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나서(讀書後)

일의 기쁨과 슬픔

含閒 2009. 9. 22. 15:31

[BOOK]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정영목 옮김/이레 펴냄/1만5000원

길을 걷다가 문득 경탄하곤 한다. 뜨거운 뚜껑을 열어젖히고는 김이 무럭무럭 나는 먹거리들을 척척 그릇에 옮겨담으면서, 서로의 농담에 껄껄 웃고 있는 건강해 보이는 아주머니들. 그들을 볼 때면 '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이번에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행의 기술' '불안' '행복의 건축' 등 우아하고 독창적인 방식으로 문학, 철학, 역사를 아우르며 현대적 일상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에세이를 출간해 온 그는 '일'에 대한 뜻밖의 시각을 선물한다.

새책 '일의 기쁨과 슬픔'에서 지은이는 비스킷 공장, 직업상담소, 화가의 집, 회계사무소 항공우주센터 등을 방문해 관찰자로서 일과 일터, 일꾼에 대해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는 '뼈 빠지고' '짜증날' 것이 분명한 일에 대한 지은이의 시각은 관조적이고 심지어 서정적이기까지하다. 여기에 이 책의 오류와 최고의 장점이 공존한다.

제3자의 눈으로 본 일터, 거기에는 지금하는 '일'이 '꿈'이었던 시절 '일꾼'들이 가졌던 마음이 담겨있다. "사무실에서 하루가 시작되면 풀잎의 이슬이 증발하듯 노스탤지어가 말라버리는" 사람들에게 외부인이 본 일과 일터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보게 한다.

아등바등 일처리에 급급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일'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는 것. 무슨 일이든 자기안에서만 생각하는 것보다, 객관화해서 보게 되면 또 다른 눈이 뜨이기 마련이다. 책은 그런 점에서 '겉핥기'가 아니라 오히려 '본질'에 다가선다.

지은이가 방문한 비스킷 공장의 책임자는 비스킷을 구울 줄 모른다. 지은이가 놀라는 표정을 짓자 그는 "요즘 비스킷은 요리가 아니라 심리학의 한 분야"라고 설명한다. 이 공장은 소비자들의 감정적인 갈망을 끄집어 내 그럴듯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공장은 비스킷에 대해 소비자들이 바라는 것은 '맛있는 비스킷'일 수도 있지만, 가사노동에 시달리지 않는 '나만의 시간'일 수도 있다는 설문결과를 접했다.

"밀가루 반죽으로 심리적 갈망에 응답을 하겠다는 계획은 터무니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노련한 전문가들의 손에서 "비스킷도 위대한 소설의 주인공처럼 상황에 어울리는 미묘한 느낌을 발산하는 인격"을 부여받았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지은이가 만난 한 무명화가는 자신이 그린 그림에서 "밀의 색깔이 잘못 표현되었거나, 하늘의 두 조각 사이에 불편한 단층선이 있으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그의 걱정을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기는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지은이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만의 작업에 헌신적으로 몰입하는 화가의 모습을 꼼꼼히 그려낸다.

책이 표현하는 이 화가의 사회적 자아는 약한데가 많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옆에 있을 때면 과민해지며, 과장된 웃음으로 불안을 감추곤 한다.(중략) 하지만 그는 이젤 앞에 서면 전혀 오만하다는 느낌없이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순간 화가는 더 이상 일상적인 '일꾼'의 모습이 아니며, 누군가의 아들도 누군가의 친구도 아닌 '일의 세계'에 들어선 한 인간이 된다.

책은 '일터'를 관찰하기 위해 떠나는 그의 여정까지 담고있어 여행책 같은 느낌도 준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일하는 세상'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싶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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