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이규보의 눈속에 친구를 찾았지만 못 만나고(삼도헌의 한시산책 314)

含閒 2014. 2. 10. 15:57

이규보의 눈속에 친구를 찾았지만 못 만나고(삼도헌의 한시산책 314)

 

 

 

덕유산 설경

 

 

 

 

눈 속 친구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다[雪中訪友人不遇]

 

 

이규보(李奎報)

 

 

 

雪色白於紙(설색백어지)  눈빛이 종이보다 희길래

擧鞭書姓字(거편서성자)  채찍 들어 이름을 썼지.

莫敎風掃地(막교풍소지)  바람아 불어서 땅 쓸지 마라

好待主人至(호대주인지)  주인이 올 때까지 기다려주려무나.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설날과 입춘이 지났는데도 강원도에서는 눈소식이 들린다.

이렇게 눈이 내리면 대지는 백지보다 흰 은세계가 된다.

고려의 대표적인 시인 이규보도 설경을 보고 일어난 감흥을 드러낸다.

그는 눈을 보자 갑자기 벗이 그리워져 말을 타고 채찍을 휘두른다.

벗의 집 앞에 이르렀으나 출타중인지 만나지 못한다.

그러자 채찍으로 방금 내린 눈 위에 이름을 쓴다.

혹여 바람으로 인해 정표로 새긴 이름이 뭉개질까 걱정된다.

바람에게 벗이 돌아올 때 까지 기다려달라고 당부한다.

1700년 전 눈 내린 어느 날 밤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서예의 성인으로 불리는 왕희지에게는 여러 아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다섯째 아들 왕휘지(王徽之)는

눈이 펑펑 쏟아지자 그가 살던 산음(山陰)에서 멀리 떨어진

섬계(剡溪) 땅에 사는 대규(戴逵;동진의 문인화가)가 그리워

밤새워 배를 저어 벗의 집 앞에 도착했으나 배를 돌려 돌아왔다.

당시 사람들이 왜 그랬냐고 물어보았다.

“흥이 일어나 갔다가, 흥이 다하자 돌아온 것

(乘興而行,興盡而反)”이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눈 내리는 날 보고 싶은 그리운 벗이 있는가.

내리는 눈을 보면서 가슴에서 감흥이 일어나는가.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이규보의 호는 백운거사(白雲居士). 고려조 최고의 명문장가로

그가 지은 시풍은 자유분방하고 웅장한 게 특징이다.

시·술·거문고를 즐겨 스스로를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칭하였다.

당시 계관시인과도 같은 존재로 문학적 영예와 관료로서의 명예를 함께 누렸다.

무신정권의 권력에 아부한 지조 없는 문인이라는 비판이 있으나 대 몽골 항쟁에 강한

영도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정권에 협조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그의 문학은 자유분방하고 웅장한 것이 특징인데, 당시 이인로 계열의

문인들이 형식미에 치중한 것에 반해 기골(氣骨)·의격(意格)을 강조하고

신기(新奇)와 창의(創意)를 높이 샀다. 저서에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백운소설(白雲小說), 작품에 국선생전(麴先生傳) 등이 있다.

 

 

 

 

삼도헌의 한시산책 314

2014년 2월 10일 발송

서예세상 삼도헌의 글방(http://cafe.daum.net/callip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