였다고 적고 있다.
최윤의 생애가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것은 1994년 최정간의 『해월 최시형가의 사람들』에 의해서다. 그후 2011년 도종환의 『정순철평전』, 2018년 고은광순 『해월의 딸, 용담할매』, 2021년 이상임의 『용담할매 근수당 최윤(謹守堂 崔潤)에 대한 소고』가 발표됨으로서 그의 생애와 사상이 재조명 되었다.
서라벌신문 기자 / 2022년 12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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