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이색의 영설(삼도헌의 한시산책190)

含閒 2012. 1. 1. 23:59

이색의 영설(삼도헌의 한시산책190)

 

 

 

 

  

       

 

 

 

영설(詠雪)

 

 

이 색

 

 

       松山蒼翠暮雲黃(송산창취모운황)-송악산 푸르름에 저녁 구름 물들더니

       飛雪初來已夕陽(비설초래이석양)-눈발 흩날리자 이미 해는 저물었네.

       入夜不知晴了未(입야불지청료미)-밤들면 혹시나 이 눈이 그칠려나

       曉來銀海冷搖光(효래은해랭요광)-새벽엔 은 바다에 눈 빛이 차갑겠지.

 

 

 

 

   삼도헌과 함께 맛보기

 

    어김없이 흘러가는 세월이지만 해가 바뀌는 시점이면 아쉬움과 회한이 남는다.

    신묘년이 저물고  임진년이 오는 세모의 문턱에서 못다 이룬 꿈, 지키지 못한 약속,

    완성하지 못한 작품들......

    되돌아보면, 새해 첫 날부터 마음먹었던 일들을 과거완료형으로 남기지 못하고

    여전히 현재진형형으로 잇게 되었다. 이것이 인생이런가.

     은색으로 대지를 덮어버린 눈을 보면서 목은 이색은 밤새 눈이 내려 새벽이 되면

    세상이 은세계로 바뀌어 있을 것이라고 노래한다.

    김광균 시인은 설야(雪夜)’라는 시에서 눈 내리는 소리를 "먼 곳의 여인의 옷 벗는 소리"

    묘사하면서 우리의 머릿속에 눈내리는 풍경을 심어놓았다.

    눈은 소나기내리는 소리처럼 투박하지도 않고 조용히 내리지만 밤새 내리면 온 세상을

    은세상으로 바뀌어 놓는 순백의 물질이다.

    특히 세모에 내리는 눈은 바라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한 해를 보내면서 쓸쓸함과 그리움이 깊어지는 계절에 눈이 주는 서정성이 더해지면

    아쉬움은 깊어진다.

    세월은 어차피 운명처럼 보내고 맞이해야 한다.

    기실 세월이라는 것이 본질이 없기 때문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없는 것이며,

    그 흐름 자체도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이 금년과 내년이란

    시간성을 규정해 놓고 그 무상함에 아쉬워하면서도 그 흐름 속에 휩쓸려갈 뿐이다.

    다사다난했던 신묘년을 보내고 희망찬 임진년을 맞이하시길 바란다.

    지난 한 해 동안 서예세상과 삼도헌의 한시산책을 아껴주신 존경하는 서우님들께

    감사인사를 드린다.

 

 

 

   이색(李穡) 1328(충숙왕 15)~1396(태조 5)

 

    고려말의 문신·학자.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영숙(潁叔), 호는 목은(牧隱).

    아버지는 찬성사 곡()이다. 15세에 부음(父陰)으로 별장(別將)의 직을 얻고,

    1341(충혜왕 복위 2) 진사가 되었다. 1348(충목왕 4) 아버지가 원에서

    중서사전부(中瑞司典簿)가 되자 조관(朝官)의 아들로 원나라 국자감의 생원이 되었다.

    이색은 이제현(李齊賢)을 좌주(座主)로 하여 주자성리학을 익혔고,

    이 시기 원의 국립학교인 국자감에서 수학하여 주자성리학의 요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1352(공민왕 1) 아버지가 죽자 귀국해 토지문제·왜구대책·학교교육론·이단배척 등의

    상소를 올렸다. 1353년 고려의 과거에 합격했으며, 이듬해 정동행성(征東行省) 향시(鄕試)

    1등으로 합격하고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원에 가 회시(會試전시(殿試)에 합격하여

    응봉한림문자 승사랑 동지제고(應奉翰林文字承事郞同知制誥)

    국사원편수관(國史院編修官)을 지냈다. 이어 고려에 돌아와 전리정랑(典理正郞

    내서사인(內書舍人)을 지냈다. 1355년 공민왕의 개혁정치가 본격화되자 왕의 측근세력으로

    활약하면서 시정8時政八事를 올렸는데 그중 하나가 정방(政房)의 혁파였다.

    이 일로 이부시랑 겸 병부시랑에 임명되어 문무(文武)의 전선(銓選)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색은 원나라에서의 유학과 이제현을 통하여 이 시기 선진적인 외래사상인 주자 성리학을

    수용했고, 이를 바탕으로 고려 말기의 사회혼란에 대처하면서 정치사상을 전개했다.

    그는 원의 주자학을 받아들였으므로 그 영향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

    태극(太極)과 같은 주자학의 핵심개념을 사용하여 만물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했고,

    주자학의 수양론인 성학론(聖學論)을 전개했다.

    그러나 주자학에서 말하는 수양론과 달리 죽음과 인간적 고뇌와 같은 초인간적·

    종교적 문제는 여전히 불교에 의존했다. 또한 송대의 혈연·의리·도덕·윤리 등을 말하는

    도통론(道通論)을 전개한 것이 아니고 원의 형세론적 도통론을 전개했다.

    즉 그의 주자성리학의 발원지인 원의 영향과 불교의 영향 속에서 송대의 주자학과 구분되는

    정치사상을 전개했다. 저서로 목은유고·목은시고등이 있다.

    장단 임강서원(臨江書院), 청주 신항서원(莘巷書院), 한산 문헌서원(文獻書院),

    영해 단산서원(丹山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