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산책(漢詩散步)

풍교야박(楓橋夜泊)

含閒 2010. 3. 9. 09:55

풍교야박(楓橋夜泊)

 

 

1…시 한 수로 유명 시인 반열에 오른 장계

 

 

장계(張繼·?~779년경)가 과거 시험을 두 번이나 낙방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풍교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한산사에서 울리는 새벽 종소리를 듣고 그때의 감회를 적은 시가 바로
풍교야박(楓橋夜泊)이라는 시이다.

 

허다한 시를 써서 그 이름을 드날린 중국의 수도 없이 많은 쟁쟁한 시인들 가운데 장계는 여늬
시인들과 달리 풍교야박이라는 단 한 수의 시로 단숨에 소주에서 가장 유명해진 특이한 시인이다.

 

풍교는 소주 서쪽 교외의 한산사 부근에 있는 돌다리 이름이다. 다리의 가운데는 선박들이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도록 아치형을 하고 있다. 풍교와 같은 다리는 중국 강남이나 소주
시내에 거미줄같이 깔린 대운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리이다. 소주의 운하 위에는 400개가
넘는 다리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유명한 곳이 이 풍교이다. 중국 당나라 시인
인 장계가 지은 풍교야박(
楓橋夜泊)이라는 한시의 배경이 되어 더욱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고소성은 소주의 옛 이름으로 옛 춘추시대에 오나라가 쌓은 성의 이름이고, 소주의 풍교진
(
楓橋鎭)에 있는 한산사는 당나라 시승(詩僧)인 한산자(寒山子)가 살았던 사찰이다. 
이 한산사는 풍교야박에 등장하면서 그 이름이 더 유명해졌다.

 

풍교 소주 한산사는 서로 이 시의 배경이 되어 얽히므로 더욱 유명해졌으나 예외가 있으니
어쨌든 장계의 시가 아니었더라도 소주는 유명할 수 밖에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소주는 도시 자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고, 일찍이 '상유천당(上有天堂)
하유소항(下有蘇杭)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 는 말이 있을 만큼
중국에서 자연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손꼽힌다.

 

소주(쑤저우)는 매우 크고 훌륭한 도시다. 주민들은 우상숭배자이고 지폐를 사용한다.
사람들은 교역과 수공업으로 살아가며, 비단이 대단히 많이 생산돼 옷을 지어 입는다.
도시가 얼마나 큰지 둘레가 40마일에 이르며, 이 도시에는 돌로 만든 다리가 6000개나 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 여행은 1260년에 시작해 1295년에 끝났으니, 이 이야기는 13세기
후반의 일이다.

 

25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역사문화 도시답게 사주지부(絲綢之府, 비단의 도시),
어미지향(
魚米之鄕, 바다가 가까워 살기 좋은 곳), 원림지도(園林之都, 정원의 도시) 라고도
불리는
소주는 마르코 폴로가 얘기했던 대로 예로부터 비단의 집산지여서 지금도 시내 비단
박물관에 가면 시대별로 구분해 놓은 비단과 누에를 기르는 과정을 볼 수 있다.

 

거기에다 더하여 소주의 명성을 유지하는 것은 부자들의 개인 정원들이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천하의 원림은 강남에 있고, 그 중 소주의 정원이 가장 으뜸이다'라는 말과 어울리는
200
여개 정원 중 10군데가 복원되었다

 

 

楓橋夜泊       풍교야박       풍교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月落烏啼霜滿天 월락오제상만천 달 지고 까마귀 울며 서리는 하늘 가득한데

江楓漁火對愁眠 강풍어화대수면 강가 단풍과 고기잡이 불빛이 수심찬 잠자리를 마주하네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 고소성 밖 한산사

夜半鐘聲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 한밤 종소리가 나그네 배에 닿는구나

 

한 시인의 회포가 아스라이 담긴 시 한편이 천 이백여 년의 세월을 넘어 이 다리 위에 전해
지고 있는 이곳에는 편안하게 앉아서 두 눈을 살짝 감은 채 먼 곳을 응시하는 장계 시인의
동상이 있다. 45도 방향을 향해 응시하는 항주의 소동파의 동상처럼 여기 장계의 동상도
정면을 직시하기보다는 이상과 동경을 가득 담은 눈으로 먼 곳을 응시하는 모습이다.

 

장계의 동상 뒤로는 풍교가 보이고 유유히 흘러가는 운하와 나룻배가 보인다. 그리고 명초
(
明初)의 유명한 서법가인 심도(沈度)가 쓴 풍교야박 전문이 벽면에 새겨져 있다.

