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복수".. 성폭행 피해호소 30대부부의 한맺힌 유서
입력 2018.03.05. 03:58
[동아일보]
A 씨(38) 부부가 남긴 유서 곳곳에는 이처럼 원한 맺힌 문구가 적지 않았다. 대상은 A 씨의 친구 B 씨(38). B 씨는 A 씨의 아내(34)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으나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성폭행 피해를 주장한 A 씨 부부는 억울함을 호소했고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르렀다.
○ 원망과 성토로 가득 찬 유서
3일 0시 28분경 전북 무주군의 한 캠핑장 이동식주택(캐러밴)에서 A 씨 부부가 쓰러져 있는 것을 주인이 발견했다. 두 사람은 곧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아내는 곧 숨졌다. A 씨는 4일 오전 8시경 숨졌다. 부부는 10장가량의 유서를 남겼다. 유서는 부부의 차량과 캐러밴에서 발견됐다. 유서에는 가족 및 지인에게 미안하며 남은 두 딸을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와 함께 성폭행 가해자로 기소됐던 B 씨를 원망하고 강하게 성토하는 글이 담겨 있었다. “친구 아내를 탐하려고 비열하고 추악하게 모사를 꾸몄다” “죽어서라도 끝까지 복수할 테니 기다리고 있어라” 등이다.
4일 충남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경찰은 B 씨를 구속했다. A 씨 아내를 성폭행하고 다른 지인들을 폭행하거나 협박한 혐의 등이다. B 씨는 같은 해 4월 중순 A 씨가 해외 출장으로 집을 비운 사이 A 씨 아내에게 접근한 뒤 협박해 성폭행한 혐의다. A 씨와 B 씨는 고향 마을에서 같이 자란 친구 사이로, B 씨는 충남지역의 한 폭력조직 조직원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 이후 A 씨의 아내가 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피해자 지원센터에 연락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1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B 씨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그러나 대전지법 논산지원은 B 씨의 폭행 혐의만 유죄로 판단해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반항할 수 없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의심이 들지만 직접 증거는 피해자 진술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하기까지 5일간 계속 협박을 당하는 상태였다고 진술하고 첫날 밤의 폭행과 협박 상황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다. 하지만 협박에 못 이겨 모텔에 끌려갈 때 성폭행 위험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이 없다”며 성폭행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 5일 전에도 극단적 선택 시도
B 씨의 성폭행 혐의가 무죄로 판결나자 A 씨 부부는 심한 충격과 절망감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의 아내는 지난달 26일에도 본인의 사진과 유서를 차량에 싣고 나가 음독을 시도했다가 남편의 신고를 받은 경찰의 추적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들은 “A 씨 아내가 이 사건 후 줄곧 피해자 지원센터와 병원에서 상담과 치료를 받았다. 여러 차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시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유족은 “A 씨 부부는 B 씨가 성폭행 혐의를 벗어나기 위해 거짓말을 일삼는다고 분개했다. 법원마저 무죄를 선고하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경찰 관계자는 “피해자는 성폭행 부분에 대해 일관되게 진술했다. 이와 관련한 정황 증거도 충실하게 제시했다. 아직 최종 결론이 나지 않은 만큼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전=지명훈 mhjee@donga.com / 무주=이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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