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畵兒)

정혜신의 그림에세이 / 삽질

含閒 2009. 6. 18. 09:19

삽질




우리나라에서 ‘삽질’이란 말은 원래의 사전적 의미보다 쓸데없는
행위를 일컫는 상징어에 가깝습니다.
‘삽질하다’는 문장의 형태까지 갖추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수고에
대한 안쓰러움과 함께 개념 없는 짓에 매진하고 있는 누군가에 대한
비아냥의 의미가 명확해 집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불도저 앞에서 삽질하고 있네’ 라는 말은
그 자체로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독립적이고 완결된
문장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적절하고 정당한 행위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불도저 앞에서의 삽질로 비춰질 수도 있습니다.
그 삽질을 하고 있는 사람이 ‘나’일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삽질의 의미가 복잡해질 수밖에요.

삽질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개념 상실이 일반화된 환경 속에선
물리적 ‘삽질’을 경계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까지 한 치의 삽질도 허용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특히 자기 마음을 돌보는 일에서는요.

작은 모종삽으로 땅을 고르고 나팔꽃을 심는 아이의 행동이
굼떠 보인다고 정원사를 부르거나 불도저를 동원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때 대개의 사람들은 그냥 미소 지으며 기다립니다.
자기 마음을 바라볼 때도 그러면 됩니다.

때로 본인이 생각해도 괜한 짓이라 느껴지는 경우가 있겠지요.
그러면 어떤가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기다리면 되지요.

누군가는 나이 들고 어른스러워진다는 것의 핵심을 너그러움으로
정의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사람이 가장 어른스러워져야 하는 대상은,
삽질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자기 마음에 대해서 일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