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의 청년은 웃고 있었다. 검은 안경 너머로 반짝이는 영특한 눈매, 호수처럼 넓어 보이는 검은 눈동자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보고 마음이 편해졌을까. 아버지는 미소 짓는 아들에게 묻고 싶었다. ‘그렇게 힘들었니?’ 14일 오전 10시30분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부산시 기장군 기장읍 연화리 해광사. 대웅전에서는 조모(19)군의 초재(初齋·사람이 죽은 뒤 첫 이레 만에 올리는 재)가 열렸다. 지난 8일 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 KAIST의 꿈나무였던 그 학생이다. 아들을 앞세운 아버지는 끝내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조 ○ ○ 영가시여, 빈손으로 오셨다가 빈손으로 가시거늘 그 무엇을 애착하고 그 무엇을 슬퍼하나.” 스님의 독경과 목탁 소리에 맞춰 조군의 부모와 친구 등 20여 명은 ‘천수경(千手經)’과 ‘영가시여’를 흐느끼며 낭독했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51)는 슬픔을 아꼈다. 떠난 아들이 덜 미안하라고. 절 마당에서 기자와 함께한 그는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이 말만큼은 드리고 싶다”며 입을 열었다.
- 조군의 죽음은 큰 아픔을 남겼습니다.
“경쟁이 너무 치열합니다. 더 나누는 사회가 되면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똑똑한 사람일수록 나눔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KAIST에 국한된 것만이 아니고 대한민국 전체가 그랬던 것 같아요.”
조군은 8일 오후 11시32분쯤 대전시 유성구 KAIST 내 건물 보일러실 앞에 세워져 있던 오토바이 위에 엎드려 숨진 채 발견됐다. 조군의 기숙사 방 안에서는 여러 개의 빈 수면제 통이 발견됐다. 경찰은 조군이 성적 부진 등으로 괴로워하다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조군은 ‘로봇 영재’였다. 2007년 국제로봇올림피아드 한국 대회에서 대상인 과학기술부장관상을 받았다. 2008년에는 국제로봇올림피아드 세계 대회에서 3등에 올랐다. 인문계고를 다니다가 로봇을 공부하겠다며 부산의 전문계고로 전학한 뒤 2009년 8월 KAIST의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입학해 화제가 됐었다. 지난해 초 교육과학기술부가 주는 ‘대한민국 인재상’도 받았다.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들이 학업을 힘들어했나요.
“어려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이의 학업을 도와준 교수도 있었습니다. 힘들어하는 과목도 있었지만 대학원 수업을 듣고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 아이가 내린 선택입니다.”
절 마당에 따사로운 햇살이 비쳤다. 하늘도 조군과의 이별이 아쉬웠나 보다. 아버지는 그 하늘을 쳐다봤다.
“아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KAIST를 목표로 세우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꿈을 이뤘죠.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갔습니다.”
-어떻게 나눌까요.
“중·고교 시절부터 성적 좋은 학생이 성적 나쁜 학생을 가르치는 튜터링 제도를 활성화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폭력과 사교육의 문제도 사라질 것 같습니다.”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큰 멍이 생긴 동료 학생들은 이제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 KAIST 학부총학생회는 13일 오후 7시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열었다. 곽영출(물리학과 4년) 총학생회장은 “징벌적 등록금 제도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정책인데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창의력이 발산되겠느냐”고 말했다. KAIST는 일정한 성적에 미치지 못하면 등록금을 더 내는 제도를 운용 중이다. 대부분의 수업은 영어로 진행한다.
이날 아버지 옆을 지키던 조군의 형(23·미 브라운대 물리학과 재학 중)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형은 숨진 조군의 우상이었다. “좋은 곳에서 동생을 다시 만날 때 제가 부끄럽지 않도록 더 열심히 공부하고 살겠습니다.”
"안녕”이라는 가족의 작별 인사가 해광사 하늘로 울려 퍼졌다.
KAIST 학생자살에 교과부 뒷북대책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입학한 전문계 고교 출신 학생이 1년 만에 학업 어려움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자,
교육과학기술부가 뒤늦은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16일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입학사정관제 지원사업부터 대상 대학을 선정할 때 입학생 사후 관리 프로그램의 운영 현황을 새롭게 반영할 계획이다.
교과부 관계자는 "입학사정관제 지원대상을 선정하는 평가지표에 사후관리 프로그램 운영 여부를 포함시켜 인센티브나 불이익을 주는 방안과 함께 사후관리 프로그램을 아예 선정 대학들의 '의무 집행사항'으로 명시하는 방안 등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교과부는 입학사정관제 정착을 위해 이 제도를 운용하는 주요 대학을 선정해 매년 예산을 지원하며 올해는 총 60개 대학에 351억원을 줄 계획이다. 현재 기존 지원 대학에 대한 현장점검 및 컨설팅을 하고 있는 교과부는 3월까지 연차평가를 거쳐 4월 중 올해 지원 대상을 선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하지만 교과부의 이번 대책이 뒤늦은 감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 대학교수는 "서울대나 KAIST의 경우 영어로 강의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전문계 고교 출신 학생의 경우 수업에 큰 부담을 느낄 수 밖에 없다"면서 "이들 학생에대한 별도 학사관리 시스템을 사전에 마련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rainman@fnnews.com김경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