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秋日絶句/權遇

含閒 2013. 11. 18. 10:22

 

 

추일절구(秋日絶句)        권우(權遇)

 

竹分翠影侵書榻(죽분취영침서탑)      대는 푸른 그림자를 나누어 책상에 스미게 하고

菊送淸香滿客衣(국송청향만객의)      국화는 맑은 향기 보내어 나그네의 옷을 채우네.

落葉亦能生氣勢(낙엽역능생기세)      낙엽 또한 기세를 살려서

一庭風雨自飛飛(일정풍우자비비)      온 뜰 비바람 소리 내며 절로 날아다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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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깊어간다. 이렇게 늦가을이 되면 대 그림자는 책상으로 스며들고,

서리 맞은 진한 국화향기도 과객의 옷 속까지 젖어든다. 게다가 낙엽 또한 기세 좋게

온 뜰 가득 비바람 소리 내며 절로 날아다닌다. 마지막 구를 “온 마당 바람비에 스스로

날린다”라고 해석하면 운치가 적을 것 같다.

 

늦가을 밤에 듣는 낙엽 뒹구는 소리는 비바람 치는 소리와 흡사하다. 조선의 정철(鄭澈)

또한 “우수수 잎 떨어지는 낙엽 소리, 성긴 비 내리는 줄 잘못 알았네”

(蕭蕭落木聲, 錯認爲疏雨) 라고 읇조렸다.

따라서 위의 시 결구에 나오는 이 구절도 참으로 절창(絶唱)이다.

 

예로부터 시인들은 계절에 어울리는 자연의 소리를 담아내곤 했다. 봄엔 새소리,

여름엔 물소리, 가을엔 낙엽 뒹구는 소리, 겨울엔 눈 내리는 소리...

예컨대 김광균 시인은 눈 내리는 소리를 “여인의 옷 벗는 소리”라고 묘사하지 않았던가.

깊어가는 가을밤! 우리는 자연 속에서 어떤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만추의 가을밤에 마음을 열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보자.

 

 

 

 

권우(權遇·1363~1419)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학자

 

 

본관은 안동으로 자는 중려(仲慮)며 처음 이름은 원(遠)이고 호는 매헌(梅軒)이며

조선 초기의 대학자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아우다. 젊어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문하에 다니며 성리(性理)의 학문에 정밀하였으므로 양촌이 늘,

“나는 아우만 못하다.” 하였다. 벼슬이 예문제학(藝文提學)에 이르렀다.

 

그는 글씨를 잘 썼으며 작품으로 그의 형 근의 신도비가 남아 있다. 또한 시문에 능했으며

성리학과 『주역』에 밝았다. 당시 그의 학풍이 떨쳐져 정인지·안지(安止) 등 많은 학자를

배출하였다. 저서로는 『매헌선생집』 6권이 있다.

 

 

 

 

2013년 11월 16일 발송

삼도헌의 한시산책 312

*삼도헌 글방(http://cafe.daum.net/callip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