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작품(書法作品)

빨리빨리 문화

含閒 2010. 7. 30. 09:09

빨리빨리 문화(영남일보 칼럼)


  몇년전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났을 때 언론에서는 빨리빨리 문화가 빚어낸 산물이라고 지적했다. 확실히 우리는 무척 바쁜 라이프 사이클에 휩쌓여 있다. 그 날 할 일을 굳이 그 날에 하지 않아도 그 다음날에 하면 되었고 자신이 못하면 협업을 통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던 농경사회에서는 그렇게 촌각을 다툴만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개인  각자가 처리해야만 되는 고유한 업무가 많아지고 빠른 시간안에 가시적 성과물을 재촉하는 현재의 시대여건은 빨리빨리문화를 만들어낸 동인이 되었다.


  그렇지만 모든일이 이렇게 빨리빨리식으로만 해결이 안된다. 특히 서화예술은 그 어떤 분야보다도 오랜 수련과정과 적공(積功)의 세월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추사 김정희는 조선 말기의 문신이었던 침계 윤정현에게 글씨 한 점을 부탁받고 30년을 고심한 뒤에 비로소 완성을 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추사가 침계에게 써준 '침계(梣溪)'라는 작품에는 30년이 걸린 연유를 다음과 같은 요지로 기록하고 있다. "이 두 글자[梣溪]로써 부탁받고 예서로 쓰고자 하였으나 한나라 비석에 첫글자가 없어서 함부로 지어쓰지 못하고 마음에 두고 잊지 못한지 이미 30년이 되었다. 수나라 당나라 이래로 해서와 예서를 합체하여 쓴 것들이 있어서 그 뜻을 모방하여 이제야 오래 묵혔던 부탁을 갚을 수 있게 되었다"  이와 같이 추사는 침계로부터 아호를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고전에 근거를 둔 작품을 만들기 위해 30년이란 세월 동안 고심하다 비로소 작품을 완성하게된 배경을 작품상에 남겼던 것이다.


  우리는 추사의 예술철학을 통해 느림의 미학을 배워야 할 것이다. 아무리 바빠도 바늘의 허리에 실을 꿰고서는 바느질을 할 수 없듯이 밑에서부터 하나씩 쌓아나가는 문화구조가 되었으면 한다. 어제 모 일간지 논설에서는 모처럼 일기 시작한 축구열풍이 스페인월드컵 이후 두어달만에 식어버린 전례를 닮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었다. 바로 우리의 빨리빨리문화가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정태수(서예가)

 

 

 

 침계(梣溪) <42.8×122.7cm>

 

제발번역

 

이 두 글자(梣溪, 尹定鉉의 號)로써 사람을 통해 부탁받고 예서로 쓰고자 했으나 한비(漢碑)에 첫째 글자가 없어서 감히 함부로 지어 쓰지 못하고 마음 속에 두고 잊지 못한 것이 이제 이미 30년이 되었다. 요사이 자못 북조(北朝) 금석문을 많이 읽는데 모두 해서와 예서의 합체(合體)로 쓰여 있다. 수당(隋唐) 이래의 진사왕(陳思王)이나 맹법사비(孟法師碑)와 같은 여러 비석들은 또한 그것이 더욱 심하다. 그대로 그 뜻을 모방하여 써내었으니 이제야 부탁을 들어 쾌히 오래 묵혔던 뜻을 갚을 수 있게 되었다. 완당이 아울러 쓴다.

 
 

'서예작품(書法作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붓길 역사의 길  (0) 2010.08.27
고린도 전서  (0) 2010.08.13
한국현대문인화대표작가전  (0) 2010.07.13
한국현대문자예술전  (0) 2010.07.12
서예세상 전시회에서(한국현대문자예술전)  (0) 2010.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