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

안락사 앞둔 호주 과학자 "죽는 건 슬픈 일 아니다"

含閒 2018. 5. 10. 16:56

안락사 앞둔 호주 과학자 "죽는 건 슬픈 일 아니다"

정이나 기자 입력 2018.05.10. 14:58 수정 2018.05.10. 15:01

"노인 자유롭게 한 사람으로 기억해달라"
"장례식 땐 베토벤 교향곡 9번"
안락사를 선택한 호주의 데이비드 구달 박사. © AFP=뉴스1

(서울=뉴스1) 정이나 기자 = 104년 인생을 마무리하기 위해 안락사(조력자살)를 선택한 호주 최고령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9일(현지시간) 스위스에서 생애 마지막 기자회견을 열었다. 구달 박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안락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우아하지 않게 나이들어간다'는 문구가 적힌 셔츠를 입은 구달 박사는 이날 스위스 바젤에서 생애 마지막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 날인 10일 정오께 안락사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락사로 삶을 마치는 것에 주저함이 들지 않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망설이지 않고 "전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식물학자이자 생태학자인 구달 교수는 지난달 104번째 생일 때 "이 나이까지 이른 걸 크게 후회한다. 20~30년 정도 더 젊어진다면 좋겠다"며 "행복하지 않고 죽고 싶다. (죽는다는게) 특별히 슬픈 일은 아니다. 정말 슬픈 건 (죽고자 하는 의지가) 가로막힐 때"라고 말했다.

구달 교수가 선택한 조력자살은 호주에서는 법으로 금지돼 있다. 이 때문에 구달 교수는 지난주 스위스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1만2900km 떨어진 스위스 바젤까지 여행했다.

대다수 국가에서는 안락사나 의사 조력자살(physician-assisted suicide)이 법으로 금지돼 있다. 호주 역시 그렇지만 지난해 11월 빅토리아주 의회가 처음으로 안락사 허용 법안을 승인해 2019년 여름이면 말기 환자에 한해 삶을 끝마칠 선택권이 주어지게 된다.

스위스에도 조력자살을 합법화하는 법안이 따로 마련돼 있지는 않지만 몇몇 상황에 따라서는 허용하고 있다.

고국에서 삶을 끝마치고 싶다는 의지를 드러냈던 구달 교수는 스위스로 떠나기 전에도 "스위스가 멋진 나라이긴 하지만 그곳에 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호주 법이 허용하지 않는 자살의 기회를 얻기 위해선 가야 한다"고 말했다.

기자회견에서 호주 시골을 다니며 했던 여행이 가장 그리울 것 같다고 말한 구달 교수는 "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이젠 너무 늦었다"며 "미완성 상태로 떠나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는 장례식에서 베토벤 교향곡 9번이 울려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내며 기자회견 도중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구달 교수는 자신의 이야기가 안락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는 정치인들이 자신과 같은 노인들이 스스로 죽고 사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법안을 고려해주기를 바란다며 '노인들을 자유롭게 만든 매개자'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했다.

lchu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