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질환, 자살①]순간의 오판 자살..남겨진 가족에겐 평생 고통
입력 2017.06.05. 10:01
-자살유가족 목소리 직접 들어보니…
-경제적 압박 등 자살시도 일반인의 4배나
- “남편 빈자리보다 사회적 편견 더 힘들어”
[헤럴드경제=신동윤 기자]자살만큼 비극적인 결말은 없다. 자살은 그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해버리기 때문이다.
당사자는 죽음으로 끝이지만, 남겨진 가족들에게는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슬픔의 시작이다. 지난 2015년에만 한국에선 8만여명의 자살 유가족이 생겨났다.
우리 사회에서 자살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었다는 슬픔 이상의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 생업 붕괴와 인간관계 단절 등의 사회적 자산의 붕괴는 물론 경제적 압박을 겪는 경우가 많고,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의 편견에 시달리는 경우도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자살유가족이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는 일반인의 자살시도보다 4배가량 더 많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다.
▶자살 가정 붕괴는 사회적 비용 증가로 이어져…국가가 도와야=“수십년간 형님, 동생하며 지내왔던 사람들이 한 순간에 모르는 사람처럼 외면하는 것은 물론이고, 도와 달라는 외침에 ‘이제 그만 하라’며 핍박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지난달 26일 헤럴드경제와 만난 김향금(55) 씨는 2010년 12월10일 밤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집에 홀로 남아있던 남편이 “미안하다”라는 문자 메시지만을 남기고 거실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 것이다.
수십년간 국내 한 유명 통신사의 건실한 직장인으로 생활하던 남편을 죽음으로까지 몰고간 것은 실적압박이었다는 것이 김 씨의 설명이다. 김 씨는 “평소 아부할 줄 모르는 남편은 번번히 승진에서 탈락했다”며 “자살 직전엔 24시간 쉬지 않고 울려오는 회사 문자에 극도의 심리적 압박감을 받는 모습도 보였다”고 했다.
김 씨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남편의 사망 후 이전과는 달라진 회사와 회사 동료들의 태도였다. 회사는 김 씨 남편의 개인적인 문제로 인한 자살이라며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남편 직장 선ㆍ후배들은 회사의 눈치를 보며 김 씨와의 연락을 끊어갔기 때문이다. 김 씨는 “회사에선 금전적인 보상을 포기하는 대신 시부모님을 한번 찾아뵙고 위로해 달라는 요구조차 차일피일 미루며 모른 척 했다”며 하소연했다.
시댁 식구들이 보낸 원망의 눈초리도 김 씨의 마음을 후벼팠다. 김 씨는 “남편을 어떻게 챙겼길래 이런 문제가 생겼냐는 듯한 시댁 식구들의 질책과 따가운 눈초리가 무엇보다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남편의 죽음은 곧장 경제적인 압박으로 돌아왔다. 대학에 입학한 큰 아들과 대입을 준비 중인 작은 아들의 학비를 대다보니 남편의 죽음으로 받은 보험금도 금방 다 써버리고 거액의 담보대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이 돈을 갚기 위해 식당 알바, 파출부 생활까지 해야했다.
김 씨는 “한 가정에서 남편이 자살로 죽을 경우 가정 경제가 붕괴하고, 아내가 죽을 경우 육아에 문제가 생기는 등 자살유가족이 자립할 수 없다면 가정과 사회에 큰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자살을 예방하는 동시에 자살유가족들이 일어설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돕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자살한 고인들은 사회에 해악을 끼친게 없음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자살유가족을 편견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다”며 “과거 장애인 가족이 있다는 것 만으로도 흉이었던 시절이 이젠 사라졌듯, 자살에 대한 사회의 시선도 바뀌도록 다 같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살은 유가족에게 평생 마음병” 지난 3일 경기 고양 일산에서 만난 정규환(31) 씨는 누구보다도 밝은 표정을 지닌 건강한 청년이었지만, 그런 그에게도 씻어낼 수 없는 마음 속 상처가 있었다. 12년전 어느 날 누구보다 의지하고 지냈던 누나가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누나는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아파트 베란다 밖으로 몸을 던져 가족들 곁을 떠났다. 누나의 죽음은 정 씨는 물론 정 씨 부모님들의 삶도 송두리째 허물어버렸다. 정 씨는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던 아버지를 겪으며 서로 의지를 많이 해오다보니 누나의 죽음이 가져온 충격이 너무 컸다”며 “자식을 잃은 충격을 이기지 못한 부모님 역시 1년간 생업을 접었고, 우리 가족은 대화와 웃음을 잃은 채 각자 방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고 설명했다.
1년간의 휴학 후 정 씨는 슬픔을 잊기 위해 정신없이 육체노동에 매달렸다. 사랑과 애정이라는 감정은 사라지고 날카롭고 포악한 모습만 남은 정씨를 주변 사람들이 피하기 일쑤였다고 한다. 정 씨는 “약해진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지 않으려 하다보니 오히려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도 관계가 모두 끊어지고 말았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런 정 씨의 마음 속 상처는, 아무도 아는 이 없는 호주로 떠났던 워킹홀리데이 1년을 통해 아물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새롭게 만난 친구들에게 지금까지의 힘들었던 생활을 조금씩 털어놓으며 마음의 안정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다. 마음이 편안해지자 지금껏 가족들에게 폭력적인 모습을 보여왔던 아버지의 상처도 보이기 시작했단게 정 씨의 설명이다.
정 씨의 아버지 역시 어린 나이에 자신의 아버지를 자살로 잃은 경험이 있었다. 정 씨는 “아버지는 나처럼 마음을 치유받을 기회도 얻지 못한 채 그대로 안고 살아가다보니 할아버지를 지키지 못했던 할머니에 대한 원망은 물론 자신의 부인, 자녀들에게까지도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 것 같다”며 “어쩌면 아버지도 자살이란 비극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자살은 사망한 사람에겐 세상이 끝나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하지만, 남겨진 유가족들에게는 평생 씻지 못할 비극을 안겨주는 무서운 질병과 같은 것이라는 것이 정 씨의 생각이다.
문구도매업체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정 씨는 실용무용과를 졸업한 ‘춤꾼’이기도 하다. 그는 “틈나는 대로 갈고 닦은 춤 실력을 자살 방지에 보태고 싶다”며 “춤 공연과 강연 등으로 자살 시도자는 물론 유가족들에게 새 희망을 주는 삶을 앞으로 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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