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한 인생 서사시 -밤의 길이 1,300 m
綠苑 李 文 浩
序 文
내 생애는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온 가느다란 선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줄이 아니고 기쁨과 즐거움 보다 슬픔과 아픔이 더 많았던 순간들의 연결이었고
다른 누구보다 더 생사를 선택해야 할 순간들이 많았던 기구한 운명이었다
이제 선택이 아닌 숙명적으로 맞을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순간과 선택으로 점철된 지난날들을 더듬어 본다
■ 차 례
1. 일제와 북한에서
1945 년9월2일 일본 대표단이 도꾜만에 있는 미군 함정 ‘미 주리호’에서 일본대표 重光외상과 梅津장군이 항복문서에 서명 하는 장면
‘바위에 깨어질 줄 모르고 부딪쳤던 계란의 눈물’……. 본문 중에서
특별한 탄생 1931년 3월24일(음)
옛날엔 변사가 구수하게 읊어대는 무성영화 동네에 들어오면 해지면 땅바닥에 앉아 영화보다도 변사의 말에 빠지던 그러한 날 어머니는 만삭의 몸으로 오래간만에 들어온 활동사진 구경을 갔었지
영화가 끝나고 한 밤중 집에 돌아와 화장실에 들린 어머니 벌벌 방에 기어 들어와 나를 낳았겠다
시계도 없던 그때 설사 있어도 시계를 봐줄 사람도 없는 외로운 탄생 나는 유복자
사과 냄새 유년시절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광주리에 사과를 담아 이고 이웃을 돌며 팔았다
밤늦게 돌아 온 어머니는 늘 향기로운 사과 냄새가 났다 나는 사과 먹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어떤 날 어머니는 “얘야, 오늘 많이 팔았으니 하나 먹자”며 잘 깎은 사과를 나에게 주었다
얼마나 먹고 싶고 먹이고 싶었던 사과였던가 향기롭던 사과 냄새와 맛을 그 날 비로소 맛보았다
옛날 옛날이야기이다
일곱 살 때쯤
친구와 천자문을 같이 배웠다 친구보다 빨리 떼고 먹으로 천자문 한 권을 썼다 훈장님이 정말 잘 썼다고 책으로 매서 어머니께 갖다 주었을 때 좋아하며 기뻐하던 모습
칠십이 된 지금도 아니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잊을 수 없으리라 그 때 그 모습
어머니의 첫 눈물 1944년 4월 1일
옛날엔 중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요즘 대학 가기보다 더 어려웠다 한 郡에서 한명 정도였으니 시골에서 중학에 가면 마을의 자랑이었다
두 반이었던 졸업생 중에 수석이었으니 진학하는데 성적은 문제없었지만 가난하여 중학에 갈 엄두도 못 내던 그 때 어머니는 내 공부를 위해 한약방을 하는 분에게 우리를 맡겼기에 쉽게 중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교복을 입은 나를 껴안고 어머니는 내 어깨를 적셨고 어머니 버선은 내 눈물로 젖었다
수풍발전소 건설
조선이 일본의 강점 수년후인 1924년경 새계 각국의 수력발전 개발에 크게 공헌하던 토목기술자 구보다 도요미(久保田豊)가 조선을 여행하면서 지도를 대량 가지고 건너가 地圖를 살피다가 조선에 일대 전원(電源) 개발 구상이 떠올랐다. 또한 사람 돋도(讀圖)의 명인이라고 불리던 독도(讀圖) 광인인 선배 모리다 가즈오가(森田一雄)가 지도를 빌려간지 두 달후 구보다를 찾아와 조선 반도 북부와 만주와의 국경사이에 압록강이 흐르는데 그 지류인 장진강 부전강을 막아 땜을 만들어 물을 반대 측인 일본해(동해)로 흐르게 하는 계획*을 생각했는데 해볼 의향 있는 가? 하고 제의했다. 욕심 많은 토목 기술자 구보다의 찬성 하에 1926년 먼저 부전강에 땜을 건설 발전하고 그 전력을 소모하기 위해 흥남에 질소화학 비료공장을 세우기로 하여 1929년 완공하고 공사는 장진강 허천강으로 확대 완성되었다.
이러한 작은 지류의 공사에 불만인 구보다는 압록강 본류를 막아 십만 킬로 왓트 발전기 일곱 대 총 70만 킬로 왓트의 발전소를 건설하게 되었으며 1941년 완공케 되었다 . 이 발전소는 당시 세계 최대의 땜과 발전량을 자랑했다.
미국의 TVA(테네시 강 개발계획)에 버금가는 공사였다. ( 森田一雄 著 “나의 이력서”에서 인용) 발전소 건설로 수풍에는 많은 부대시설이 진행되었으며 인구도 늘었고 서당 밖에 없었던 수풍에 일본인 초등학교 외에 조선인 초등학교도 세워저서 활발한 도시가 되었다. * 부전강 장진강은 압록강의 지류가 아닌데 “용기와 우정의 이야기” 중 “독도광(讀圖狂)이 실현 시킨 조선의 거대 땜" 에서는 이렇게 저술 되어 있다.
사기 당한 코트 1939년 12월
앞서 말 한대로 수풍은 발전소 공사로 여러모로 발전된 마을이었다
공사로 기술자 노동자 그리고 그 가족 등 인구가 부쩍 늘어 구멍가게나 상점이 줄어들고 백화점이 생겼다
어떤 날 백화점 앞을 지나가는데 한 젊은이가 오렌지를 사 놓았는데 담을 그릇이 없으니 내 코트를 좀 빌리자고 한다 오렌지! 일본 군인을 위문 가서 먹어본 그 오렌지! 얼른 벗어주면서도 의심이 났던지 그의 옷에 붙은 명찰을 봤다 ‘질소공장 ####’라고 되어있었다 수풍에서 이십 리쯤 하류에 청수라는 곳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질소공장을 비롯하여 많은 공장이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청년이 나오질 않는다 오렌지 파는 곳에 들어가 물어보았더니 그런 사람은 오렌지를 사간 일이 없단다
그때서야 속았구나 하는 생각에 꽤 먼 거리에 있는 경찰지서까지 단숨에 달려가서 사연을 말했더니 어린놈이 장하다며 기다리란다 해가 저물어가는 것도 모르고 기다렸더니 그런 사람이 있다며 지나가는 트럭에 부탁하여 청수지서에 데려다 주라는 것이었다
지서에서는 내가 도착하자마자 서원 한 명을 대동시켜 공장으로 갔고 그의 숙소와 그 근처를 수소문하여 그를 찾았으나 코트는 이미 도박으로 다른 사람의 소유로 되어 있었다
거기 있던 모두는 연행되었고 코트는 내게 돌아왔다 그 때야 외아들 기다리고 있을 엄마 생각이 났다 서원에게 졸라서 집에 연락해 달라 하고 지나가던 차로 수풍까지 돌아오게 되었다
여덟 살 때의 나의 모험담이나 어리석기도 하고 영리하기도 했던 추억 한 토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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