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김시습의 설복노화(삼도헌의 한시산책313)

含閒 2014. 1. 15. 11:22

김시습의 설복노화(삼도헌의 한시산책313)

雪覆蘆花(설복노화)

金時習(김시습)

滿江明月照平沙(만강명월조평사) : 강에 가득한 밝은 달빛 모래벌을 비추니

裝點漁村八九家(장점어촌팔구가) : 어촌 열아홉 가구가 장식되는구나.

更有一般淸絶態(갱유일반청절태) : 다시 하나의 맑고도 뛰어난 자태 있으니

暟暟白雪覆蘆花(개개백설복노화) : 아름다운 흰 눈이 갈대꽃을 덮었구나.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겨울강가 모랫벌에 밝은 달빛이 가득하다.

한적한 어촌마을 위에도 밝은 달은 떠올라 세상을 밝힌다.

그런데 달빛에 잇대어 또 하나의 맑고 빼어난 자태를 드러내는 것이 있다.

바로 갈대꽃을 하얗게 덮고 있는 흰눈이다. 달과 갈대꽃,

그리고 흰눈이란 자연경물을 통해 시적화자는

한가로운 겨울풍경을 읊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는 흰색과 갈대꽃이 갖는 상징성에 주목해야한다.

겨울이 되면 황토색의 땅, 푸른색의 산과 들판을 백설이 덮어 버린다.

불가에서 흰색은 자제, 속죄의 뜻이 있고, 오행으로 보면,

금(金)으로 죽은 자에 대한 애도를 뜻한다.

또한 무구, 정결함을 상징하거나,

육체에 대한 영혼의 승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갈대꽃[蘆花]은 당본초(唐本草)에 최초로 기록되어 있는

화본과 식물 노위(蘆葦:갈대)의 꽃을 일컫는다.

갈대의 꽃말은 순정, 신의, 지조이다.

선비들이 들풀로 엮은 이불에 갈대의 꽃으로 솜을 넣어 만든

이불을 덮고 자면서 신의를 생각하였다고 한다.

이처럼 흰색은 죽은자에 대한 애도와 사죄,

그리고 정결한 영혼의 승리를 의미하는 색상이고,

갈대는 선비의 지조와 신의를 상징한다.

세조가 나이어린 단종을 내치고 권력을 잡은 불의를 보고

더러운 것을 제거시키고 사(邪)를 물리치려는 작가의 의중이

이 시의 내면에 깔린 것은 아닐까......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서 한평생을 초야에서 보낸 매월당이

갈대꽃 같이 자신의 절개를 지키면서 살아가는데 흰눈이 내려

세상을 덮고 있다고 진술한다. 얼마 지나지 않은 짧은 시간에

흰눈이 녹으면 세상을 가렸던 눈은 녹을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본질은 저절로 드러나는 법.

어쩌면 매월당은 그 날을 기다리면서 세상을 등지고 살았는지 모른다.

이 시를 통해 새삼 선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보게 된다.

김시습(金時習)

조선 초기의 학자(1435~1493).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

동봉(東峯)이다. 이름인 시습(時習)은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 중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구절에서 따서 지었다고 한다.

삼각산 중흥사에서 독서를 하다 세조의 왕위 찬탈 소식을 듣고

3일 동안 통곡을 한 뒤 책을 불사른 뒤 평생 동안 절개를 지켰다.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머리를 깎고 21세에 방랑의 길에 들어서,

경기도 양주(楊州)의 수락(水落), 수춘(壽春)의 사탄(史呑),

해상(海上)의 설악(雪岳), 월성(月城)의 금오(金鰲) 등지를

두루 방랑하면서 글을 지어 세상의 허무함을 읊었다.

유교와 불교의 정신을 포섭한 사상과 탁월한 문장으로

이름을 알리다 향년 59세(1493년)로 죽었다.

사후에 중종은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시호를 내렸으며,

선조는 이이를 시켜 김시습의 전기를 쓰게 하였고,

숙종 때에는 해동의 백이(佰夷)라 하였다. 영월 육신사,

공주의 동학사 숙모전에 배향되었다.

한국 최초의 한문 소설 <금오신화>를 지었고,

저서에 《매월당집》이 있다.

삼도헌의 한시산책 313

2014년 1월 14일 발송

삼도헌 글방 (http://cafe.daum.net/callip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