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복, 「춘색만원」, 간송미술관
그림 앞의 나무에 봉오리가 져 있는 것으로 봐서 봄날이다. 부채를 손에 든 남자와 봄나물을 캐서 바구니에 담아가는 아낙의 모습이 보인다. 남자는 낮술을 한잔 걸쳤는지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다. 남자가 아낙에게 다가가 “거기 뭐 있소?” 하며 바구니를 슬쩍 당긴다.
“쉽게 말해 성희롱하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여성의 표정이 가히 싫지 않은 표정입니다. 배시시 웃고 있어요.
그리고 혜원의 그림에는 남녀의 성적인 부분을 은근하게 비유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 그림에서는 바구니와 지붕에 불룩하게 솟은 기와가 그렇군요. 그렇게 보니, 남자가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는 행위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가 됩니다. 그러면 혜원은 이러한 남자의 추태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혜원의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림과 함께 제발(題跋 : 그림과 함께 쓰인 시나 글귀)을 함께 봐야 한다. 「춘색만원」의 제발은 다음과 같다.
봄빛 뜨락에 가득 차니 春色滿園中(춘색만원중)
꽃은 흐드러지게 붉게 피었구나 花開爛漫紅(화개란만홍)
“봄날의 꽃처럼 남녀의 춘정도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뜻입니다.
남자의 성희롱을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계절의 순환처럼 청춘 남녀의 춘희는 당연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셈입니다.”
신윤복, 「소년전홍」, 간송미술관
이 그림에서 남자의 행위는 좀 더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남자가 여자의 손목을 확 잡아끌고 있다. 남자의 사방관 속에 상투가 있는 걸로 봐서, 남자는 결혼을 했다. 그리고 여자는 형색으로 보아 몸종인 듯싶다. 당시에는 가슴이 살짝 보이는 짧은 저고리가 유행이었다.
“저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남자가 봄날의 갈급한 색정을 주체 못하고 마당을 지나가는 몸종의 손목을 잡아끌고 있군요. 아무래도 남자의 아내가 집을 비운 상황 같아요. 그런데 몸종은 엉덩이를 쭉 빼고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머리를 긁적긁적하면서 ‘서방님, 마님이 돌아오실 시간이 된 거 같은데요’하는 표정으로 응대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제목은 소년전홍(少年剪紅)이다.
젊은이가 붉은 꽃을 꺾는다는 뜻이다. 혜원은 이 몰지각한 유부남을 손가락질하며 나무라기라도 하는 것일까. 혜원의 생각은 역시나 그가 적어놓은 제발 속에 숨어있다.
빽빽한 잎에 짙은 초록이 쌓여가니 密葉濃堆綠(밀엽농퇴록)
가지가지 붉은 꽃잎 떨어뜨리네 繁枝碎剪紅(번지쇄전홍)
“초록은 청춘의 엽록소를 뜻합니다. 녹음이 짙어지면 꽃도 자연히 떨어지게 되어있죠. 욕정을 자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자연의 순리라는 거예요. 혜원은 이번에도 남자의 욕정을 옹호하고
있군요. 그럼 다음 그림은 어떨까요.”
신윤복, 「삼추가연」, 간송미술관
이번 그림은 다소 수위가 높다. 무엇을 그려놓은 그림일까. 이 그림은 조선 화단에 유일하게 남은 초야권을 사는 장면이다. 초야권이란 첫날밤의 권한을 뜻한다.
중세 서양에서는 봉건영주가 자신이 다스리는 마을 처녀들의 초야권을 가지고 있었다. 처녀들이 시집을 가기 위해서는 영주와 먼저 첫날밤을 치러야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는 공공연히 기생들의 초야권이 매매가 되었다.
단, 초야권을 살 때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를 보장해줘야 한다. 우선 상단기간 동안 먹을 음식을 제공해주어야 하고, 또 그
기간만큼 입을 옷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원앙금침 한 채를 해줘야 한다. 초야권을 사는 풍속에 관한 내용은 당대의 기록에 남아있다.
