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매화쌍조(梅花雙鳥) / 다산 정약용

含閒 2015. 2. 23. 10:07

 

매화쌍조(梅花雙鳥) / 다산 정약용

 

 

 

정약용, <매화쌍조도(梅花雙鳥圖)>, 비단에 채색, 44.7 x 18.5 cm, 고려대 박물관,소장.

 

 

 

매화쌍조(梅花雙鳥) / 다산 정약용

 

 

翩翩飛鳥 息我庭梅 편편비조 식아정매

有烈其芳 惠然其來 유열기방 혜연기래

爰止爰棲 樂爾家室 원지원서 락이가실

華之旣榮 有賁其實 화지기영 유분기실

 

 

   펄펄 나는 저 새가 우리 집 매화 가지에서 쉬는구나

       꽃다운 그 향기 짙기도 하여 즐거이 놀려고 찾아왔구나

         여기에 올라 깃들여 지내며 네 집안을 즐겁게 해주려무나

꽃이   이제  다  피었으니  열매도  많이  달리겠네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시인 묵객들은 긴 겨울을 보내면서 봄의 전령사인 매화를 기다린다. 문인화가들이 매화를 그리고 화제로 자주 이용하는 芳信先傳(방신선전), 早傳春信(조전춘신). 이 화제에도 매화가 다른 꽃보다 봄소식을 먼저 전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이 귀양지에서 맞은 봄은 봄이되 봄 같지 않았으니 이른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글귀가 그의 심정을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귀양 온 몸이라 여식의 혼사에도 갈 수 없었으니 그 마음이 어떠했을까......

 다산이 강진으로 귀양온 지 여러 해가 지난 어느날이었다. 부인 홍씨가 시집올 때 입고 왔던 낡은 치마 여섯 폭을 보내오자 이것을 오려서 서첩 네 책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나눠주고 그 나머지로 작은 족자를 만들어 한 해 전에 아비없이 혼사를 치룬 딸에게 결혼기념으로 보냈으니 요즘으로 보면 축하작품이 된 셈이다. 장성한 딸의 혼사를 직접 보지 못했으니 얼마나 눈에 밟혔을까. 이제 남편을 만나 행복하게 살아달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두 마리 새가 매화가지에 다정하게 앉은 모습을 그리고, 시경(詩經)의 사언풍 고체시로 아비의 마음을 전한다. 시경을 암기하고 있었던 그는 끝부분의 有賁其實에서 결혼축시로 자주 사용하는 시경의 도요를 가져왔고, ‘樂爾家室에서 형제간의 우애를 그린 시경의 상체를 인용한다. 짧은 몇 구절로 이제 결혼했으니 행복한 삶을 살아 달라는 자신의 바램을 매화와 새를 통해 잘 담아낸 제화시이다. 현재 이 작품은 고려대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시의 제목은 매화나무에 두 마리 새가 있어 매화쌍조라 붙여 보았다. 10년 넘게 유배지에서 봄이 되면 매화를 감상하면서 겹꽃보다 홑꽃을 아꼈고 홍매보다 백매를 유난히 좋아했던 다산. 금년에는 다산이 유배지에서 애틋하게 딸을 생각하면서 그려보낸 매화그림을 보면서 다산초당을 둘러보고 매화향기도 느끼러 남도로 내려가려고 한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영조38)~1836(헌종2)

  조선 정조 때의 문신이며, 실학자·저술가·시인·철학자·과학자·공학자이다. 본관은 나주, 는 미용(美庸), 는 사암(俟菴탁옹(籜翁태수(苔叟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다산(茶山), 당호는 여유당(與猶堂)이며,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다산은 경기도 광주군 초부방 마현리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재마을)에서 53녀 가운데 넷째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진주목사를 지낸 정재원(丁載遠)으로 압해 정씨이고, 어머니는 해남 윤씨(海南尹氏)이다. 그의 집안은 기호 남인에 속했으며, 다산의 선조 가운데 연달아 8대에 걸쳐 홍문관(옥당) 벼슬을 역임하여 ‘8대 옥당집안이라고도 한다. 어머니 해남 윤씨는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의 후손으로 학자이자 화가로 유명한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의 손녀였다. 학문과 벼슬로 이름이 높았던 호남의 대표적인 남인계 집안이었다. 다산은 유형원(柳馨遠), 이익(李瀷)으로 이어지는 실학을 계승했으며 북학파의 사상까지 받아들여 실용지학(實用之學이용후생(利用厚生)을 주장하면서 실학을 집대성하였다. 다산은 일생 500여권이 넘는 저술과 2,700여수의 시를 남기고, 75세를 일기로 고향집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