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

영혼결혼식을 올려준 고 정다빈 어머니의 마지막 선물

含閒 2011. 6. 28. 20:46

 

영혼결혼식을 올려준 고 정다빈 어머니의 마지막 선물

“하늘나라에서 행복한 아내가 되거라”
여성조선|
입력 2011.06.28 16:41
 
 
정다빈의 어머니인 이재분 씨가 딸의 유해가 안치된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 추모관을 찾았다. 그의 곁에는 딸의 남편이 된 문재성 씨의 형수도 함께였다. 같은 사찰을 다니며 자매처럼 지내던 두 사람은 지난 5월 22일 딸과 시동생의 영혼결혼식을 올렸다. 이 씨는 한 해라도 더 딸을 곁에 두고 싶었지만 납골당에 혼자 덩그러니 있다는 생각하니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딸에게 좋은 짝을 맺어줬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녀의 표정은 뜻밖에 밝았다. 지난 2년 동안 가끔 안부전화를 주고받았던 이 씨는 그때마다 낮고 우울한 목소리였다. 심지어 지난 3월에는 새벽 4시쯤 전화를 걸어 말없이 울기만 했었다. 딸이 세상을 떠난 뒤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는 이 씨에게 시간은 무의미했다. 낮과 밤, 그리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사라진 듯 했다."어제 처음으로 딸이 꿈속에 나타났어요. 산에서 뜯어온 고사리가 있었는데 그걸 다 가져간다고 하더라고요. 드라마 옥탑방고양이를 찍을 당시 23살의 모습이었어요.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요. 단발머리에 피부도 어찌나 고운지…. 그냥 보내기가 아쉬워서 할 말 있으면 해보라고 했더니 아무 말 없이 고사리만 가져갔어요."이 씨는 4년 만에 꿈속에 나타난 딸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결혼식을 올린 딸이 자신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러 온 듯 했다. 이 씨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제 방에 딸과 사위를 합성한 사진이 있어요. 예전에는 방에 들어가면 썰렁한 느낌이 들었는데, 지금은 딸과 사위와 함께 있는 것 같아 안정감이 생겨요. 외출할 때 '집 잘 보고 있어'라고 인사를 하고, 다녀오면 '잘 다녀왔어. 사이좋게 있었지?'라고 인사를 건네요. 믿기지 않겠지만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어요."예전에는 밤이 되면 '딸이 얼마나 외로울까'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 시간에 나란히 함께 자겠지'라며 흐뭇해한다고. 이 씨는 사위가 건실하고 성품도 좋아 '1등 신랑감'이라 불렸다며 자랑했다. 그런 사위와 모난 곳 없이 성격 좋은 딸이 천생연분이라는 확신이 든다고 했다."사돈댁에서 영혼결혼식을 올리는 날, 다빈이 몫으로 화려한 핀과 액세서리, 목걸이 등을 사서 줬어요. 영혼결혼식도 일반결혼식처럼 예물을 교환하거든요. 아마 지금쯤 다빈이 머리와 목에는 어여쁜 액세서리가 반짝일 겁니다. 얼마나 예쁠까요?"이 씨는 한동안 잃었던 건강을 회복 중이다. 예전에는 사나흘 동안 한숨도 잠을 이루지 못한 날도 많았다. 발을 땅에 디뎌도 허공에 떠 있는 것만 같았다. 몸은 이승에 살고 있지만 머리는 딸이 있는 곳에 머물렀다."단 하루도 딸을 잊어본 적이 없어요. 집하고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추모관을 찾아왔어요. 근처로 이사를 올까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말리더라고요. 그리고 다빈이 남동생도 있어 이사가 쉽지 않았어요."그녀는 딸이 가장 생각날 때는 음식을 먹을 때라고 했다. 세상에서 엄마가 만든 음식이 가장 맛있다고 말하곤 했던 딸이 가장 좋아한 음식은 닭볶음탕과 간장게장이었다. 그녀는 딸이 게딱지에 밥을 야무지게 비벼 먹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지금은 미각을 모두 잃었다."지금도 딸이 대문을 열고 '엄마'하고 부르며 들어올 것만 같아요. 또 다빈이 또래 아가씨들이 지나가면 달려가서 부둥켜안고 싶어요. 사람들은 세월이 흘러가면 잊을 수 있을 거라고 하는데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에요."딸은 엄마를 무척이나 따랐다. 엄마가 집을 비우는 날을 가장 싫어했다. 그리고 항상 "효도를 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녀는 심성 고운 딸 덕분에 해외여행도 많이 다녔다. 그러나 지금은 딸과 함께 보냈던 꿈같은 세월이 서럽기만 하다."아이가 세상을 등지던 날 밤 눈이 많이 왔어요. 집에 키우던 강아지 세 마리가 갑자기 현관문을 긁으면서 이유 없이 울더라고요. 저도 배가 아파서 한동안 뒤척이다가 새벽 3시쯤 깜박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강남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어요. 딸아이가 변을 당했다고요. 너무 놀라서 TV를 켜보니 사실이었어요."이 씨는 아직도 딸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가수 유니배우 이은주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럴 힘이 있으면 살아야지 왜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던 딸이었다.



