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畵兒)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 엄마처럼

含閒 2009. 6. 24. 14:08

  엄마처럼




대부분의 딸들에게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라는 되뇌임은
일종의 관용구에 가깝습니다. 반면에 ‘엄마처럼 살겠다’고 유쾌하게
말하는 딸들을 만나는 일은 로또 당첨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이 땅 모든 엄마들의 삶이 딸에게 하나의 전범(典範)이 되지 못할 만큼
모자란 때문이 아니란 사실은 너도 알고 나도 알고 하늘도 압니다.
엄마라는 여성에게 강요되는 부당한 희생과 억압을 현장 목격하면서
성장했으니 딸들 처지에서는 그럴 수밖에요.
게다가 성인이 된 자신 또한 다시 그 굴레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딸들의 다짐은
현실성을 획득합니다.

하지만 조금 다른 관점에서 저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딸들의
한숨 소리를 들으면서 새삼 자기 존중감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피치 못할 상황적 이유가 있긴 했지만,
엄마의 헌신이나 배려에 엄마 자신을 귀히 여기고 보호하려는
자기 존엄성이 스며 있었다면 엄마를 사랑하면서도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딸들의 한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겠지요.

스스로 자신을 귀히 여기고 존중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그것을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딸들에게 ‘엄마처럼 살고 싶다’는 역할 모델이 되는 엄마가 있다면
최소한의 자기 존중감은 확보된 개별적 인간일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것처럼 자기 존중감은, 사람을 지탱하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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