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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할매(해월 최시형의 딸)의 회억(回憶)

含閒 2023. 1. 13. 10:57

[기고] 용담할매(해월 최시형의 딸)의 회억(回憶)

기사입력 2023-01-12 08:49:48
 
 
 
최정대 칼럼리스트(대광상사 대표)

‘용담할매’는 동학혁명의 주역 해월 최시형의 딸 근수당 최윤(謹守堂 崔潤)(1878-1956) 여사의 별칭이다.

최윤의 아들은 방정환 선생과 함께 1923년 색동회를 창설한 한국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이자 불멸의 동요 작곡가인 정순철 선생이다. 충북 옥천 출신인 선생은 정지용 시인과 동향으로 친근한 문우(文友)였다. 선생의 주옥같은 작품으로는 우리들이 초등학생 때 즐겨 불렀던 ‘짝짜꿍’,‘‘졸업식 노래’, ‘까치야’, ‘갈잎피리’ 등이 있다.

용담할매 최윤은 일제 강점기 하에 천도교 동학의 성지인 용담정(경주시 현곡면 구미산 소재)을 홀로 지키며 수련에 전념하면서 ‘모든 사람이 한울을 모시고 있다’는 천도교 동학의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몸소 실천하였다. 누구나 평등할 수 있다는 평등주의에 기초한 시천주 사상은 당시 민중들에게 일제에 대한 저항정신을 심어주었다.

필자의 선친 석당 최남주(고고학 선구자)와 모친 이원임은 용담할매의 집안 조카 내외이다. 1934년 봄 용담할매 최윤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선친인 해월 최시형의 고향 경주로 낙향한다. 당시 그녀는 경주에 살고 있었던 석당 최남주의 집에 머물었는데, 이때 이원임이 용담할매를 지극정성으로 모시게 된다.

동학의 발상지 용담정에서 수행을 정진하다

 

그해 가을 용담할매는 용담정에 머물며 이웃주민들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자연의 고귀함을 강조하는 생명존중사상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 때 그녀는 지위고하나 빈부격차를 막론하고 모든 이들을 존중과 사랑으로 대하였다. 그야말로 친근한 이웃 할매가 되었던 것이다.

필자의 부모님은 일주일에 한 번씩 용담할매를 문안드리고자 반찬과 옷가지를 준비하여 용담정을 방문하였다. 이 때 용담할매는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필자의 모친에게 자연스럽게 가르쳐 주면서 모든 인간과 사물을 공경하는 법을 항상 강조하셨다고 하였다. 이것은 곧 그녀의 선친 해월 최시형의 3경〔三敬 : 경천(敬天), 경인(敬人), 경물(敬物)〕사상이었다. 이렇게 이원임은 용담할매와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사상과 정신을 체득할 수 있었다.

수행을 통한 국난의 예언

일제 군국주의가 극으로 치닫던 1945년 봄, 용담할매는 경주에 있는 필자의 모친에게 금년 추석에는 찹쌀로 된 떡도 하고 고깃국도 먹을 수 있다고 하였다. 어머니가 용담할매에게 “고모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라고 물으니 저 요망한 일본인들이 망해 한국 땅에서 물러날 것이라고 하였다. 당시 그렇게 용기 있는 말씀을 듣고 어머니는 매우 놀랐다고 하였다. 결국 1945년 8월, 조국은 꿈에서도 그리던 민족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해방 후 용담할매는 남북 분단의 아픔을 예언하기도 했으며, 1949년에는 필자의 어머니가 간장을 담그려고 메주를 쑤자 이를 한사코 말리시면서 곧 이북에서 사람들이 내려와 전쟁을 할 텐데 걱정이라고 말씀을 했다고 하였다. 1950년 6월 25일, 용담할매의 예언대로 한국전쟁은 발발하였고 당시 필자의 가족은 할매가 수도하고 계셨던 용담정으로 피난을 갔었다.

정대(楨大)라는 이름을 지어주다

필자는 한국전쟁의 격동기 겨울에 경주에서 태어났다. 그때 용담할매가 어머니의 순산을 정성껏 돌보아 주셨고, 필자가 세상에 태어난 순간 첫손으로 쓰다듬어 씻어주셨다. 이 때 용담할매는 필자의 이름을 대신사(大神師) (수운 최제우 선생 존칭) 대(大)를 따서 정대(楨大)라고 이름을 지어주셨다.

이렇듯 용담할매의 영향을 받아 필자는 한국 민주사상의 모태(母胎)인 천도교 동학사상을 해외에 알리기 위하여 천도교 경전인 ‘동경대전’을 영문으로 번역하게 되었다. 또한 천도교 동학에 대한 영문칼럼을 코리아타임스를 포함한 국내외 지면에 수십 년 동안 영문으로 소개하여 한국학을 전공하는 많은 외국인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는 역할을 지금껏 하고 있다.

 

특히, 필자는 1990년 7월 미국 국무성의 초청으로 국무성 동아시아 태평양국(Bureau of East Asia and Pacific Affairs, U.S. Department of State)을 방문했다. 당시 국무성의 한국담당 최고 책임자들에게 천도교 동학을 소개하고 “천도교 동학의 평등사상은 남북통일과 인류평화의 등불”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또한 워싱턴 D.C.의 미국 북미주 인권운동연합 사무총장인 페리스 하비(Pharis J. Harvey) 목사와 면담을 통해 한국의 인권문제와 민주화 발전에 대해 논의를 하면서 천도교 동학을 소개하였다.

1956년 음력 3월 1일 필자는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모든 이웃의 친근한 할매로 살아가신 용담할매의 임종을 용담정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파란만장한 천도교 동학 역사의 뒤안길에서 진정한 동학의 딸이었던 그녀는 향년 77세로 일생을 마쳤다.

천도교 동학의 딸 최윤의 묘비 제막

2019년 10월 19일 제11회 천도교 동학문화제를 맞이하여 경주시 현곡면 구미산 자락 수운 최제우 선생 묘소 뒤쪽에 용담할매 최윤 여사 묘비가 건립되었다. 용담할매 손자 정문화(1926~, 전 조흥은행 간부) 선생과 손부(孫婦) 유금희 여사의 성금으로 건립되었다.

 

이 뜻 깊은 묘비의 비문은 집안후손 현암 최정간(필자 동생)이 그 내용을 직접 작성하였다. ‘천도교 동학의 딸 최윤의 묘’란 머리글이 지나가는 길손들의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다. 현암 최정간은 이 비문에서 ‘용담할매 최윤은 모든 만물의 생명존중사상을 온몸으로 실천한 진정한 동학의 딸이었다’고 적었다.

2019년 10월 19일 ‘천도교 동학의 딸 최윤’ 묘비 제막식에서. 왼쪽부터 최정표(서라벌문화재연구원 이사), 최정간(차문화연구가), 유금희(최윤 여사 손부(孫婦), 천도교 성동교구 고문), 필자, 정문화 선생(최윤 여사 손자, 전 조흥은행 간부), 이애준(천도교 성동교구장), 박성원(천도교 성동교구 임원)

최윤의 생애는 1994년 최정간의 저서『해월 최시형가(家)의 사람들(동학 100년)』에서 상세히 알려지게 되었다. 그 이후 이 저서를 참고로 하여 2011년 도종환 『정순철 평전』, 2015년 고은광순 『해월의 딸, 용담할매』, 2020년 이상임 『용담할매, 근수당 최윤에 대한 소고』, 2020년 이상면의 소설『고요히 흐르는 금강』이 발표되어 세인들의 뇌리 속에 잊혀져가고 있는 용담할매의 생애와 사상이 각광(脚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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