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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 바퀴 '천하무적'…최민정, 1500m 올림픽 2연패

含閒 2022. 2. 16. 22:58

마지막 세 바퀴 '천하무적'…최민정, 1500m 올림픽 2연패

중앙일보

입력 2022.02.16 22:52

 

최민정이 16일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뒤 태극기를 두르고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베이징=김경록 기자

마지막 세 바퀴를 남긴 최민정(24·성남시청)은 천하무적이다. 폭발적인 스퍼트와 폭풍 같은 스피드를 당해낼 자가 없다. '아웃코스의 여왕' 최민정이 결국 '세 바퀴의 기적'을 앞세워 금빛 질주를 해냈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에이스 최민정은 16일 중국 베이징 수도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1500m 결승에서 2분17초81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번 대회 한국 선수단의 두 번째 금메달이다. 최민정은 이로써 2018년 평창 대회에 이어 여자 1500m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최민정은 손쉽게 결승에 올랐다. 준준결승에서는 초반부터 선두로 나서 넉넉하게 다른 선수들과 격차를 벌렸다. 준결승에서는 주특기인 막판 스퍼트를 앞세워 올림픽 신기록(2분16초831)까지 세웠다. 8명 중 6번째로 레이스를 이어가다 세 바퀴 반을 남겨 두고 아웃코스로 치고 나가 다른 선수 다섯 명을 유유히 제쳤다. 한 바퀴 반 만에 선두 자리를 꿰찬 최민정은 마지막 두 바퀴를 압도적인 1위로 돌아 가볍게 결승행을 확정했다.

최민정이 16일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면서 기뻐하고 있다. 베이징=김경록 기자

결승전에서도 막강했다. 7바퀴를 남긴 시점부터 선두권을 유지하면서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다시 세 바퀴를 남겨 놓고 급격하게 속도를 올렸다. 지칠 줄 모르는 최민정의 스퍼트에 다른 선수들은 추월 타이밍을 놓쳤다. '역전의 명수'였던 최민정이 이번엔 선두 자리를 확실하게 지켜 또 한 번 세계 정상에 올랐다.

최민정은 처음부터 천재형 스케이터였다. 대표팀 막내였던 2015년 16세 나이로 세계선수권을 제패했다. 그때부터 스피드와 체력이 남달랐다. 곧 대표팀 에이스 자리에 올랐다. 첫 올림픽이던 2018년 평창 대회에선 여자 1500m와 3000m 계주 금메달을 따내 2관왕에 올랐다.

4년 만에 다시 출전한 이번 올림픽. 최민정은 다시 전방위로 활약했다. 여자 1000m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3000m 계주 은메달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차원이 다른 스퍼트로 한국 쇼트트랙의 자존심을 세웠다. 1000m 은메달을 딴 뒤 수많은 감정을 담은 눈물을 쏟았던 최민정은 1500m 금메달을 딴 뒤 비로소 활짝 웃었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들이 16일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딴 뒤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베이징=김경록 기자

박장혁(24·스포츠토토)·곽윤기·이준서(22·한국체대)·황대헌(23·강원도청)이 나선 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은 앞서 열린 남자 5000m 계주에서 6분41초679를 기록해 캐나다에 0.422초 뒤진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은메달을 따낸 한국은 준결승에 나섰던 김동욱(29·스포츠토토)까지 다섯 명의 선수가 함께 시상대에 오르게 됐다.

한국 남자 대표팀은 2006년 토리노 대회 이후 올림픽 계주에서 금메달 사냥을 하지 못했다. 은메달 1개(2010년 밴쿠버 대회)가 전부였다. 4년 전 평창올림픽 결승에선 임효준(린샤오쥔)이 넘어져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이번에도 금메달엔 한 발 모자랐지만, 밴쿠버 대회 이후 12년 만에 계주에서 메달을 수확하는 성과를 올렸다.

대표팀 에이스는 황대헌이다. 하지만 계주 핵심 선수는 곽윤기였다. 대표팀은 마지막 두 바퀴를 돌아야 하는 2번 주자로 곽윤기를 낙점했다. 그는 12년 전 밴쿠버에서도 최종주자로 나섰다가 선수 두 명을 제치고 은메달을 안겼다. 이번 올림픽 준결승에서도 마지막 주자를 맡아 1위로 결승에 오르는데 기여했다.

곽윤기의 체격은 크지 않다. 키 1m64㎝·체중 60㎏이다. 힘 있는 스타트나 폭발적인 아웃코스 추월 능력은 없다. 그가 세계선수권(종합우승 1회)이나 올림픽(노메달)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이유다. 하지만 날렵하게 상대 빈틈을 노리는 능력만큼은 '월드 클래스'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들이 16일 2022 베이징 겨울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딴 뒤 1위로 들어온 캐나다 선수들(검은 유니폼)과 기쁨을 나누고 있다. 베이징=김경록 기자

곽윤기는 세 번의 올림픽에 나섰고,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다. 이날 경기에 출전한 20명 중 샤를 아믈랭(38·캐나다)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다. 그럼에도 체력 면에서 뒤지지 않는다. 대표팀 분위기 메이커도 곽윤기였다. 후배들의 기념 사진을 찍어주고, 이해할 수 없는 오심이 일어났을 땐 어깨를 다독였다. 부당한 판정에 대해선 용기 있게 입을 열었다.

몇 년 전부터 쇼트트랙을 알리기 위해 유튜브 계정을 운영해온 곽윤기는 올림픽을 앞두고 '골드(금메달)-골드(채널 구독자 100만명)'란 목표를 밝혔다. 16일 밤 그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88만명을 돌파했다. "골드 버튼보다 더 탐난다"던 금메달은 따내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에게 박수를 받을 만한 피날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