 

장계는 나름대로 뛰어난 실력을 갖추었다고 자부심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시험에
연이어 두 번째 낙방을 하고 고향으로 가면서 좌절과 암담하고 착잡한 심경으로 깊어가는
쌀쌀한 가을 밤을 잠 못 들어 뒤척이다가 그리 멀지 않은 한산사
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에 의하면 달이 졌고 서리가 내렸으니 아마도 그 종소리는 새벽 3시쯤에 부처님을 모시는
사찰의 첫 예불을 시작하는 종소리였을 것이다. 사위(四圍)가 죽은 듯이 고요한 새벽녘에
하늘에 울려 퍼지는 그 종소리를 들으며 울울(鬱鬱)한 심사를 달랠 길 없던 그에게 시상을
일으켰다.

 

그는 이 시 한편으로 소주(蘇州)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시인이 되었다. 소주는 수려한 자연
경관과 화려한 역사 속에서 많은 시인들을 배출했지만, 고향을 가기 위해 이곳에서 하룻밤
잠을 청한 장계가 결국 소주에서 가장 유명한 시를 남기게 되었다.

 

이 시를 쓴 장계의 정확한 생몰 연도는 알 수 없지만, 그는 당나라 현종(玄宗, 713∼756)
때의 인물이다. 그는 다섯 번 과거를 본 끝에 결국은 진사(進士)가 되어 감찰관과 지방관을
지냈다. 절구(
絶句)에 뛰어난 시인이었던 그의 시는 <풍교야박>에서와 같이 맑고 시원하다.

 

 

2….시간과 공간과 음으로 직조(織造)한 시

 

 

()를 짜고 있는 세 가지 재료를 찾아보기로 하자

 

月落 월락         달은 지고  어두운 밤 

霜滿天 상만천  하늘 가득 서리 내리는 (가을) 

江楓 강풍        강가의 단풍

夜半 야반        한밤중 (새벽 ?)

 

첫 절 달은 지고 까마귀 운다는 표현에서 우리는 어떤 미궁 같은 시간의 한 순간과 만난다.
그 순간이 언제쯤인지 찾아내려 한다는 것은 또한 어쩌면 평생 미로를 헤매는 수고를
각오해야 하는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른다. 시인의 유골은 이미 바람결에 한 줌 먼지로
스러져 버렸을지도 모르고 또 설사 그 한 점 먼지로 화한 시인의 혼백을 만난다 치더라도
이 아름답고 짧은 시가 바탕하고 있는 그 모든 정황들을 알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일이겠는가?    

 

새벽 녘의 모습인가? 달이 지는 시각이라면 상현달 초승달  반달  보름달 기우는 반달
하현달
여러 모양의 달이 있는데 이 시에서 말하는 달은 과연 무슨 달인가?

달이 지고 까마귀가 운다면 제법 동쪽 하늘이 부여진 어떤 시골 산자락의 이른 아침 모습
같기도 하다. 까마귀가 이른 새벽을 알리느라 홰를 치는 장닭처럼 그렇게 우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 그렇지만 시인이 여기서 까마귀가 운다고 한 것은 분명 그 강가에서 까마귀
우는 소리를 들었기에 그 음산한 울음소리를 이 시에 삽입했을 것으로 본다.

 

하늘 가득 서리가 내린다니 이 말은 가을 밤 깊어가는 하늘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면
하얗게 들 판에 서리가 내려 있을 것으로 미리 짐작하는 즉 상상의 아침을 그리고 있는
것인지

비록 야반(夜半) 이라는 말이 한밤중을 뜻하는 말이지만 나는 분위기가 이른 새벽을 암시
하는 것으로 읽혀진다. 

 

 

江楓 강풍 강가의 단풍

漁火 어화 고깃배 불빛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

客船 객선 나룻배 (나그네가 타고 있는 배)

 

둘째 절에서 우리는 어떤 고요한 작은 선창이 있는 쓸쓸한 부두 즉 어떤 장소와 만난다.
거기에서 장명등은 아닐지라도 멀리에서 고기 잡이 하는 어선의 희미한 등불을 바라보며
그 어선의 모습을 졸고 있는 등불과 함께 고깃배도 뱃전을 적시는 잔물결을 자장가 삼아
졸고 있다고 시인은 보았던  것이다. 밤이 이윽하도록 작고 희미한 등불을 켠 고깃배가
떠 있는 광경을 통하여 밤을 뜬 눈으로 새워도 별로 고기잡이가 신통찮은 가난한 어부의
시름겨운 삶을 간접적으로 표현하고있다.