“그림 속의 남자는 옷을 입고 있나요? 벗고 있나요? 입고 있다고 봐야합니다. 왜냐하면, 남자의 상투를 한번 보세요. 머리카락이 다 삐져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보세요. 아직 속옷을 다 추스르지 못했습니다.
이미 저 들판에서 일을 다 치른 거예요. 저 어린 기생은 황망하기 짝이 없는 상태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반해, 남자는 야심을 채운 눈빛과 낯빛입니다.”
그리고 남녀의 사이에 늙은 할미가 보인다. 깡마르고 간교해 보이는 할미는 남자에게 큰일 치렀다고 술잔을 권하면서, 어린 기생을 달래고 있다.
이 할미는 어린 기생에게 “이제 네 팔자는 핀 거다. 이 서방님이 너한테 뭐도 해주고 뭐도 해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할미가 바로 매춘을 중개하는 뚜쟁이다. 이 할미는 오늘 일로 두둑이 자신의 중개료를 챙길 것이다. 신윤복은 이 그림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어놓았다.
국화꽃 쌓인 집은 도연명이 사는가 秋叢繞舍似陶家
빙 두른 울타리에 해가 기우네 遍繞籬邊日漸斜
꽃 중에 국화를 편애해서가 아니라 不是花中偏愛菊
이 꽃 지면 다른 꽃이 없다네 此花開盡更無花
“혜원은 참 뻔뻔스러운 장면을 그려놨습니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혜원이 두 구절이 저 서방의 그림에 써놓은 시입니다. 저 시는 당나라 원진의 시를 따온 것입니다. 마지막 시커먼 뱃속과 겹칩니다.
그림입니까. 혜원은 남녀의 춘정을 그릴 때도 풍자와 해학 면에서 조‘내가 이 여자를 사랑한다기보다는 이 여자가 아니면 다른 여자가 나타나지 않을 거 같아’라는 뜻이에요. 이 얼마나 뻔뻔하고 의뭉스러운 선 화단을 통틀어 최고였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보실 두 개의 그림은 여러분도 잘 아시는 그림입니다.”
‘미인도’에 숨겨진 여인의 비밀
「미인도」는 신윤복의 대표작이라 불리는 그림이다.
「미인도」는 신윤복의 다른 대표작과 함께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있다. 간송미술관에서 전시회가 열리면 미인도를 보기 위한 인파들로 성북동 일대의 교통이 마비될 정도다. 그렇게 미인도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유명한 그림이지만, 정작 미인도의 숨은 비밀을 아는 이는 드물다.
신윤복, 「미인도」, 간송미술관
미인도에는 두 가지의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이전까지 누구도
미스터리를 풀이하지 않았고, 또 궁금해하는 사람도 별로 없더군요.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과 함께 그 의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이 여성은 옷을 입고 있나요? 벗고 있나요? 비밀은 그림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잘 안 보이신다면, 좀 더 확대해서 보겠습니다.”
여성의 모습을 면밀히 살펴보자. 트레머리(뒤통수에 얹은머리)를 하고 삼회장저고리를 입고 있다. 그리고 저고리 고름에 노리개가 달려있다. 삼작노리개다. 그런데 고름이 풀어진 채로 밑을 향하고 있다. 옷을 벗고 있거나, 입고 있는 순간이라는 뜻이다. 그런 여인의 표정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지금 이 여성은 옷을 벗고 있습니다. 그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이 노리개를 잡고 있는 손이에요. 옷을 입을 때는 노리개를 끼워서 고름을 하겠지요.
