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

천안함이여 말하라

含閒 2010. 4. 14. 09:51

천안함이여 말하라


- 인당수에 고(告)함 -                                                   윤 고 방·시인

1

난데없는 꿈속이로구나

인당수 아련한 꿈속이렸더니

물결 사나운 바위섬 아래

웬일이냐 차가운 암흑 속이로구나

꿈이란 원래 아름답고 따스하련마는

눈먼 아비 사랑하는 마음이

한없이 뜨거우련마는

비원(悲願)이 아직 풀리지 않은 탓이더냐

차라리 너의 꽃피우지 못한 처녀 가슴 속

차갑더라도 심청이가 품어 주는

아름다운 꿈속이기를

거친 바람, 차가운 물결에 휩싸인 채

온 세상 바다 억만 근 쇳덩이에 눌려

그대들을 덮고 있는 무량한 어둠의 무게가

수 천만 우리들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는 멀건 대낮이,

가위 눌려 숨 막히는 칠흑 밤중이

벌써 며칠이더냐

당신들과 우리들이 품고 사는

꿈이 다르지 않으니

이리도 차갑고 무거운 악몽 속에

우리가 함께 던져졌구나

당신들이 생전에 지녔던

푸른 꿈은 그 얼마나 눈부셨더냐

창망(滄茫)한 물굽이마다

넘실대던 그대 모습

자랑스런 아빠의 꿈이 얼마나 가슴 벅차고

사랑스런 남편의 꿈이

얼마나 애틋이 그립고

아들의, 형님의, 오빠의

꿈은 또 얼마나 탐스러웠더냐

청이의 어제 눈물과 그대들의 오늘 꿈이 어찌 다르랴

어버이를 향한 꿈과 어버이의

나라를 향한 꿈이 어이 다르랴

2

그리하여 바다여

사나운 바람, 차가운 물결이여

이제 그들을 풀어 주시라

비원의 자물쇠를 풀고 놓아 주시라

당신의 손끝에서 곧 따사로운

봄길 열리듯

그들의 못다한 꿈길 열어 주시라

아직 다 풀지 못한 눈물과 한숨

모두 후련하게 씻어 주시고

아직 다 불태우지 못한 사랑

모두 가득 채워 주시라

자애로운 하늘이시여

바다의 혼백으로 다시 태어날

그대들이여

당신들을 죽음의 깊은 수압에서

건져내지 못한

우리들의 무위무능(無爲無能)을 꾸짖되

차갑고도 너그러운 눈물로 용서하시라

단지 태만한 자 있거든

다만 교활한 자 있거든

물결 뒤에 숨어 웃는 자 있거든

결코 용서하지 마시라

정녕 눈 감지 못한 그대들이여

천만 근 가위꿈에서 이제 깨어나라

지엄한 귀대 명령마저 훌훌 벗고

가벼이 나오라

정든 천안함 밑바닥 좁은 통로를

헤엄쳐 나와

지상의 꿈에서 천상의 꿈으로 이어진

환한 길로,

백옥같이 눈부신 치맛자락 날리며

앞서 갔던 청이의 아름다운 꿈길을 따라

서녘바다 천 년의 연꽃으로 피어나거라

너울너울 장하게 걸어 나오거라

우뚝우뚝 천하지킴이대장군이 되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