 

중국의 한산사는 우리나라에까지 유명해져서 조선시대의 시인들은 저녁 종소리나 경치
좋은 사찰을 보면 장계의 시구를 연상하는 시를 짓곤 하였다. 조선시대 최수(崔脩)라는
시인은 신륵사의 종소리를 듣고서 "만약 중국의 장계가 일찍이 이곳을 왔더라면 한산이
이름을 날리지 못하였으리"라고 하였다. 

 

 

烏啼 오제  까마귀 울음

鐘聲 종성  종소리

 

셋째 절에서 시인은 갑자기 뚱딴지 같은 고소성의 한산사를 끌고 와서는 지금까지의 
상념을 와르르 무너뜨리고 만다. 그러나 시인은 이제 남의 애기가 아니라 자신에게로
시선을 돌려 그의 가슴을 울리는 상념을 더듬어 보고 싶어서 깊은 밤 한산사 종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두 번에 걸친 과거(科擧) 실패자로서의 초조하고 불안한 심정으로
잠들지 못하여 시름겨워하던 시인을 까마귀 우는 소리로 폐허와 절망의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전장터로 몰고 가다가 한산사에서 새벽 예불 드리려고 울리는 그윽한 종소리는 그가
누워있던 배 갑판 한 구석에서 그에게 어떤 알 수 없는 평화와 희망과 안정을 가져다
주었으리라. 객선(
客船)이라는 것은 그 날 저녁 주막을 찾아 들어가지 못하여 그가 긴 가을
밤을 새울 작정으로 신세졌던 풍교 밑에 매여있던 나룻배를 지칭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산사의 종소리는 한시뿐만 아니라 우리의 판소리에도 자주 등장한다. 이를테면 '춘향가'
에서는 "선원사(
禪院寺) 쇠 북소리 풍편에 탕탕 울려 객선에 떨어져 한산사(寒山寺)도 지척
인 듯"으로, '심청가'에서는 고소성(
姑蘇城)의 배를 매니, 한산사(寒山寺) 쇠북소리는 객선
(
客船)이 댕댕 들리는구나"라고 표현되어 있다. 또 봉산탈춤의 먹중(젊은 중) 춤 대사에
나오는 한산사 쇠북소리 객선이 둥둥'도 바로 이 <풍교야박>에서 따온 대사이다.

 

이 칠언 율시에 등장하고 있는 이 같은 시간과 공간과 음의 단어들은 모두 쓸쓸
하고 소슬한 가을 녘의 들바람처럼 쌀쌀하고 메마른 느낌을 담고 있다.

 

시에 등장하는 달이 지고(月落), 까마귀 울고(烏啼), 서리가 하늘에 가득하고(霜滿天), 강가의
단풍(江楓)과 시름겨운 잠(愁眠)이라는 어휘는 모두가 처량하기 그지없다. 이것은 과거에
낙방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시인의 처량하고 답답한 심사를 대변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밤 깊어 들려오는 한산사의 종소리는 그를 더욱 슬프게 만들었다고 해석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좀더 지나치게 해석해 본다면 달이 졌다는 것은 암흑과 같은 상황을 말하고 심지어 까마귀
우는 것은 누가 죽은 것을 상징하는 것을 훨씬 넘어서 전쟁이 일어났음을 말하며, 서리가
내리는 하늘은 희망을 잃어버린 절망으로 새하얗게 차가워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달은 지고 까마귀 우는 암울한 상황에서 () 강가에 보이는 희미한 어선의 불빛 하나로
더욱 외로움을 더 하다가
()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저만치 떨어져 있는 한산사를 끌어다가  

() 한산사에서 새벽 예불 드리려고 울리는 그윽한 종소리는 그가 누워있던 배 갑판 한 구석
에서 그에게 어떤 알 수 없는 평화와 희망과 안정을 가져다 주었으리라.
비록 많은 이들이
깊은 밤 산사의 종소리가 더욱 그를 서글픔에 잠기게 했을 것이라고 상상하고 있지만.

 

엉뚱하게도 나는 강풍어화(江楓漁火) 야반종성(夜半鐘聲) 깊은 밤 강 위에 떠 있는 쓸쓸한
어선의 등불과 한산사의 종소리에서 은방울 자매가 불러 한 때 상당한 인기를 누렸던 노래
마포종점의 어느 한 구절을 연상하게 된다. 밤 깊은 마포종점강 건너 영등포의 불빛은
아련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