하지만 옷을 벗을 때는 손으로 노리개를 잡지 않으면 고름을 푸는 순간 노리개가 떨어져 버립니다. 그리고 「미인도」에 그려진 손은 노리개를 끼우고 있는 손이 아니라, 떨어지지 않게 쥐고 있는 손입니다. 그러니까 저 순간은 옷을 벗기 위해 옷고름을 푸는 순간이 맞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미인도를 그린다면, 당연히 옷을 벗고 있는 것을 그리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죠.”
속가로 떠돌아다니기를 좋아한 혜원의 특성과 그가 그린 다른 그림의 유형을 볼 때, 그림 속의 여성은 반가의 규수라기보다는 혜원이 마음에 품었던 기생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고 여기서 드는 두 번째 의문.
저 여성이 지금 옷을 벗고 있다면, 저 여성의 앞에는 남자가 있을까? 없을까? 여성의 표정만으로는 알기가 매우 어렵다. 왜냐하면, 꿈꾸는 듯한 표정이기 때문이다. 수줍어하거나, 요염하거나, 유혹하는 표정이 아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표를 던지겠는가. 남자가 있다? 없다?
“저는 명백히 아무도 없었다는 쪽에 표를 던지겠습니다. 다들 의아하게 생각하시겠지요. 혜원이 그렸고 저 여성이 기생이라면, 당연히 여성의 앞에 그림을 그린 혜원이 있거나, 남자의 수청을 들기 위해 옷고름을 푼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림의 정서에도 맞고 타당한 생각일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그 생각을 뒤집는 이유는 그림과 함께 적어놓은 혜원의 제발 때문입니다.”
가슴속에 서린 만 가지 춘정 盤迫胸中萬化春(반박흉중만화춘)
붓끝이 능히 그려 내었네 筆端能與物傳神(필단능여만전신)
제발의 뜻을 풀어도 비밀을 알기는 어렵다. 다만 혜원이 자신의 그림실력을 뽐내기 위한 ‘자화자찬’의 내용이라는 것 정도는 알겠다. 손철주 작가는 제발의 어느 부분을 보고 여인의 앞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걸까.
“비밀은 ‘반박’이라는 말 속에 숨어있습니다. 이 시에서는 ‘반박’이 뒤의 말과 연결되어서 ‘서렸다’, ‘가득하다’란 뜻으로 쓰였지만, ‘반박’이라는 말은 본래 장자의 고사인 ‘해의반박’에서 유래되었어요.
‘해의반박’이란 ‘옷을 벗고 다리를 쭉 뻗은 형상’을 말합니다. 예술가의 자유분방한 모습을 표현할 때 쓰는 고사죠. 그러므로 반박이라는 말에는 ‘옷을 벗는다’는 숨은 의미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청나라 화가 운격은 해의반박을 ‘방약무인(傍若無人)’이라고 해석했다. 이 말은 오늘날 언행이 방자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뜻할 때 쓰인다. 그리고 한자 그대로의 뜻을 옮기면
‘마치 곁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저는 혜원이 ‘해의반박’이라는 고사를 알고 이 단어를 썼다고 유추하는 겁니다. 그러면 이 여성이 옷을 벗을 때 앞에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죠.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혜원이 여성의 성적 주체성을 자각한 최초의 화가였다는 뜻이 아닐까요. 말하자면 이 여성은 남자에 의탁하는 춘정이 아닌, 자신의 춘정에 겨워서 스스로 옷고름을 풀고 있는 것입니다.
남성의 관음적인 시선을 만족시키는 수동적인 육체에서 해방된
것이죠. 물론 이건 제 개인적인 해석이고 주장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그렇게 그림을 좀 더 내밀하게 보도록 해보세요. 그러면 새로운 의미들이 생겨납니다.”
‘월하정인’에 숨겨진 진실
‘달빛 아래 정든 연인’이라는 뜻의 「월하정인」 역시 혜원의 유명한 그림이다. 기와집의 담벼락에 등불을 들고 있는 남자와 쓰개치마를 쓴 여성이 있다. 여성은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 쉽게 말해 달밤에 데이트하는 장면이다. 이 그림에는 다음과 같은 제발이 적혀있다.
