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퇴임한 윤시균 검찰 부이사관
5공 비리·나라종금 로비… 굵직한 사건의 핵심 수사관
자백 잘 받아내기로 유명해 내로라하는 검사들이 아껴
"비록 몸은 떠나지만 마음만은 영원히 검찰의 한 사람으로 살겠습니다."29일 오전 11시 서울중앙지검 대회의실. 윤시균(59) 증거물과장이 퇴임사를 마쳤다. 한상대 서울중앙지검장 등 그를 지켜보던 참석자들은 긴 박수를 보냈다. 그의 마지막을 배웅나온 동료·후배들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날 명예퇴임한 윤 과장은 1978년부터 검찰에서 근무한 33년 가운데 대부분인 26년을 특별수사만 맡아왔다. '검찰 대형 수사의 산 역사'나 다름없다. 대검이 서소문에 있던 1980년대의 이른바 '5공 비리'를 비롯, 서초동으로 옮긴 1995년 이후에도 중수부 핵심 수사관으로 한보 비리, 현대 비자금, 나라종금 로비, 대선자금 불법모금 등 굵직한 수사에 참여했다. 검찰에선 '자백을 가장 잘 받아내는 수사관'으로 통한다.
"수사의 핵심은 피의자와의 기(氣)싸움 아닌가 생각해요. 기싸움을 통해 피의자가 '아, 이번에는 정말 못 빠져나가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게 중요하거든요."
2002년 기업들로부터 청탁과 함께 수십억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씨를 조사할 때 이야기다. 홍업씨는 '월드컵 개막 즈음에 조사받고 싶다'고 전해왔다. 하지만 그는 국민들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한 전략이라고 판단해 바로 거절했다. 2003년 나라종금 퇴출 저지 로비의 핵심인 안상태 전 사장 수사 때는 주치의까지 소환해 조사했고, '건강상 이유'로 구속집행이 정지됐던 안 사장을 다시 구속했다. 수사가 한창일 때는 화장실에서 속옷과 양말을 빨고, 조사실에서 일주일씩 밤을 새울 정도로 집요했다.
워낙 열심인 데다 성과도 좋다 보니 최경원 전 법무부장관, 정상명 전 검찰총장, 안대희 대법관, 김진태 대구지검장, 남기춘 전 검사장, 최재경 사법연수원 부원장 등 내로라하는 검사들이 그를 아꼈다. 이귀남 법무부장관, 이명재 전 검찰총장, 임채진 전 검찰총장, 이종찬 전 서울고검장 등과도 그들의 평검사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왔다. "오랜 시간 함께 일하며 믿어준 그분들 덕에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거죠. 나는 참 인복(人福)이 많은 사람입니다. 정든 검찰을 떠나는 아쉬움이 크죠. 하지만 이제 후배 수사관들이 멋지게 잘 해내 '국민에게 사랑받는 검찰'을 만들 겁니다."
33년 전 해진 점퍼를 걸치고 피의자를 잡으려고 도시 구석구석을 누비던 20대 열혈 수사관은 어느새 환갑을 앞두었고 머리도 희끗희끗해졌다. 그는 다음 달부터는 인천지법 집행관으로 또 다른 무대에 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