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과 死

자살의 메시지

含閒 2009. 5. 26. 09:47

[지평선/5월 26일]

한국일보 | 입력 2009.05.26 03:10

 

인간의 자살은 인간과 사회보다 훨씬 난해하다. 정신의학자들은 자살이 겉보기에 자기 파괴이지만, 자기 정체성 또는 자아를 지키려는 궁극적 의지의 표현이라고 본다. 인격이 말살될 것이라는 두려움과 좌절감에서 정신보다 육체의 죽음을 택하는 절박한 방어행동이라는 것이다. 이런 자살행동에는 자신에게 부당한 짓을 했다고 여기는 사람이나 사회에 일부라도 복수하려는 심리가 더러 담겨있다. 이 때 자살자는 목숨을 끊으며 상징적으로 다른 사람이나 사회제도를 죽인다고 한다. 자살을 그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벗어나는 도피로 보는 것은 자살자의 내면을 자의적으로 단순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자살은 시대와 사회와 개인의 종교적ㆍ문화적ㆍ정치적 가치관과 신념이 얽힌 틀 속에서 아주 복잡하고 모순되고 역설적인 동기가 중첩된 행위이다. 그만큼 난해한 메시지를 남긴다. 그에 대한 반응과 평가도 아주 개인적인 동시에 때로 대단히 정치적이다. 자살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대체로 실체와 동떨어진 때문이다. 가장 원초적인 생존 본능을 누르고 죽음의 공포와 마주서는 자살을 흔히 '비겁하다'고 나무라는 편견도 살아있는 자들의 도덕률을 지키려는 이기심이기 쉽다. 지극히 개인적 행위인 자살을 사회적 잣대로 재는 것은 무모하다.

■2004년 2월 안상영 부산시장이 구치소에서 목숨을 끊었을 때 < 지평선 > 에 같은 제목으로 쓴 글을 간추렸다. 당당한 풍모를 지닌 그가 "추워서 견딜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는 기사를 읽으며, 중구난방으로 시비하는 세상의 소란이 못마땅했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악연' 때문에 수뢰혐의로 갇혔다는 말도 들렸으나, 모두가 죽음의 메시지보다 자신의 인식을 앞세우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의 왜소함을 일깨우는 죽음 앞에 누구든 겸허하게 인간과 사회와 정치를 성찰하는 자세가 아쉽다고 썼다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러운 서거는 언뜻 어떤 죽음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남겼다. 우리사회의 완고한 기성질서에 오연(傲然)하리 만치 과감하게 도전한 삶을 닮은 듯도 하다. 그러나 고향의 '은거방언(隱居放言)'하는 생활에 자족하는 듯하던 그는 '감옥'처럼 바뀐 사저 안마당을 돌려달라고 하소연하다 끝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모든 고업(苦業)을 스스로 끊었다. 그리고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는 유언을 남겼다. 인간과 사회와 정치를 성찰, 우리 자신의 왜소함을 깨달은 것으로 보고 싶다. 모두가 겸허한 자세로 고인의 뜻을 헤아렸으면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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