달은 기울어 삼경인데 月下沈 夜三更(월하침 야삼경)
두 사람의 마음이야 그들만이 알겠지 兩人心事 兩人知
신윤복, 「월하정인」, 간송미술관
“이 그림 안에도 미스터리가 있습니다. 제발에는 야삼경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삼경은 밤 11시에서 새벽 1시에요. 그런데 달을 보세요. 초승달이 떠있군요. 초승달은 언제 뜨나요?
초승달은 해가 뜰 무렵에 떠서 해질 무렵에 져버려요. 그래서 우리가 초승달을 볼 수 있는 때는 초저녁 정도입니다. 물론 계절에 따라서 해가 지고도 한동안 떠있기도 하지만, 밤 11시 이후로는 초승달을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월하정인에 나오는 초승달의 정체가 오랫동안 의문이었다. 그러다 한 천문학자가 이 초승달의 정체를 부분월식을 그린 것이라 발표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방송과 언론에 대서특필 되
었다. ‘천문학자에 의해 「월하정인」에 그려진 달의 정체가 드
디어 밝혀졌다!’라는 내용으로.
“그런데 「월하정인」이 부분월식을 그려놓은 것이라면, 데이트한 타이밍도 참 기가 막힐뿐더러, 그림에서 달 아랫부분을 달무리가 아니라 새까맣게 그렸어야 하지 않을까요? 월식은 셀로판지 없이도 우리 눈으로 관찰할 수 있죠. 월식을 보신 분들은 아실 거예요.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질 때 가려지는 부분이 검게 나타나죠. 저는 이게 지나친 과학자의 주장과 성급한 언론의 판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실은 역시나 혜원이 적어놓은 제발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혜원이 그림에 적어놓은 제발은 혜원이 직접 창작한 시가 아닙니다. 원문이 따로 있어요. 원문은 바로 이런 시입니다.”
깊은 밤중 창밖에서 이슬비가 내릴 때 窓外三更細雨時
두 사람의 마음은 둘만이 안다 兩人心事兩人知
깊은 정 아직 모자란데 하늘이 밝아오려 하매 歡情未洽天將曉
다시 적삼을 부여잡고 훗날의 기약을 묻노라 更把羅衫問後期
이 시는 선조 때 좌의정을 지낸 김명원이 지은 시이다. 쉽게 말하자면, 이 시는 당대 최고의 유행가였다. 그리고 당대에는 노랫말 바꾸기 역시 유행이었다. 글을 아는 사람치고 이 시를 외우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였고,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가사를 바꿔 부르기도 했다. 혜원은 이 유명한 시의 앞 두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하지만 의뭉스러운 혜원에게는 자신이 인용한 앞의 두 구절이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혜원은 마지막 두 구절을 그림으로 그린 것입니다. 이미 이 남녀는 이슬비 내리는 깊은 밤에 담 너머의 기와집에서 뜨거운 정을 나눈 겁니다. 밤새 정을 나눴지만, 여전히 갈망이 다 채워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새벽이 밝아 초승달이 떠오며 하늘이 벌게지려 하고 있습니다.” 즉, 월하정인은 상봉의 장면이 아닌 이별의 장면이다. 남자의 발길이 어디를 향해있는지 보라. 날이 밝아 헤어져야 하는데, 여자를 두고 발길을 돌리려니 가슴이 아려온다. 그런 남자는 한 손을 안주머니에 찔러 넣어 무엇인가를 찾고 있다. 정표라도 꺼내주려 하는 걸까. 그리고 쓰개치마를 쓴 여성은 헤어짐이 섭섭한 듯 다소곳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처럼 동양화는 제발의 뜻을 이해하면 더욱 깊고 풍부한 감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제발의 뜻을 모른다 하더라도, 사랑하는 연인을 보듯 그림을 면밀히 살펴보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만으로도 그림과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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