1등 사위를 얻었어요


아직도 믿을 수 없는 딸의 죽음

"아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 전화를 했어요. 강아지가 세 살짜리 아이를 물어서 안락사를 시킨다는 뉴스를 봤다면서 집에서 키우고 있는 강아지를 잘 보살피라고 당부했어요. 집에 언제 오냐고 물어보니까 눈이 많이 와서 못갈 것 같다고 했고요. 당장 내일 세상을 떠날 결심을 한 아이가 집에 키우는 강아지 걱정을 했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그녀는 딸을 잃고 집에 있는 딸의 짐들을 모두 정리했다. 출연했던 작품들을 모아놓은 동영상도 지인들이 가지고 갔다. 매일처럼 목 놓아 우는 그녀를 걱정해서였다. 그러나 그녀는 이제 기운을 내려고 한다."1~2년 동안 눈물로 세월을 살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아들이 '누나만 자식이냐'고 따지는데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그때 다시는 아들 앞에서 울면 안 되겠다. 자중해야겠다고 생각했죠."정다빈은 남동생을 '아들'이라고 부를 정도로 끔찍이 사랑했다. 그런 누나를 잃은 동생의 슬픔도 오죽했으랴? 그러나 철이 든 아들은 어머니 앞에서 슬픔을 내색하지 않았다. '누나 몫까지 잘하겠다'는 든든한 위로의 말만 건넸다. 얼마 전 최진실 남매가 나란히 세상을 떠난 것도 큰 충격이었다. 잇따른 남매의 비극적인 죽음은 더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또 딸이 가장 좋아하고 의지했던 최진실 남매였기 때문이다."그런 비극이 두 번 다신 없었으면 좋겠어요. 저도 딸을 앞세우긴 했지만, 남매를 모두 잃은 어머니의 심정은 상상조차 할 수 없거든요. 그래서 아들과 기운을 차리기로 약속했어요. 밥도 열심히 먹고 일도 하러 다닙니다. 그래야 다빈이한테 음료수라도 사줄 수 있잖아요."그동안 떠올리기가 두려웠던 딸의 전 남자친구의 앞날을 축복해줄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한 번도 얼굴을 마주한 적은 없지만, 어린 나이에 엄청난 일을 겪었을 그를 생각하면 가슴이 서늘해진다."그 아이도 연예인 지망생이라는 말을 들었어요. 어차피 간 사람은 간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산 사람이니까 그 아이가 성공했으면 좋겠어요. 참, 이 자리를 빌어서 (이)재황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스케줄 때문에 바쁠 텐데 항상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다빈이를 찾아줘서 정말 고맙다고요. 재황이가 빨리 참한 색시 만나서 결혼했으면 좋겠어요."이 씨는 낮에는 나물을 캐고. 저녁에는 일을 다닌다. 심리적인 안정을 찾은 탓에 꾸준히 복용했던 수면제도 조금씩 줄이고 있다. 세월이 흘러서 딸 앞에서 섰을 때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다."힘들어도 열심히 살 겁니다. 우리 아들과 딸을 위해서요. 나중에 딸이 '엄마 왜 그렇게 살았어?'라고 원망할까봐 기력이 좀 더 회복되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일도 하고 싶어요. '역시 배우 정다빈 엄마답다'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 시동생과 딸의 영혼결혼식을 올린 문재성 씨의 형수(좌)와 고 정다빈의 어머니 이재분씨(우)정다빈 남편 문재성은 누구?

"법없이도 살 수 있는 1등 총각이었어요"
문재성 씨는 1975년에 태어나 2002년에 사망했다. 병명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27살이라는 혈기왕성한 나이에 그를 앗아간 것은 갑작스런 심장 이상이었다. 그는 사랑받는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정다빈의 엄마에게 영혼결혼식을 먼저 제안한 문 씨의 형수는 그를 너무도 아끼고 사랑했다.

"정말 똑똑하고 잘생긴 총각이었어요. 남에게 해되는 소리는 전혀 하지 않았고요. 또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흡인력과 리더십도 탁월했어요. 세상을 떠났을 때도 아무에게 연락하지 않았는데도 70여 명의 친구들이 찾아왔어요."

문 씨의 형수는 인기가 많은 시동생을 자랑스러워했다. 언제나 문 씨가 가는 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 중심에는 문 씨가 있었다.

"몇 해 전 대구 지하철 사고가 났을 때도 몇몇 집안에서 자신의 딸과 영혼결혼식을 올려주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차마 잘 알지도 못하는 집안과 연을 맺는다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모두 거절했더니 이렇게 좋은 날이 왔네요. 저는 정말 두 사람이 천생연분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하늘에서도 다빈이가 배우생활을 하고 있고, 대성이가 매니저를 하고 있을 겁니다."

문 씨의 형수는 어딜 가나 항상 두 사람을 위해 기도를 한다고 했다.

비록 젊음을 못다 피우고 세상을 떠났지만, 저 하늘에서만큼은 두 사람이 못다 이룬 꿈과 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