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한편의 4시간짜리 주총드라마" 삼성-엘리엇 피말리는 결전

含閒 2015. 7. 17. 16:53

"한편의 4시간짜리 주총드라마" 삼성-엘리엇 피말리는 결전

[주총현장 스케치]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 머니투데이 | 장시복 기자 | 입력 2015.07.17. 16:35

 

[머니투데이 장시복 기자] [[주총현장 스케치]삼성물산 임시주주총회]

"한편의 4시간짜리 드라마 같았다."

삼성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 간의 '결전'으로 빗대어진 17일 삼성물산 임시 주주총회를 두고 나온 촌평이다. 그만큼 주총 내내 뜨거운 열기와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 찼다. 통상 다른 업체들의 주총이 20~30분만에 일사천리로 끝나는 점을 감안하면 얼마나 치열한 스토리가 전개됐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결국 삼성이 짜릿한 극적 승리를 거뒀지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성사되기 직전까지 한 치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 /사진=장시복 기자

◇출발부터 30여분 늦어진 주총=주총은 원래 서울 양재동 aT센터 5층 회의실에서 이날 오전 9시부터 시작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두 시간 전인 오전 7시부터 주주들이 속속 몰려들었고 오전 8시30쯤에 는 복도까지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자리가 꽉 찼다.

다른 층에 별도 주총장을 추가로 마련해야할 정도로 일단 흥행엔 성공했다. 출석률은 83.57%(위임장 포함). 삼성물산이 '적군'인 엘리엇 측 변호인(넥서스 법률법인)들을 배려해 20석의 지정석을 마련해 놓기도 했지만, 참석 주주의 증가로 일부 자리는 다른 주주들에게 양호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오전 9시가 지나도 주총은 시작되지 않았다. 중복 위임장이 많이 나오면서 삼성과 엘리엇 양쪽이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회의 시작이 안되자 마음이 급해진 주주들은 곳곳에서 소리를 질렀다.

◇찬반 양측의 갑론을박=결국 예정보다 35분을 넘기고서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이 의사봉을 들었다. 주총의 하이라이트인 합병 안건을 상정하자 열기가 더욱 고조됐다. 엘리엇 측 최영익 넥서스 대표변호사는 직접 일어나 의기양양하게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했고 일부 주주들의 박수갈채도 받았다. 이때 만해도 엘리엇 측의 표정에선 여유가 묻어나왔다.

의사발언 시간이 되자 여러 주주들 서로 마이크를 잡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주로 합병 찬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다. 의장인 최 사장의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갑론을박이 거셌다. 발언이 나올 때마다 박수와 야유가 한데 뒤섞여 주총장의 공기를 메웠다. 일부 주주는 어렵게 잡은 마이크를 들고 "래미안 아파트를 제대로 지어달라"는 발언을 해 격해진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1시간 반 동안의 난상토론을 거쳐 피 말리는 표대결이 전개됐다. 엄숙해진 분위기 속에서 주주들은 소중한 1표를 던졌다. 개표 과정도 1시간 이상 소요됐다.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 신중에 신중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 개표기 앞에는 삼성물산 관계자, 엘리엇 측 변호인 뿐 아니라 법원 검사인과 일반 소액주주까지 함께 참관해 철저히 감시를 했다. 점심식사 시간을 넘겼지만 주주들은 결과를 보기위해 자리를 꿋꿋이 지켰다.

◇양 측 참관인 앞에서 투표함을 열다=결국 승리는 삼성에게 돌아갔다. 찬성률 69.53%. 가결여부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박빙으로 예상했으나 찬성 마지노선인 66.67%를 2.8% 포인트 가량 넘어서는 신승이었다.

막판에 소액주주들과 기관을 직접 찾아가 설득한 게 주효했다. 한껏 여유를 보이던 엘리엇 측 표정엔 웃음기가 사라졌다. 최 변호사는 어디론가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승기를 잡은 삼성은 표정 관리에 들어갔다.

2호(현물배당)및 3호(중간배당) 안건은 김빠진 진행이 돼버렸다. 합병 안건을 통해 주주들의 마음이 이미 드러나서다. 그럼에도 엘리엇 측 대리인들은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주주들은 결국 나머지 안건에도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4시간의 주총은 끝내 막을 내렸다. 최 사장은 승전보를 알리기 위해 기자실로 향했고, 최 변호사는 한참을 주총장에서 맴돌았다. "실망스럽다. 드릴 말씀이 없다. 의뢰인(엘리엇)과 협의해 보겠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이번 합병은 삼성으로선 미래의 명운이 달린 사안이어서 절박했고, 절박감이 승리로 이끈 듯하다"며 "주주들에게 4시간의 주총이 길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삼성 입장에서 4시간이 4년 같이 길게 느껴졌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4시간 주총 결과를 취재하기 위해 로이터, 블룸버그, 파이낸셜타임즈, AP통신, 월스트리트저널, 아사히, NHK 방송, 아랍 카타르 민영 위성TV 방송사인 알자지라 등 내외신 기자 200여명이 장사진을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