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버티면 청와대도 부담
금융개혁 동력도 잃을 것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내로남불’의 끝판왕인 건 알겠다. 매일 쏟아지는 의혹과 구차한 변명을 쫓기도 버거울 정도다. 이해 안 되는 건 청와대와 여당이다. 왜 그를 그렇게 싸고돌까. 청와대는 “국민 기대와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도 “해임은 없다”고 한다. 여당은 한술 더 떠 “(김기식 공격은) 금융개혁을 좌초시키려는 것”이라고 역공에 나섰다. 억지로라도 청와대와 여당의 말을 이해하려면 김기식이 둘도 없는 ‘금융개혁의 적임자’라야 한다. 과연 그런가.
청와대와 여당이 생각하는 금융개혁이 오로지 ‘재벌 개혁’이라면 일부 맞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더 급하고 중요한 게 있다. 진짜 금융개혁은 금융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채용 비리 같은 적폐를 청산하는 것이다. 최고의 좋은 일자리로 꼽히는 금융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우리는 3%밖에 안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 금융이 우간다 수준으로 불리는 것도 좋은 일자리나 덩치에 걸맞은 부가가치를 못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김기식은 국회의원 시절 “은행업이 국제 경쟁력을 갖거나 해외 진출에 성공할 가능성은 없다”며 은산분리를 되레 강화했다. 그런 좁은 식견으로 한국 금융의 성장을 이끌 수 있겠나.
채용 비리는 또 어떤가. 자신의 ‘갑질 출장’을 “당시 관행”이라며 정당화한 그다. 금감원이 적발한 채용 비리에 대해 은행들은 “CEO 추천 등은 당시 관행”이라며 항변하고 있다. 김기식은 무슨 낯으로 이들을 단죄할 것인가. 금융은 ‘선관의 의무’를 특히 강조한다. 삼성증권 사태에서 보듯 탐욕스러운 손가락 하나가 시장을 흔들 대형 사고를 낳는다. 그래서 도덕·투명성을 꼼꼼히 따지고 금융회사 대주주의 자격을 더 까다롭게 하는 것이다. 금융 수장이야 말할 것도 없다. 오얏나무 밑에서 갓끈 안 맬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국민 눈높이’에는 맞아야 한다.
‘갑질 출장’도 문제지만 더 나쁜 건 그 후다. 김기식의 변명은 구차하고 불투명하다. “정책담당 비서와 동행했다”고만 했을 뿐 그가 인턴이란 말은 안 했다. 2년간 미국 연수 때 “포스코 돈은 안 받았다”고만 했지 누구 돈으로 갔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해명할수록 의혹이 꼬리를 문다. 정치라면 혹 모를까 도덕과 투명이 생명인 금융 수장에게는 가장 안 맞는 자질이다. 그러므로 금융개혁에 그보다 적임자가 없다고 청와대와 여당이 우긴다면, 나는 대한민국에 김기식보다 깨끗하고 정권 철학에도 맞으며 금융에 전문성과 비전을 지닌 인물을 당장에라도 10명 이상 꼽아줄 수 있다.
금융개혁이 아니면 뭔가. 내 편 감싸기일 수 있다. 김기식은 ‘캠·코·더(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에 참여연대 출신이다. 끼리끼리 추천하고 검증하고 면죄부도 줬을 수 있다. 이른바 셀프 추천, 셀프 검증, 셀프 면죄부다. 이도저도 아니고 단지 권력의 오만일 수도 있다. 높은 지지율을 믿고 비판에 귀를 막는 것이다. 내로남불 좀 했다. 그래 어쩔래? 이런 권력의 오만이야말로 파국의 전주곡이다. 오만의 뱃살이 두툼해지면 권력의 근력은 급속도로 약해진다.
이쯤 되면 한 가지밖에 없다. 김기식의 자진사퇴다. 청와대와 여당엔 적어도 세 가지 이점이 있다. 첫째, 야당에 더 이상 공격의 빌미를 안 줘도 된다. 더 놔두면 국력을 모아야 할 남북 정상회담에도 안 좋다. 자칫 100% 완승이 보장된 지방선거까지 망칠 수 있다. 둘째, 새 인물을 앉혀 금융개혁에 다시 동력을 얻을 수 있다. 셋째, ‘내 적폐부터 청산하는 솔선수범 정부’란 믿음을 줄 수 있다. 그런데도 김기식이 버틴다면 나는 그의 별명 ‘금융계의 저승사자’를 바꿔 부를 참이다. ‘내로남불의 물귀신’으로.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